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안전위원회 위원장 이제복
이제복
나의 어릴 적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겠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 누나들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다. 누나들이 학교나 학원을 마치면 밤늦게 집에 돌아왔는데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부터 집으로 오는 한 골목길이 꽤 길고 어두웠다. 나는 한 번도 그 길을 무섭다고 느낀 적이 없지만 누나들은 무서워했다.
그래서 밤에 집으로 오는 길이면 매일같이 집으로 전화해서 놀고 있는 내게 마중 나오라고 했다. 나는 왜 초등학생인 나를 마중 나오라고 했는지 당시에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누나가 시키는 일이니 열심히 마중 나갔다. 그런데 이게 매일 반복되니 어떤 날은 하루에도 세 번씩 나가거나,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뛰쳐나가야 하니 꽤 번거로운 일이 됐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누나에게 왜 이 길이 무섭냐고 큰맘 먹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누나가 우리 집 앞 골목길이 너무 캄캄하고 긴데 가로등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다른 골목길은 이 정도면 가로등이 두세 개는 있는데 누나들이 집으로 오는 딱 그 골목길만 가로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그러면 가로등만 설치되면 더 이상 마중 나가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바로 동네 동사무소에 달려갔다. 동사무소 직원에게 "우리 집 앞에 골목길이 있는데 너무 어두워서 누나들이 집으로 오는 걸 무서워해요"라며 종이에 골목길을 그려서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꽤 긴데 가로등이 하나도 없어요. 이 정도 위치에 하나 설치해 주셔야 안전해질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그 골목길에 내가 꼭 집은 위치에 밝은 가로등이 생겼다. 엄청 신기했다. 와, 초등학생인 내가 우리 동네에 가로등을 달다니! 뭔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했다는 생각에 매우 뿌듯하고 기뻤다. 물론 더 이상 하루에 최대 세 번씩 누나들을 마중을 안 나가도 된다는 사실에 더 기뻤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적어도 우리 누나들에게 밤길이 무서운 세상을 조금이나마 해결한 것이다.
혹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 설치한 것 가지고 밤길이 무서운 세상을 해결했냐고 핀잔을 줄지도 모르겠다. 물론 당시 내가 '어두운 골목길이 없는 세상'을 만들거나 하는 거창한 일을 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일화를 소개하는 이유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 바로 골목길 하나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또 그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온 세상이 바뀐 것과 마찬가지인 효과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온 지구의 밤길을 모두 다 밝힐 수는 없다. 하지만 누구라도 우리 동네에 어두운 골목길 하나 정도는 밝힐 수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꾼다는 일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혹시 아는가, 어느날 모든 동네의 초등학생들이 각자 다니는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씩을 밝힌다면 우리나라 모든 골목길은 밤에도 밝게 빛나서 안전해질지 말이다.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그들보다 똑똑하다
가로등 사례처럼 원래 있는 아이디어를 추가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사회의 새로운 문제에 대한 창의적인 해결책을 창안하거나 더 좋게 바꾸는 것은 결코 아무나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이 흔히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 사회를 만들어 놓은 당시 엘리트들이 결코 불완전하게 만들지 않았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 믿음은 옳은 것일까?
이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하겠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사회의 구체적인 모습은 언제 만들어진 것일까?
분명 몇 년은 전일 것 같은데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면 구체적인 예시를 생각해 보자. 우리가 길을 걸으면 매일 볼 수 있는 시각장애인 유도블록을 떠올려보자. 바닥에 점자 혹은 일자 형태로 돼 시각장애인들이 지팡이로 그 모양을 감지해서 직진해도 되는 것인지, 아니면 멈춰서 주변을 살펴야 하는 곳인지를 알려주는 아주 단순한 신호판이다. 이 신호는 아주 단순하지만 시각장애인들에게는 눈이 되어주는 만큼 매우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