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금남로에서 광주시민들과 계엄군이 대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흥정] 발포 허용 요청 거부
5·18 초기 진압을 맡은 윤흥정 전남북 계엄분소장은 소극적 진압을 펼쳐 전두환의 미움을 샀다. 1988년 12월 7일 국회 5·18광주민주화운동진상조사특별위원회(광주특위)의 청문회에 출석한 윤흥정은 '광주 시위는 경찰력으로도 막을 수 있었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이런 소신에 따라 그는 하급 부대의 발포 허용 요청을 거부하고, 강경 진압을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1988년 12월 8일 자 <동아일보> 5면에 실린 청문회 회의록에 따르면, 그의 증언은 이랬다.
18일 진압작전이 원만하게 전개됐다는 보고를 받은 후, 이날 밤 도처에서 '사람을 개 패듯 하면 되느냐'는 항의 전화를 받았다. 19일 대책회의에서 기관장으로부터 군복 입기조차 부끄러운 얘기를 들어, 향후 그런 일이 일체 없도록 군에 지시했다.
군복 입기조차 부끄러웠다고 했다. 전두환은 그런 그의 군복을 강제로 벗겼다. 시민군이 도청을 접수하는 21일에 그를 체신부 장관에 임명하더니 다음날 전역시켰다. 작전이 진행 중일 때 '장수 교체'를 단행하는 이례적인 행동을 보였던 것이다.
평화민주당(평민당) 소속인 최봉구 의원이 "원해서 예편했는가?"라고 묻자, 그런 상황에서 예편을 원할 군인이 있겠느냐고 윤흥정은 반문했다. 체신부 장관으로 '영전'된 게 아니라, 예비역으로 '추방'된 것이다.
[정웅] "그렇게는 못한다"
유사시에 전남·광주를 지킬 책무를 가진 제31사단 정웅은 유사시인 5·18 때 전두환으로부터 소극적으로나마 임지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전두환·노태우 구속 뒤인 1996년 7월 25일의 12·12 및 5·17 사건 제24차 공판에 출석한 그는 5·18 당시에 전두환 일파인 황영시 육군참모차장의 전화를 받고 어이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황영시 육본차장은 유선으로 '무장 헬기 등을 동원, 버스를 공격하라'는 등 강경 유혈진압을 지시했는데, 하도 어이가 없어 '그렇게는 못한다'고 거부했습니다.
'하도 어이가 없다'는 속마음을 그는 억누르지 않았다. 무장 헬기로 시민들의 버스를 공격하라는 지시는 전남·광주를 지키는 사단장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범죄였다. 그래서 "그렇게는 못합니다"라고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그는 경찰력만으로도 시위 진압이 가능하다며 상부에 맞섰다. 결국 6월 4일 사단장 직에서 해임되고 대기발령을 받았다. 9월 30일, 예비역 육군 소장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안종훈] "국민의 동의 받아야 한다"
안종훈 군수사령관은 다른 방식으로 맞섰다. 신군부가 군부의 지지를 도출 혹은 조작하는 도구로 활용했던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자기 소신을 명확히 드러냈다.
5·18 전날인 17일에 신군부가 국회를 무력화시키고 비상계엄을 전국에 확대시키려 하자, 안종훈 사령관은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1996년 1월 24일 자 언론들에 공개된 약칭 '5·17 및 5·18 사건 공소장'에서 검찰은 17일 오전 10시경 국방부 제1회의실에서 보여준 안종훈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문장이 너무 길어서 두 단락으로 나누었다.
육·해·공군 주요 지휘관 43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어 (중략) 계엄하에서 학원소요가 진정되기는커녕 오히려 과열·폭력화되어 가고 있고 북한의 동향도 심상치 않으므로 지역계엄을 전국계엄으로 확대하고자 하니 의견을 개진해 달라고 하고,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계엄확대에 이견이 없다는 발언을 한 가운데,
안종훈 육군군수사령관이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는 국민의 합의에 의해 하여야 하는데 시기상조라며 반대 의견을 표명하자, 정호용은 사회안정을 위하여 군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것이 필요하다는 요지의 주장을 하고, 피고인 노태우, 같은 (피고인인) 황영시도 그에 동조하는 발언을 하는 등으로 참석자들의 발언이 끝나자, 피고인 주영복은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전군 주요지휘관들의 의견으로 대통령에게 건의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발언은 원론적이고 당연하지만, 이런 언급은 민주주의를 경시하고 그에 둔감한 전두환 신군부의 본질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민주적 소양의 결핍을 일깨우는 발언이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