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김복남 화학적 자살사건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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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scjinn)등록 2021.04.15 10:58
올해로 87세가 되는 노인 김복남은 화학적 자살을 택했다.
죽은 것은 아니나 죽은 것과 다름없다. 치매로 인해 기억이 대부분 날아갔다. 다리 근육이 다 빠져 걷지 못한다. 화장실 조차 혼자 가지 못한다. 24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에는 잠을 잔다. 정신이 들면 일어나 먹는다. 그리고 다시 잔다.  
복남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복남은 씩씩하고, 동네 곳곳을 다니며 커튼도 맞춰오고, 노인정에 가서 화투도 치고, 웃고, 떠들고, 마음에 드는 옷을 사고, 엊그제 떨어진 계란을 사고, 머리를 볶았다.
어느 날 손녀는 복남을 데리고 서울로 이사를 했다. 회사 다니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몇년 간 살던 동네를 떠나 손녀만 따라 생경한 동네에 터를 잡았다. 그곳은 노인이 살기에 부적절했다. 그나마 있는 노인정에 갔으나 기존에 노인정에 다니고 있던 노인들이 이유모를 텃세를 부리는 통에 다시는 가지 않았다. 살던 동네가 아니라 길도 낯설었다. 혹시라도 나갔다가 길이라도 잃어버리면? 복남은 산책 조차 할 수 없었다. 동네 친구도 없고, 갈 곳도 없었다. 복남은 귀가 좋지 않았다. 보청기 없이는 말을 잘 못알아들었다. 그렇게 집 안에서만 생활한지 1년 반이 넘어갔다. 복남을 그곳에 데리고 온 손녀는 밖으로만 나돌았다. 운동하러 간다, 뭘 배우러 간다, 친구 만나러 간다며 복남을 쳐다도 보지 않았다. 복남은 그렇게 홀로 시간을 보냈다.
홀로 시간을 보내도, 보내도, 복남에게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또 길었다. 귀도 들리지 않는 복남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복남의 무력감은 깊어갔다. 복남은 점점 더 살고싶지 않았다. 가만히 숨 쉬는 것이 싫었다. "나이들면 죽어야지" 를 입버릇 처럼 달고 살았으나 단 한번도 진심인적 없었던 복남이었다. 
이제는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복남은 죽고싶었다. 복남은 손녀에게 말했다. "제발 나 좀 죽여다오. 계단에다 굴려다오. 내가 나갈테니 문만 열어다오." 복남의 말에도 손녀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삶의 의욕을 잃은 그는 계단에서 구르는 대신 화학적 자살을 택했다. 대한민국 노인이라면 매일 꽉 찬 약봉지 하나 쯤은 먹어야 산다. 당뇨, 혈압, 심장, 신경계… 그는 어느날 먹고있던 모든 약을 끊었다. 죽기 위해서. 하루라도 빨리 죽기 위해서.
그렇게 아무도 모르는 사이 복남은 스스로 목숨을 끊어내고 있었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노인의 화학적 자살이었다.

자살로 보이는 노인 김복남의 화학적 자살은 사실, 모두에 의한 타살이었다. 복남의 아들과 딸들은 노인 김복남을 부양할 의지가 별로 없었다. 의지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능력이 없었다. 복남의 아들과 딸들은 능력과 의지의 문제로 복남을 죽였다.

복남은 손자와 손녀가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의지가 있었으나 능력이 없었다. 사실은, 복남의 손녀는 몇년간 최선을 다했으나, 더는 견딜 힘이 없었다. 그는 어느 순간 모든 것을 놓아버렸다. 복남을 위해 쓰던 돈도, 시간도, 모든 것을 그만두었다. 매 주말이면 함께 가던 병원도, 매주 한번씩 하던 외식도, 모두 그만두었다.
이제 손녀는 복남을 방치할 뿐이었다. 더이상 돈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복남에게 준답시고 사온 수많은 음식들은 그저 자위의 수단일 뿐이었다. 조모 김복남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일종의 자기 위로. 먹을 것만 덜렁 사다둔 채 그저 밖으로 쏘다니기 바빴다. 복남은 뒷전이었다. 살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그랬다. 복남의 손녀도 복남을 죽였다. 저 살자고 복남을 죽였다.

복남은 모든 것을 자식세대에 내어주고, 예견된 비참한 노후를 맞이했다. 자식들을 낳아 길러내고, 또 그 자식의 자식들을 길러내고,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을 털어주고나니 복남은 자식들에게 더이상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책임져야 할, 미안하지만 빨리 죽어버려야 할 생명일 뿐이었다.
복남의 늙은 딸은 조카에게 미안한 나머지, 복남을 향해 '빨리 죽어라, 빨리 죽어라' 빌었다. 복남의 늙은 딸은 자신의 조카에게 그것밖에는 해줄 것이 없었다.

늙은 딸이 희망하는대로 복남은, 반쯤 죽은 채로 요양병원에 누워있다. 다른 송장들과 함께. 요양병원은 돈을 받기 위해서라도 복남을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복남은 하루종일 누워서 TV를 보고, 삼시세끼를 꼬박 먹을 것이고, 약을 먹고 잠들기를 반복할 것이다. 누구도 복남에게 말을 거는 이는 없다. 오로지 손녀가 미안함과 죄책감이 뒤섞인 목소리로 할머니를 부를 것이다. 복남에게 남은 것은 병원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좌절 뿐이었다. 의미없이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속할 것이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할 것이다. 죽고싶지만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을 것이다. 

손녀는 복남을 보낸 뒤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했으며,
복남의 좌절이 누구의 책임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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