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가족이 받은 출국기한 유예 허가 통지서3개월마다 갱신해야 하는 그의 가족을 받아줄 나라가 없다.
마이일켈 제공
마이일켈이 문을 열고 나가니 어둑한 복도에서 집주인은 먹구름을 뒤로 하고 서 있었다. '들어오시라' 해도 마다했다. "미안하지만 우리 내외도 월세 받아 삽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섰다. 집주인이 남긴 발자국을 따라 검은 빗물이 들이쳤다. 복도 여기저기에 "15만 원, 15만 원"이라는 말이 메아리 치며 빗물을 뚫고 다녔다.
처음 월세 얘기가 나왔을 때 마이일켈이 '임대차보호법' 얘기를 슬쩍 꺼냈었다. 집주인은 "나도 압니다. 하지만 방 네 개에 월세 100만 원 받을 정도로 지금 시세가 올랐어요"라고 했다. 더 할 말이 없었다.
마이일켈이 고향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니 "여기는 코로나 기간 동안 월세를 못 내도 쫒아내지 못하게 임시로 법이 만들어지고 있어, 한국은 우리보다 선진국이잖아, 그런 법 없어? 정부가 해결해 줘야지"라는 되물음을 들었다.
0.4%에 불과한 한국의 난민인정률
마이일켈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당연히 난민 판정을 받을 줄 알았다. 그는 피난처를 고민할 때 잠깐 필리핀을 떠올렸다. "영어를 쓰고 카톨릭 국가이고... 하지만 거리 곳곳에서 사설 경비원조차 총을 메고 있는..." 그러다가 2005년 처음 가 본 한국을 떠올렸다.
안전하고 깨끗한 나라고, 성당과 교회가 나뉘어져 있어 신기했지만 신자들끼리 도와주며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는 게 부러웠다. 그게 계기가 되어 한국전자제품을 가져다 고향에 팔았다. 필리핀 때문에 잠깐 망설였지만 결국 한국행 비행기를 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나서야 한국의 난민 인정률이 0.4%(2019년 기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트럼프 시절의 미국도 43%(2015년 기준)이건만. 난민 불인정 결정서에 "종교적 신념에 따른 차별이 없었다"고 쓰여 있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허탈했다. 대한민국은 아시아 나라 가운데 처음으로 2013년 7월 난민법을 시행했다고 자랑하지만 난민을 유엔인권협약에 따른 인도적 차원이 아니라 '범죄자'처럼 본다는 것을 나중에야 깨달았다.
고향의 친구들은 "한국도 일본의 식민지였잖아, 그때 세운 임시정부가 난민이었던 독립군이 상해에서 세운 정부고 지금 대한민국은 그것을 이어받았으니 잘 될 거야" 하며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한국의 역사까지 들먹였다. "거 왜 김대중 대통령 그 사람도 정치적 난민으로 일본과 미국에 있었잖아" 하는 얘기까지 덧붙이며 희망을 주었건만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마이일켈은 한국의 난민정책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 자신이 미웠다. 하지만 그럴 겨를이 없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 말만 그럴듯한, 난민으로 인정은 못하지만 쫒아내지는 않는다는 '인도적 체류' 비자로는 변변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한 가족임에도 아들 내외와 손주들은 인도적 체류비자조차 못 받았다. 한 가족이고 똑같은 사유인데 왜 안 되냐고 물으니, 출입국 관리소는 "그것은 우리 소관이고 우리가 결정한다"는 말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