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공통주택 공시지가에서 전국 최고가 아파트로 등극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더펜트하우스청담(PH129)'(왼쪽 하얀 건물)의 모습.
연합뉴스
앞서 제기한 세 가지 의문처럼 우리가 부동산 '시세'라고 부르는 가격에는 여러 허점들이 있다. 때문에 시세를 부동산의 가격이나 가치, 실거래가와 혼용해서 사용하면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시세라고 일컫는 '실거래가'는 거래 당사자의 개별적이고 특수한 사정이 개입된 한정가격에 가깝다.
예컨대 다주택자 양도세 한시 감면규정에 걸려서 특정시점까지 매도하지 않으면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경우, 매도자는 특정 시점까지는 늘어나는 세금만큼 더 낮은 가격으로 매도할 수 있다. 구조와 면적 비교가 쉬워 시세의 파악이 비교적 용이한 아파트라고 하더라도 고급자재와 디자인이 더해진 인테리어에 많은 비용을 투입했다면 매매가격이 높아질 수 있다.
실거래가격은 이렇게 매도자·매수자의 다양한 개별적 사정과 정부 정책의 변동, 매수의 목적, 금융 환경 등 수많은 요소에 따라서 여러 가지 양태로 나타날 수 있다. 부동산 가격에는 이런 여러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
실거래가의 다양한 양태를 고려하지 못한 정부 정책은 이를 악용하는 세력을 낳았다. 2006년 노무현 정부에서 부동산 거래투명성 확보를 위하여 부동산 실거래가 신고제도를 도입하였으나, 오히려 실거래가격은 사람들의 투기 심리와 불안 심리를 자극하는 데 발빠르게 악용됐다. 실거래가격 신고 후 취소 등 온갖 불법·탈법 거래를 조장하는 쪽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거래 목적이나 매매의 개별성을 반영하고 분석할 수 있는 방향으로는 제도의 보완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 사회는 부동산의 가치를 실거래가라는 매우 들쭉날쭉하고 불완전한 정보만을 근거로 판단한다. 때문에 부동산 실거래가 공개제도는 그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가 투기꾼들의 투기가격을 공공 데이터를 통하여 정당화시켜 주는 수단이 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부동산의 가치는 어떤 실거래가격을 기준으로 비교하느냐에 따라 편차가 크기 때문에 정부 스스로 공시지가 산출근거조차도 공개할 수 없는 비극적인 현실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부동산 가치에 대한 국토부의 안이한 태도
국토부는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는 정확한 시세 조사에 기반해야 하는 만큼, 산정기준을 명확히 하고 시세에 대한 검증·심사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시세 산정 시 부적정 거래 사례 배제 기준을 명확히 하고 감정평가사-감정원 간 교차심사, 외부전문가 심사 등 엄격한 심사를 거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 조사자의 자의성을 배재하기 위해 자동가격산정모형을 통한 검증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국토부의 이 같은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은 정부가 얼마나 부동산 시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현실 감각이 없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 돼야 할 공시가격 현실화 자체가 마치 부동산 정책의 최종목표인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수백억원 대의 초고가 단독주택의 경우는 매매가 빈번하지 않기 때문에 기준으로 삼을 만한 실거래가를 포착하기 어려워 시세 반영률이 낮다. 10억원 전후의 구축 중소형 단독주택의 경우, 실거주 목적보다는 다세대주택을 신축하여 분양하기 위한 거래가 많기 때문에 시세 반영률이 낮다. 같은 단독주택이라도 특성에 따라서 현실화율이 낮은 이유가 다르다.
게다가 2006년 이래 지난 15년간 쌓여 있는 실거래가격 자료 자체는 불충분하고 일관성이 없다. 지역과 부동산에 따라서는 사례의 수가 매우 적거나 없기도 하고, 적정한 거래 사례인지, 대표성이 있는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조사자의 자의성을 배제한다면서 자동가격산정모형을 통한 검증 등을 하겠다는 것은 부동산 시장과 부동산의 가격형성 원리, 부동산 가치 평가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나온 발상이다. 또 단순한 실거래가격만을 놓고, 아무런 의미없는 가격대별로 구분하여 주택별 현실화율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이런 국토부의 안이함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부동산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부동산의 적정가격을 정하기 위한 조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