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사 발표하는 문 대통령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1월 7일 청와대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2020년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데도 투기세력을 집값 폭등의 범인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반영된 듯하다.
연합뉴스
소수 투기꾼이 준동해서 부동산값이 폭등했다?
모종의 프레임이란, 부동산 시장 참가자를 투기꾼과 실수요자로 나누고 부동산값 폭등은 소수 투기꾼의 준동에 기인한다고 보는 인식 틀을 가리킨다. 2017년 6월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취임식에서 "집값 급등은 실수요자보다는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선언한 것을 필두로, 정부 여당 인사들은 4년 내내 투기꾼 타령을 계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겠다"라고 선언한 데도 투기세력을 집값 폭등의 범인으로 간주하는 프레임이 반영된 듯하다. 최근 들어 여권 인사들이 정책 실패를 반성하면서도 투기 세력에 책임을 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 또한 그 프레임의 영향이다.
부동산값 폭등을 소수 투기꾼의 준동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프레임은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할 뿐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악당'을 특정하기 때문에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어필한다. 그래서 정치인들도 정책을 펼칠 때나 정책 실패를 반성할 때 대중의 이런 성향을 활용하고 싶어 한다. 단시간에 대중을 설득하는 데 그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범 후 줄곧 이 프레임에 기대서 부동산 정책을 펼쳐온 문재인 정부는 바로 그것 때문에 역풍을 맞고 말았다. LH사태가 투기의 주범이 누구인지를 국민 앞에 여지없이 드러냈으니 말이다. '범인'이 문재인 정부 공기업 안에 있었으므로 국민의 분노가 정부 여당으로 향하는 것은 당연했다. 게다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개정된 임대차보호법의 정신에 배치되는 임대계약을 맺었다는 뉴스는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갖다 부었다.
엉터리 프레임이 초래한 결과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성격을 한 마디로 규정하자면, '핀셋 대책'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 지역의 부동산 시장이 이상 징후를 보이면 그 지역을 콕 집어서 규제지역으로 지정해 상대적으로 강한 투기 억제 장치를 가동했고, 이것저것 해보다 안 통해서 뒤늦게 착수한 부동산 불로소득 차단·환수 정책도 다주택자와 규제지역에 초점을 맞추었다.
4.7 재·보궐선거 후 논란이 일고 있는 보유세 부담 증가 문제도 집값 급등으로 인한 공시가격의 이례적 상승이 없었다면 규제지역에 부동산을 가진 극소수 다주택자에게 국한되었을 것이다. 한때 투기꾼을 잡겠다며 부동산 특별사법경찰, 자금출처 조사 등 유치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거론한 것을 보면 부동산 투기 광풍을 소수 투기꾼의 준동 탓으로 돌리는 정책 프레임은 생각보다 뿌리가 깊었던 것 같다.
작금의 부동산 투기는 '핀셋'으로는 도저히 잠재울 수 없는 엄청난 '괴물' 같은 존재였다. 우습게도 문재인 정부는 4년 내내 핀셋을 들고 이 괴물을 잡겠다며 허둥댔다. 결과는 역대 최고의 부동산값 폭등과 역대 최다의 풍선 효과였다. 강남을 규제하니 투기는 '마용성'(마포·용산·성동)으로 번지고, 마용성을 규제하니 '노도강'(노원·도봉·강북)으로 번지는 식이었다. 언론은 '금관구'(금천·관악·구로), '수용성'(수원·용인·성남), '안시성'(안산·시흥·화성), '김부검'(김포·부천·검단) 등의 신조어로 이 현상을 풍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