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주의라는 차별과 혐오를 넘어서자

청소년운동가와의 통화에서 맞이한 나이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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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민(mingoodnice)등록 2021.04.19 15:41
 

나이주의적인 언어 문화는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지 오래다. '초딩', '중딩'이라는 표현은 물론 '급식충' 이라는 표현까지... 모두 나이를 이유로 한 차별이자 혐오표현이다. 이런 차별과 혐오를 두고만 보아야 할까? ⓒ 픽사베이

 
어제 청소년활동을 하는 분과 10분 남짓 전화할 기회가 있었다. 나름 위원장 자리도 맡으신 분이고, 그 자격으로 라디오 인터뷰까지 하신 분이었다. 내가 해당 단체의 활동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비판을 했고, 이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전화를 받은 것이다.
 
내 비판과 그에 대한 반박 형식인 대화였으니 분위기가 좋게 흘러가지는 않았다.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이런 말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비판한 사람을 두고는 "OOO 대표님은 일단 대표예요, 그리고 지금 전화하시고 있는 본인보다 나이가 많으세요"라면서 "예의를 지키라"라는 말을 들었다. 나이를 이유로 예의를 지킬 것을 요구한 것이다. 나는 예의를 갖추어 비판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분께서는 예의 없다고 받아들였을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이를 이유로 예의를 지키라는 말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예의는 갖추어 달라고 말했어야 한다.
 
심지어는 고압적인 태도로 "참고로 제가 당신보다 누나예요"라면서, "예의를 서로 지키시는 게 나을 것 같은데"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나는 예의를 지켰다고 생각하지만, 그래, 예의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가 누나라서', '내가 동생이라서' 예의를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주장은 맞을 수도 있으나 이유가 잘못되었다. 고작 두 살 많은 게 자랑도 아닌데 왜 이렇게 나이 차를 좋아할까.
 
놀랍게도 이런 말은 우리가 흔히 듣던 말이다. 우리는 '미자, 급식충, 초딩, 중딩'과 같은 표현들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 모두 다 나이주의적인 언어문화다. 흔히 듣던 말이라 말 자체는 놀라울 것도 없었다. 다만 청소년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존중하는 사회를 지향하는 청소년운동가이자 위원장 직책까지 맡으신 분이 이런 말을 했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이러한 나이주의적인 언어문화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은 "어린이에게 경어를 써 달라"라는 1922년, 제1회 어린이날부터 시작된 유서 깊은 청소년 인권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듣게 되는 일방적 반말',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존칭 없이 하대를 당하거나 무례한 대우를 받는 일',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표현'을 나이주의적인 언어 문화로 규정한 바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이어도 나이가 어리다면 반말을 쓰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초딩, 중딩, 미자, 급식충'과 같은 혐오표현이 넘쳐나는 사회에서,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나이가 어리다면 '야' '너'와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사회에서 이런 요구는 너무나도 반갑다.
 
나는 "전화하시고 있는 본인보다 나이가 많으세요", "참고로 제가 당신보다 누나예요"라는 말을 듣고도 그 안에 차별과 혐오가 들어있다고 항의 한 번 못 했다. 물론 대화의 흐름이 말하기 어려운 흐름이기도 했지만, 나조차도 그런 차별과 혐오에 자주 노출되어 둔감해진 것이 아닐까? 전화가 끝난 후 내용을 곱씹어볼 때가 되어서야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나이주의라는 칼날이 참 매섭다.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방법은 단 하나다. 우리 모두 차별과 혐오에 민감해지고 예민해지는 것이 그 방법이다. "누나니까", "너보다 나이가 많은 대표니까"라는 나이주의, 차별과 혐오에 우리는 더더욱 민감해지고 예민해져야 한다. 차별과 혐오는 우리에게 큰 두려움을 안긴다. 그 두려움을 넘어서지 못하면 차별과 혐오 역시 넘어설 수 없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이주의라는 칼날의 매서움, 차별과 혐오의 두려움을 알았다. 그리고 청소년운동을 하신다는 분이 나이주의에 찌든 모습을 보고 개탄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또 다른 희망을 안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이런 불편함에 예민해지고 민감해질 때 차별과 혐오, 나이주의로 가득 찬 사회는 바뀌어나갈 거라는 희망. 그런 희망은 우리 사회를 바꾸어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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