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암호)화폐는 21세기 판 튤립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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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민(attoexa)등록 2021.05.12 13:15

우리 젊은이들이 터무니없는 투기판에 말려들어 희생당할 모습이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요즈음은 50~60대의 장년층도 투기판에 뛰어들고 있다 하니 심히 우려된다. 이 글을 읽고 부디 청장년들이 가상(암호)화폐의 실체를 명확히 파악하여 파멸의 수렁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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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이던 암호화폐 가격이 별안간에 $2,000까지 치솟아 요란했었는데, 지금은 수만달러로 올라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돈(화폐)은 가치의 안정, 즉 내일도 오늘의 가치가 지속된다는 믿음이 가장 중요한데 가상화폐의 가치는 변덕이 극심하다. 그 가치가 널뛰듯 오르내리는 가상화폐는 화폐로 통용이 될 수가 없다. 나는 가상화폐를 '4차산업'이라는 인기용어에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을 접붙여 그럴듯하게 포장한 폰지사기(폭탄돌리기)로 본다. 가상화폐는 21세기 판 '튤립투기'이다. 1630년대 네덜란드에서 일어난 튤립투기는 비합리적인 인간행태의 대표적 사례이다.
1554년 터키에서 네덜란드로 건너온 튤립은 씨앗이 알뿌리가 될 때까지 7년쯤 걸리고 기르기도 쉽지 않아 항상 공급이 달렸다. 17세기 초 유럽에서 가장 부유했던 네덜란드 귀족과 상인들은 부를 과시하기 위해 교외에 저택을 짓고 정원을 꾸몄다. 원예와 정원 가꾸기가 부자들의 취미가 되어 튤립이 호사품이 되었다. 1620년에 튤립은 부유층의 애호품이 되고 부의 상징으로 변질되어 투기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들은 튤립을 정원에 심으려고 산 게 아니라 비싸게 팔기 위해 샀다. 튤립의 가격은 상상도 못하게 올랐다.
1623년에 튤립구근 1개가 120길더에 달했다. 숙련기술자가 1년 내내 300길더도 벌지 못했고, 5인 가족의 1년 생활비가 280길더에 불과했던 시기였다. 1633년에 가장 유명한 셈페르 아우구스투스 구근의 가격은 개당 500길더였는데 1637년 1월에는 1만 길더였다. 1만 길더는 당시 세계에서 주택가격이 가장 비쌌던 암스테르담에서 마차 차고와 250㎡(75평)의 정원이 딸린 대저택을 살 수 있는 돈이었다. 1637년 1월 마지막 주와 2월 첫째 주에 튤립열풍이 절정에 달했다. 1637년 2월 첫째 주에 튤립시장이 급전직하(急轉直下)로 붕괴되었다.

첨부파일 위치
튤립구근 가격의 변동추이
(1634.12.1.~1637.2.5.)

가상화폐를 치장(治粧)하는 블록체인은 위변조가 불가능한 기술이지 화폐와 관계가 없다. 블록체인 기술은 수표, 어음, 선하증권, 신용장, 환어음, 등기서류 등 위변조 위험이 있는 유가증권이나 계약서 등의 발급 및 유통에 유용하다. 블록체인에 기반한 가상화폐는 위조가 어렵고 송금이 간편하다는 지엽적 장점은 있다. 특히 소액송금 수수료가 무시할 정도로 낮아 외국인 노동자 등에게 인기가 있었다. 비트당 $1~$2이던 시절에는 가격변동이 없고, 코인가격이 낮아 대금결제도 하고 송금도 했었지만, 지금과 같이 $58,000을 오가는데 누가 결제를 하고 송금을 하겠는가?
그리고 유념할 점은 현재 한국은행을 비롯하여 각국의 중앙은행이 추진중인 디지털화폐와 암호화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디지털화폐는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보증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고 가치도 안정적이다. 말하자면 지폐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것으로 일찍이 지폐를 수표로 전환하여 유통의 편리를 도모하는 것과 같다. 적정 통화량에 기반하여 디지털화폐를 발행하여 지폐의 약점과 불편함을 덜어보려는 것이다. 블록체인이라는 신기술에 의한 송금의 편리와 위조, 탈세, 돈세탁, 마약거래, 범죄수익 등의 지하경제의 방지·색출 등의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호화폐는 어느 누구도 보증해주지 않고 책임을 져주는 주체가 없는 그야말로 개인들이 중국 등 어딘가에서 수많은 컴퓨터를 돌려서 창출해내는 실체가 없는 가상물(假想物)이다. 마치 옛날 금광에서 금을 캐내는 것과 같은 이치인데, 금은 인류 문명의 초기부터 사람들이 선호하는 실물이었고, 금반지라도 만들 수 있지만, 가상화폐는 법적으로 전혀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만 존재하다가 어느날 재(滓)도 남기지 않고 홀연히 사라질 허깨비이다. 나는 도대체 왜 가상화폐가 수천만원의 거래대상이 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제 정신이 아니다.
다만 현재 용감무쌍한 일부 상인들이 가상화폐를 받고 물건과 서비스를 교환하고는 있지만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다. 그들도 행여나 하고 받아두었다가 오르면 좋고, 내리면 그냥 포기를 해버리는 일종의 도박 게임을 하는 것이다. 나는 관계당국이 왜 이런 터무니없는 도박게임을 수수방관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의 광풍(狂風)은 이른바 폭탄돌리기로 언젠가 꼭지를 잡는 사람들은 17세기 튤립투기처럼 폭망(爆亡)하여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다.

임석민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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