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아이유
tvN
소파에 드러누워 아이유가 나온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보고 있었다.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아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얼마 전부터 심장이 빠르게 뛰고 답답한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받는 상황에서만 가슴이 바쁘게 뛰더니 지난주부터는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수시로 심장이 뛰고 호흡이 어려웠다. 슬프게도 비슷한 증상을 겪은 사람이 주변에 여럿 있었다. 공황 혹은 불안 장애로 치료를 받은 적 있는 지인들에게 연락했다.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기 전에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약을 먹으면 분명 도움이 된다고.
근처 정신과를 검색해 소개 페이지가 마음에 드는 곳을 골랐다. '감기 걸렸을 때 내과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파서 정신과에 가는 것 뿐이야' 최면을 걸었지만 정신과라는 말이 덜컥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예약 전화를 거는데 가슴이 쿵쾅거렸다.
병원에 도착해 진료를 기다리면서 문진표를 작성했다. 낮 시간인데도 병원에는 끊임없이 문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냥 평범하게 살지, 참 별나다 별나"
지난해 가을, 동료들과 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고민하는 여성들을 위해 다양한 레퍼런스를 발굴하고 연결해 더 많은 가능성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온라인 멤버십 커뮤니티 '창고살롱'을 운영하며 여성과 일에 대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
창고살롱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지속가능성' 그리고 '일과 삶'이다. 20대만 해도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해서 잘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30대가 되자 일만 고민해서는 일을 지속할 수 없었다. 조금만 무리하면 몸이 고장났고 마음도 수시로 경고음을 보냈다. 특히 엄마가 되면서부터는 한 손에는 아이, 한 손에는 남편 손을 잡고 한몸처럼 움직여야 했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일과 삶을 함께 고민해야 했다.
30대가 되면서 두 번의 퇴사를 했다. 원하는 대학만 들어가면, 원하는 직장만 들어가면 진로 고민은 끝나는 줄 알았다. '이렇게 계속 일하는 게 맞는 걸까' 번뇌하는 순간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자주 찾아왔다. 그때마다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친정엄마는 말했다. "그냥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지. 참. 별나다. 별나." 창고살롱을 시작하고 다양한 여성을 만나면서 알게 됐다. 빛나는 롤모델도 평생 직장도 사라진 시대, 생애주기가 변하고 연차가 쌓일수록 일과 삶에 대한 고민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걸.
요즘 가장 큰 걱정은 과몰입이다. 하고 싶은 일과 하고 있는 일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창업을 했더니 더 열심히,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출근도 퇴근도 없이 늘 온(ON) 스위치가 켜져 있었다. 이렇게 하면 지속가능할 수 없다는 걸, 탈이 날 수밖에 없다는 걸 이미 아는데도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자꾸만 달리게 됐다.
"열심히 한 건 일밖에 없더라고요"
떨리는 마음으로 진료실에 들어갔다. 병원에서는 현재 내 상태가 공황 장애나 불안 장애가 아니라고 했다. 약을 복용해야 하는 정도의 상황도 아니라고. 다만 가슴이 빨리 뛰고 답답한 건 정신과적인 이유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일단은 약을 쓰지 않고 한번 기다려 보고 상태가 더 심각해지면 다시 찾아오라고 했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막막했다. 지속가능한 일과 삶을 스스로 만들기 위해서 창업했는데. 결국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구나. 내가 또 나를 힘들게 했구나. 자기혐오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