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벚나무에게 하는 것을 너에게 주고 싶다.

딸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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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yingirl)등록 2021.05.07 09:00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딸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뜨겁게 살다 오너라.
 
생명은 참으로 눈부신 것
너를 잉태하기 위해
내가 어떻게 했던 가를 잘 알리라
 
마음에 타는 불
몸에 타는 불
모두 태우거라
 
무엇을 주저하고 아까워하리
딸아, 네 목숨은 네 것이로다.
 
행여, 땅 속의 나를 위해서라도
잠시라도 목젖을 떨며 울지 말아라
 
다만,
언 땅에서 푸른 잎 돋거든
거기 내 사랑이 푸르게 살아있는
신호로 알아라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문정희- 어머니의 편지 중에서>

 
딸아, 하늘 아래 오직 하나뿐인 귀한 내 딸아!
엄마는 이 시를 재작년 문정희 시인이 군산에 왔을 때 시낭송회원의 목소리로 처음 들었단다. 그때 왜 그렇게도 눈물이 나던지 몰라.
아마도 그건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고, 또한 나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일거야.
 
어버이날을 며칠 앞두고, 학교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문자 하나를 받았다.
학부모와 아이들 소통을 위한 글쓰기 숙제이었다.
 
Q1. 부모님은 제가 생겼다는 걸 아셨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리고 어떤 마음으로 10개월을 보내셨나요?
 
울 담인이는 온 가족이 오래 기다려 얻은 귀한 딸이야. 네가 내 안에 깃들었단 말을 들었을 때,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지.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단다.
그리고, 정성껏 10개월을 보냈단다. 너를 위해 제대로 태교하기 위해 일단은 육아휴직을 신청했지. 예쁜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것만 먹으려 애썼지.
태교에 관한 책을 사서 개월 수에 맞춰서 음악태교, 산책태교, 그리고 한글공부.
네가 글로벌 인재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영어공부, 영어 비디오 시청, 좋은 책 읽기..
아빠는 한달짜리 '아버지학교'라는 프로그램도 이수하셨어.
널 기다리면서 엄마는 서예도 잠깐 배웠어.
그때 쓴 글귀를 액자에 담아 걸어 놓았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엄마가 즐겨듣던 태교 음반엔 이런 노래가 있었어.
"너는 예쁜 아이, 귀여운 아이.
착하고, 건강하고 똑똑한 아이, 어머님 말씀이 고맙습니다.
너는 눈이 크고 마음이 넓은 아이, 아버님 말씀이 고맙습니다.
친구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아이, 선생님 말씀이 고맙습니다."
 
지금의 너는 실제로 그런 아이가 되어주었다. 너무 고맙구나.
이 노래는 나중에 엄마의 자장가가 되었지. 기억나니?

Q2. 성장하는 저를 보며 부모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네가 태어나던 날 아빠는 복도에서 "하하 하하" 큰 소리로 웃었다고 외할머니는 지금도 가끔 그 얘길 하시지. 정말 가슴 벅찼던 순간이었어.
처음 뒤집기 하던 날, 뽀얀 이가 아랫입술 가운데에서 쏘옥 하고 올라오던 날, 걸음마 시작할 때, 처음 이유식 하던 날... 모두 그저 신기하기만 했지.
특히 처음 "엄마"라고 불러주던 날의 감동은 잊을 수가 없단다.
울 담인이가 문장으로 처음 한 말 "엄마! 이게 뭐에요? "
네 목소리는 어찌나 낭랑하고 예쁘던지..
어려서 모세기관지염으로 입원했을 때, 눈이 나빠져 처음 안경쓰던 날, 그런 날은 많이 속상하고 마음 아팠지만, 그런 날은 며칠 되지 않았어.
 
성장하는 너를 보며, 항상 기특하고 고마웠어.
뭐든 알아서 척척 잘해주었고, 이쁘고 밝고 건강해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었어.
 
