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지로입구역 앞, 하나은행 노동자의 목소리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넘어, 하나금융지주의 지배구조 개선으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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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민(mingoodnice)등록 2021.03.22 11:27
지난 21일, 나는 어느 날처럼 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 을지로입구역 앞에서 내렸다. 을지로입구역 1번 출구에서 자전거를 빌리러 가는 길에 한 컨테이너 안에서 투쟁하고 계신 분들을 보았다. 컨테이너를 보자마자 궁금해졌다. 그분들은 왜, 하나은행 앞 '2020년 임단투 승리 및 지주회장 4연임 반대 투쟁'이라고 쓰인 컨테이너에서 농성하고 계실까. 안에 들어가 간단히 기자를 소개하고 20분 정도 대화를 나누었다.
  

을지로입구역 1번 출구 앞이자 하나은행 본사 앞에 '임단투 승리 및 지주회장 4연임 반대 투쟁'이라고 쓰인 컨테이너가 보인다. ⓒ 안승민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용을 소개하자면, 2020년도 임금 및 단체협약이 해를 넘긴 2021년까지도 체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임금 및 단체협약이 제대로 체결되려면 회사인 은행 측에서 성실하게 권한을 가지고 교섭에 임해야 한다. 하지만 사측에서는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고 있다. 그 원인은 금융지주회사의 지배구조 문제에 있다고 한다. 하나은행이 금융지주회사, 즉 하나금융지주의 눈치만 보면서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 교섭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년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이 파행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2019년 하나은행 임금 및 단체협약은 2020년 6월이 되어서야 체결된 전례가 있다. 매년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는 것은 구조적 문제가 분명히 존재함을 증명하고 있다.
 
이런 구조적 문제 때문인지, 컨테이너 밖에도 2020년 임단투 승리와 함께 빨간 글씨로 '지주회장 4연임 반대'라는 글이 쓰여있다. 하나금융지주의 김정태 회장(대표이사)은 2012년 3월 하나금융지주 회장직에 오른 이후 현재까지도 세 번 연임하며 직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인 26일, 하나금융그룹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4연임을 시도하고 있다. 하나금융그룹 제16기 정기주주총회 소집통지에 따르면, 제3-9호 의안으로 '사내이사(김정태) 선임의 건'이 공고되어 있다. 4연임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김정태 회장에게 4연임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은행 본사 앞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4연임이 어떠한 의미인지는 알 것 같다. 매년 반복되는 회사의 불성실한 교섭과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을 위해 거리에서 맞서 싸워야 하는 그들의 마음을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알고 있을까?
 
투쟁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과 관련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투쟁하고 계신 두 분은 '귀족노조' 프레임 때문에 강력하게 투쟁하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하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 컨테이너를 설치하고 현수막을 거는 것일 뿐 더 세게 투쟁했다가는 '귀족노조'라고 욕을 먹기 일쑤라며 어려움을 이야기하셨다. '귀족노조' 프레임이 우리 사회에서 무섭게 작용하고 있음을 새삼 느꼈다. 그 이외에도 지하로 지하철이 지나갈 때 땅이 울리는 점도 불편하다고 이야기하셨다. 내가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는 편하게 다녔는데 이렇게 울리는 줄 몰랐다"라고 말했더니 그분들은 "저희도 몰랐어요"라고 대답하면서 웃으셨다. 그렇다. 지하철이 지나다니며 울리는 것이 투쟁하는 분들에게 불편함을 주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컨테이너 안, '지주회장 4연임 반대 투쟁!' '2020 임단투 투쟁으로 쟁취하자!' '노동가치 인정하고 정당한 보상 실시하라!'라고 적힌 피켓들이 붙어 있다. ⓒ 안승민

  

컨테이너 안의 모습. 사진을 찍으려고 하자 급하게 책상 위에 놓으신 물건을 정리하셨다. 뒤로는 사측의 성실한 교섭을 요구하는 피켓과 지주사의 각성을 요구하는 큰 피켓이 함께 있다. ⓒ 안승민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하나금융그룹 홈페이지(www.hanafn.com)의 CEO 인사말을 통해 '금융업의 본질은 신뢰'라고 인사말을 남기며 하나금융그룹 전 임직원은 '모두의 기쁨! 그 하나를 위해' 온 힘을 다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김정태 회장이 모두의 기쁨을 위해 온 힘을 다해왔는지는 잘 모르겠고 관심도 없으나, 하나은행 본사 앞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기쁨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모르겠다.
 
두 분과 20분 남짓한 짧은 이야기를 마치고 사진을 몇 장 찍고서는 나왔다. "투쟁!"이라고 인사하니 "투쟁!"이라고 받아주셨다. 언제까지 이런 투쟁이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웃으며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 하나은행은 임금 및 단체협약 체결 교섭에 성실하게 임하고, 하나금융지주는 교섭에 도움은 되지 못할망정 방해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교섭을 넘어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지주사의 구조도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투쟁을 보아야 할까.
덧붙이는 글 점심시간을 앞두고 아무런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갔음에도 선뜻 이야기 나누어주신 두 분께 지면을 빌려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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