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13일 게재된 <노회찬의 새벽첫차> 유튜브 영상 중 화면갈무리
노회찬재단
2010년 4월 13일, <노회찬의 새벽 첫차 (1편)> 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다. "노회찬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서울의 새벽을 여는 곳으로 출동합니다. 그 1편으로 구로에서 개포동까지 가는 6411 버스 첫차를 탔습니다"라는 설명과 함께. 영상의 마지막 자막은 '노회찬이 서울 시민을 응원합니다'였다.
기억의 환기 차원에서 <오마이뉴스>(2020.12.17.)에 연재된 '왜 노회찬은 6411 버스를 탔을까, 여태 몰랐던 이야기'의 일부를 다시 불러내본다.
6411번 새벽첫차에 오른 노회찬은 승객들과 나눈 대화와 버스 안 풍경을 영상에 담아 '노회찬의 새벽 첫차'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 올렸다. 영상에는 이런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 노회찬) 제일 힘드신 게 뭐예요?
= 우리요? 어휴 일하는 데 힘들다고 하면은 안 되죠.
- 노회찬) 아니, 일이야 뭐 또 다 잘 하시겠고.
= 힘드는 거는 저기 아침에 버스 타는 게 힘들죠.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 여기서 많이 시달리니까, 다른 거는 뭐.
"일하는 것 자체보다도 만원버스 새벽 출근길이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은 노회찬은 버스에서 내린 뒤 이렇게 말한다.
"오늘 새벽 4시 10분에 대림동에서 버스를 탔는데 종점인 개포동까지 왔습니다. 5시 40분이 지금 시각이고요, 1시간 반 걸렸습니다. 흔히들 새벽 첫 버스하면 승객이 별로 없고 텅텅 빈 버스로 생각하기 쉬운데 오히려 새벽 첫 버스가 타자마자 승객이 완전히 만원이 됐습니다. 이 콩나물시루와 같은 버스를 1시간 이상씩 타고 출근하는 분들, 그분들의 평균 연령이 60대가 넘는 것 같습니다.
참 어렵게 사시는 우리 서울 시민들의 모습을 오늘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일하는 것보다 출근하는 게 더 힘들다고 말씀하시는 저분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첫차 운행 편수를 늘리는 것부터 시작해서, 점심 때 빌딩에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국이나 찌개도 끓이지 못하고 마른 반찬으로 도시락밥을 드시는 분들, 참으로 가슴이 아려옵니다. 결국 서울을 만들고 있는 분들, 서울을 떠받들고 있는 많은 분들이 이 새벽에 힘든 출근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2012년 10월과 2013년 7월 노회찬은 진보정의당 당대표 취임사와 고별퇴임사를 통해 '50, 60대 청소미화원 아주머니들'을 불러낸다.
"이 버스에 타시는 분들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새벽 5시 반이면, 직장인 강남의 빌딩에 출근을 해야하는 분들입니다. 지하철이 다니지 않는 시각이기 때문에 매일 이 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한 분이 어쩌다가 결근을 하면 누가 어디서 안 탔는지 모두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좀 흘러서, 아침 출근시간이 되고, 낮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고, 퇴근길에도 이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 누구도 새벽 4시와 새벽 4시 5분에 출발하는 6411번 버스가 출발점부터 거의 만석이 되어서 강남의 여러 정류장에서 5·60대 아주머니들을 다 내려준 후에 종점으로 향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이 아침에 출근하는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들딸과 같은 수많은 직장인들이 그 빌딩을 드나들지만, 그 빌딩에 새벽 5시 반에 출근하는 아주머니들에 의해서, 청소되고 정비되고 있는 줄 의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분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있었지만, 그 이름으로 불리지 않습니다. 그냥 아주머니입니다. 그냥 청소하는 미화원일 뿐입니다. 한 달에 85만원 받는 이분들이야말로 투명인간입니다. 존재하되, 그 존재를 우리가 느끼지 못하고 함께 살아가는 분들입니다."
2012년 당대표 취임사 며칠 전인 10월 12일 한 권의 책이 출간된다. 플로랑스 오브나의 <위스트르앙 부두: 우리시대 투명인간에 대한 180일간의 르포르타주>(현실문화, 2010). 노회찬이 쓴 추천글은 이렇다.
"<위스트르앙 부두>는 프랑스에서도 광범하게 존재하는 '투명인간'에 관한 기록이다. '투명인간'을 만나기 위해 위장취업자가 된 기자, 플로랑스 오브나는 펜 대신 빗자루를 든 청소부가 된다. 그런 그녀가 사무실을 청소하다가 스스로의 존재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진공청소기의 연장일 뿐이며, 고무장갑에 청소 작업복을 걸친 진공청소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장면은 우리 주변을 다시 둘러보게 만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작업복을 입는 순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는 수많은 '투명인간'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얻게 된다. 그리고 우리들 또한 서서히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하는 시간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대조적인 장면... 2010년 '노회찬의 새벽 첫차'와 2021년 '박영선의 새벽 첫차'
10여 년이 흐른 2021년 4월 6일 KBS 뉴스는 4.7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하루를 남기고 <마지막 유세 '강행군'>이라는 제목으로 박영선 후보 관련 보도를 한다.
"민주당 박영선 후보는 오늘(6일) 마지막 선거운동을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향하는 새벽 '6411' 버스에서 시작했습니다. '6411' 버스 노선은 고(故) 노회찬 전 의원이 지난 2012년 정의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언급했던 노선인 만큼 진보 지지층 결집을 위한 행보로 해석됩니다. 박영선 후보는 버스에 탑승하며 '서울의 새벽을 깨우는 노동자분들과 함께 버스를 타면서 노동자의 삶이 투명인간이라는 이야기를 듣지 않도록 제도를 바꾸고 지원할 방법은 없는지 생각하겠다'고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