Q3. 부모님은 제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시나요?
 
몸도 마음도 예쁘고 건강한 사람.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무엇보다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받을 줄 아는 사람.
네가 좋아하는 일과 관련된 직업을 잘 찾아서 행복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래.
네가 행복하고 주위 사람을 배려할 줄 알고, 이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넓은 세상 볼 줄 알고, 작은 것에서도 의미를 찾을 줄 아는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란다.

첫째, 너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네가 무얼 할 때 제일 기분이 좋은지, 어떨 때 설레이고 가슴이 뛰는지, 행복한지
그걸 찾아서 너의 꿈으로 잘 연결시켰으면 좋겠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은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고 재미있는 일이고,
언젠가는 꼭 잘하게 되어 그 분야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될 테니까...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체로 일상이 행복하지 않을까?
돈 많이 버는 직업 보다는 네가 행복해질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하면 좋겠다.

둘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주인공 조르바처럼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설령 조국이나 종교 같은 강한 신념일지라도..
너무 강한 신념은 다른 쪽 사람들을 구분하고, 배제하고 억압하기에..
항상 경계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세째,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엄마는 참는 게 미덕인 줄 알고 살아왔어. 나만 참으면 모두가 조용하고 편안했으니까.
그러나, 아무도 고마워하지도 미안해하지도 않고, 나만 병신이 되어 있더라.
뭐든 부당한거.. 불공정한 거.. 불평등한 거.. 정의롭지 않은 거...
'이건 아니다' 싶은 것들과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거기에 대해 그냥 넘기지 않고 말할 줄 아는 사람.. 처음엔 조금 무섭더라도 차츰 단단해져있는 너를 발견할 수 있을거야. 우린 싸울수록 투명해진다. 무조건 헌신 했더니, 헌신짝되더라.
너 뿐만 아니라 네 주위의 부당함과도 싸울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그래서 '변화'라는 소중한 결과를 이루어나가기를 기도한다.
 
네째, 우리 딸은 KISS의 법칙을 지키며 살았으면 좋겠어!
Keep It Super Simple !
물건도 꼭 필요한 것, 네가 좋아하는 것들만으로 최소한으로 가지고
일도 하나 다 했으면 치워놓으면서 단순하게 심플하게
본질적으로 사는 거지..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는 없어.. 그건 욕심이지.
모두에게 다 잘하려고 너무 애쓰지 않았으면 해.
네가 너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면서 소신있게 살다보면
너를 진정으로 알아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거야.

일년동안 한 번도 입지 않는 옷, 한쪽에 먼지 뒤집고 쌓여만 있는 물건들에 치여서 답답하게 사는건 현명하지 않는 일이다.
비워있는 여백의 공간에 평안한 마음이 깃들고,
집은 펜션이 되고, 일상은 여행이 된단다.
 
다섯째. 남에게 받으려 하지 말고, 주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누군가 너를 챙겨주기를 바라지 말고, 네가 먼저 주위 사람들에게 '뭐 해줄 것이 없나?' 살펴보고 도와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뭔가를 바라기만 할 때, 우리는 한없이 작고 초라해지지만
주위를 위해 뭔가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스스로가 더 큰 사람이 되어 있음을, 자부심을 느끼게 될 거야.
 
말해놓고 보니, 엄마가 너에게 바라는 것이, 네가 다니고 있는 회현중의 비젼 " 세움, 나 눔"과 다르지 않구나. 나를 가꾸고 남을 배려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람으로 성장하기 를, 일상이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소원한다.
 
이 숙제를 하기 위해 예전에 쓴 일기장을 새삼스레 들쳐보며 혼자 울먹였구나.
이런 감동적인 이벤트를 준비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지금 중3인 너의 소중한
학창시절을 응원한다.
 
 
                                                        2021년 5월 꽃향기 가득한 봄날
                     봄이 벚나무에게 하는 것을 너에게 해주고 싶은 엄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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