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두 유 노우 김치'를 묻지 않아도 될 아이들

윤여정씨의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 수상을 바라보는 한 아재의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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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근(eusis)등록 2021.04.26 17:40
아무리, 교육 받은 중산층 부모 밑에서 도시 생활자로 자라며, 대학 교육도 받고 동년배 한국인 평균 이상의 문화 생활을 누린 처지라 해도, 40대 중반 이후인 우리 세대 쯤 되는 한국인들은 '두유 노우 김치?'의 감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나고 자란 공동체가, 지구적 레벨에선 '듣보잡'이라는 것, 어지간한 외국인은 우리나라가 지구상의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 코리아 하면 거의 전부가 전쟁과 고아와 독재자를 떠올린다는 것, 제일 유명한 코리안은 김일성이라는 것.
전쟁과 보릿고개의 절대 빈곤이 지나가고, 그래도 나름대로 먹고 살만해진 나라에서 자라난 세대인 우리에게 그 인식은 참혹한 것이었다. 차라리 아버지 세대들은, 그땐 실제로 못살았으니까, 차라리 덜 억울하지 않았을까. 우리도 아파트 살고 자가용 타고 텔레비전과 냉장고 있는데, 우리 보기에 '못사는 아프리카 나라'와 별다른 차이 없는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은 참으로 난감한 것이었다.
그런 상처가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가끔씩 염증을 일으키고 곪았다. 그럴 때면 우리는 상처 치유의 주문처럼 되뇌이곤 한 것이다. 두유 노우 김치? 그리고 그 주문은 조금씩 바뀌었다. 두유 노우 88 올림픽? 두유 노우 김연아? 두유 노우 싸이?
이젠 16살이 된 아들이 유년기를 지나 소년으로 커가는 모습을 보며 신기했던 것 하나는, 아들과 그 친구들 세대에게 그 '두유 노우~'의 그늘이 없다는 것이었다. 제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희생과 제 부모 세대의 분투 속에서 피어난 구김살 없는 꽃. 어찌 보면 나의 중년기의 과제는 그 꽃이 다시 시들거나 꺾이지 않도록 든든한 뒷배가 되어주는 것이 아닐까.
아들은 아마 외국인 친구에게 '두유 노우 비티에스?'를 묻진 않을 것이다. 무의미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비티에스의 후광에 기대어야 겨우 챙길 수 있을만큼 제가 속한 공동체의 힘이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 훌륭하고 아니고를 떠나, 어지간하면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약함이 제 발목을 잡는 걸림돌이 되진 않는 세대.
윤여정 선생의 아카데미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낀다. 입으로 말하진 않지만 마음 속에서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두유 노우 윤여정? 지금 아이들은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저, 훌륭한 배우 윤여정씨의 연기를 보고 깊게 공감할 수 있음을 즐거워할뿐. 그이와 이 아이들은 같은 언어와 같은 문화를 공유하니까.
어느새 구세대가 된 나는, 외국의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우리 사람'의 '쾌거'에 기쁘다. 내 무의식 속에 웅크리고 있는, 바람직하지 않은 '집단적 열등감'을 또 한번 위로 받아서 그렇다. 그러면서 또한, 그런 열등감에서 자유로운 세대가 자라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 기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물적 토대를 만드느라 뼛골이 빠졌던, 이제는 노인이 된 부모의 세대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는 것을 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아직은 남아 있다는 것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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