▲제 69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여한 싱가포르 대표의 옷에 "STOP ASIAN HATE"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대회 유튜브 화면 갈무리
대자보 퍼포먼스
싱가포르 대표가 그런 문구를 적고 나온 이유는 다 아는 것처럼 서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계 사람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 때문입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아시안 혐오 범죄에 대응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하고 예산도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호주에서도 이러한 혐오 범죄가 날로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싱가포르에서도 이러한 혐오범죄의 피해자가 여럿 나왔습니다. 코로나19 확산 초기인 작년 2월 영국 런던에서는 영국인 학생 세 명이 싱가포르 출신 남학생 한 명을 둘러싸고 무차별 폭행을 저질렀습니다. 같은 해 4월에는 호주 멜버른에서 유학 중인 싱가포르 여학생이 포함 된 여성 2명이 인종차별 발언과 함께 폭행을 당하는 일도 벌어졌습니다. 두 사건 모두 피해자가 SNS 등으로 피해를 알리고 싱가포르 정부가 적극 대응을 하여 범인이 기소되고, 영국 사건의 경우에는 올 해 1월 재판이 열려 미성년자인 가해자들에게 1년 6개월의 재활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습니다.
싱가포르는 중국계(74%), 말레이계(13%), 인도계(9%)가 어울려 사는 다민족 국가입니다. 종교도 다양해서 인종이나 민족과 관련된 문제에는 특히 민감한 나라입니다. 자국민이 해외에서 당한 차별적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대책을 세우는 편입니다. 미인대회에 참여한 여러 아시아 국가 대표들 가운데 싱가포르 대표가 먼저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를 멈추라(STOP ASIAN HATE)"는 구호를 외친 것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련의 폭행 사건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만이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사건이 바로 싱가포르에서 발생했습니다.
지난 5월 7일 싱가포르의 인도계 50대 여성이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30대 남성에게 인종차별적 발언과 함께 폭행을 당했습니다. 최근 싱가포르에서는 코로나 확진자가 갑자기 크게 늘어나자 그 이유를 인도에서 온 변이바이러스 때문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인도계 시민들을 향해 혐오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잦았는데 그게 결국 폭행까지 이어진 것입니다.
미국의 혐오범죄, 싱가포르의 혐오범죄
중국계가 다수이긴 해도 다민족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민족 간의 화합을 국정 최우선 순위로 강조하던 싱가포르로서는 자칫 잘못했다간 심각한 내부 분열을 가져올 수 있는 위험한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정부의 대처는 빨랐습니다. 우선 리셰룽 총리는 5월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사건이 "매우 실망스럽다"며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더불어 "경찰이 사실을 확인하고 가해자를 수사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법무부 장관도 "인종 차별과 외국인 혐오를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고, 내각의 다른 장관들도 싱가포르에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입을 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