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냅니다

검토 완료

안승민(mingoodnice)등록 2021.04.05 08:38
학교의 비상식적 행정에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지난 금요일에 행정심판 청구서를 경기도교육청으로 보냈다. 앞으로 주기적으로 글을 통해 행정심판을 하며 겪은 일에 대한 글을 이어나갈 생각이다.
 
내가 행정심판을 청구한 이유
 

처음 1월에 제기한 정보공개에 대해 공개할 수 없음을 통보한 비공개 결정 통지서. ⓒ 저작권 없음(공문서)

 
내가 행정심판을 청구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학교의 교칙 개정 설문조사가 있다. 학교는 지난 12월 교칙 개정에 대해 두 차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나는 당연히 설문조사에 참여한 만큼 결과를 공개할 줄 알았다. 그러나 1월이 되도록 결과가 공개되지 않았기에, 1차 교칙 개정 설문조사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정보 비공개 처분을 받았다.
 
정보 비공개 처분 이유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5호이다. 해당 조항의 일부를 인용하면, "감사ㆍ감독ㆍ검사ㆍ시험ㆍ규제ㆍ입찰계약ㆍ기술개발ㆍ인사관리에 관한 사항이나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에 있는 사항 등으로서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이나 연구ㆍ개발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정보."를 정보 비공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학교는 교칙 개정 설문조사 결과가 공개될 경우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한다고 해서 업무의 공정한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리가 없다.
 
그리고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5호는 '다만, 의사결정 과정 또는 내부검토 과정을 이유로 비공개할 경우에는 의사결정 과정 및 내부검토 과정이 종료되면 제10조에 따른 청구인에게 이를 통지하여야 한다.'라고도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의사결정 과정을 이유로 정보를 비공개한 학교는 최소한 그 정보를 가지고 있다가, 의사결정 과정이 종료되면 청구인인 나에게 이를 통지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나는 정보 비공개 처분을 받고 몇 달 동안 고심했다. 학교의 비상식적인 행정에 화도 났지만, 솔직히 학교를 상대로 행정심판을 청구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지 못하면, 자칫 얻을 게 없는 그런 행정심판이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래서 고심 끝에 지난번에 공개를 청구한 1차 교칙 개정 설문조사와 함께 2차 교칙 개정 설문조사에 대하여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1월에는 존재한다던 정보가 갑자기 4월에는 존재하지도 않는다고 통지해왔다. 정보공개 청구외 부존재 통지서. ⓒ 저작권 없음(공문서)

 
4월 1일, 메일을 받아본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해당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보 부존재 통지서'가 메일로 온 것이다. 처음에는 만우절이라 나에게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공공기관이 민원인을 상대로 만우절 장난을 칠 리는 없었다.
 
'정보 부존재 통지서'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위에서 밝혔듯이 학교는 의사결정 과정이 종료되면 나에게 정보를 통지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정보를 보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는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내게 통보해왔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다. 만약 학교가 정말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정보공개법을 위반한 것이고, 가지고 있다면 내게 거짓된 사실을 통지한 셈이 된다. 저런 통지를 받아보고 나는 결심을 굳혔다. '행정심판을 청구해야겠구나.'
 
행정심판 청구서의 청구취지 부분에 나는 두 가지를 적었다. 첫째는 정보공개법 제9조 제1항 제5호에 의한 정보 비공개처분은 비상식적이니 취소해달라는 취지, 둘째는 정보 부존재처분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기에 취소해달라는 취지였다.
 
미성년자인 나,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을까
나는 법적으로 만14세의 미성년자다. 따라서 행정심판을 청구하기에 앞서, 미성년자인 내가 행정심판을 청구할 자격이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했다. 처음에는 행정심판법을 살펴보았다. 행정심판법 제13조(청구인 적격)는 '취소심판은 처분의 취소 또는 변경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청구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래서 당연히 나는 청구자격이 있다고 판단하고 온라인행정심판(www.simpan.go.kr) 사이트에 접속했다.
 
사이트에 접속해 만14세의 미성년자로 회원가입을 시도하니, 민법 제5조를 들며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요구했다. 민법 제5조(미성년자의 능력)는 '미성년자가 법률행위를 함에는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내가 단독으로 행정심판을 청구하려면, 이 행정심판이 권리만을 얻는 행위임을 입증해야 한다. 법정대리인의 동의를 받아 청구하는 방법도 있으나 나는 내가 스스로 행정심판을 청구해보고 싶었다.
 
관련 결정례를 찾아보니, 나와 비슷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강원도행정심판위원회 2017-235, 정보 비공개결정 취소청구 결정문이 나와 비슷한 사례이다. 이 사건 역시 만14세인 미성년자가 정보 비공개결정에 대한 취소를 청구한 것이기에 나와 매우 유사하다. 이 사건에서 피청구인 측은 만14세라는 청구인의 나이를 문제 삼아 각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강원도행정심판위원회는 '이 사건 정보공개청구는 미성년자가 권리만을 얻는 행위라 할 것이어서 이 사건 심판청구가 청구인적격이 문제되어 부적법한 것으로 판단되지 아니하고, 권리능력이 있는 자라면 청구인 적격 자체는 인정된다고 판단된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한시름 놓으며 서면으로 행정심판 청구서를 제출했다. 지난 금요일에 수원우편집중국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앞으로 어떤 싸움을 해나가야 할까요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피청구인인 학교 측에서는 근거를 들어 나의 주장에 대해 반박할 것이고, 내가 다시 반박해야 할 수도 있겠다.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로운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교칙 개정 설문조사를 공개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는 어떻게 보면 사소한 문제일 수 있겠다. 설사 결과가 공개되더라도 교칙 개정을 안 해 버리면 아무 의미 없는 행정심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의 의견을 학생들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교칙 개정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일이지만, 어떻게 보면 큰 일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며 행정심판을 진행할 생각이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연대를 부탁드린다.
 
그리고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에서 발간한 '어렵지 않으려고 애쓴 정보공개청구 가이드북'이 행정심판을 청구하면서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어렵지 않으려고 애썼다는 제목과는 다르게, 어렵기는 했으나 덕분에 행정심판을 잘 청구할 수 있었다. 마음을 전하기에 부족하겠지만 이 글을 빌려 감사를 전한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중학교에 재학 중인 청소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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