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연설문 검열? 제가 피해자입니다

저는 학교의 검열, 민주주의 파괴의 마지막 피해자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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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민(mingoodnice)등록 2021.03.05 16:10
나는 지난 학생회 선거에 학생회장으로 출마했다. 출마하면서 민주주의, 그리고 인권이라는 가치를 널리 알리고자 했다. 하지만 내가 기대하던 민주주의는 우리 학교에 없었다. 우리 학교에는 공약 검열, 연설문 검열, SNS 검열, '검열 민주주의'만 있을 뿐 민주주의는 없었다. 내 기대가 컸던 것이 잘못이라면 잘못이다.
 
나는 이러한 잘못된 현실을 부당하다고 판단했지만 어떻게 내가 검열당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명박-박근혜 정부 국정원의 민간인 사찰 자료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용기를 얻어 지난 선거 과정의 검열과 관련된 자료에 대해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그 결과 일부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학교 선거관리위원회의 회의록. 연설문 검열을 정당화하며 연설문 검열을 행하고 있다. ⓒ 회의록

 
기자가 정보공개포털(www.open.go.kr)을 통해 입수한 학교 회의록에 따르면, 나를 포함한 4개 후보 모두가 연설문을 검열받았다. '학생자치회는 선서(선거의 오타로 추정)를 통해 성립된 민주적인 기관'이라면서 연설문 검열을 정당화한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자기들이 검열은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검열을 정당화한 것이다. 고작 9명에 불과한 사람들이 자신들은 민주적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웃기는 일이다. 세상에 정당한 검열, 민주적인 검열이 어디에 있는가?
 
나를 포함한 네 후보는 사소한 표현마저 검열당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표현은 모두 검열하여 삭제당했다. 우리 학교의 비민주성, 인권침해를 근절하겠다는 각오를 담아 적은 '우리 학교를 박살내자!'라는 기호 2번, 즉 나의 말은 '표현을 순환'하도록 검열되었고, '학생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에 대한 내용'은 삭제당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후보도 학생자치회에서 일방적으로 연설문을 검열해 입맛에 맞지 않는 내용은 삭제당했다. 내가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후보 역시 피해를 본 것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자신들이 민주적인 기관이라고 주장하면서 대통령 선거 후보자의 연설문과 공약을 검열한다고 하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관권선거'이며 '부정선거'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후보자의 입을 틀어막으려는 것은 명백하게 반민주적인 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왜 이런 일이 아무 문제 없이 진행되는가? 아무도 이런 일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은 것인가? 이는 대한민국 학교에 민주주의는 없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하나의 증거다.
 
나는 학교의 공약 검열, 연설문 검열, SNS 사찰의 피해자다. 학교가 학생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유엔 아동권리협약 제12조는 '당사국은 자신의 견해를 형성할 능력이 있는 아동에 대하여 본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모든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견해를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를 보장하며, 아동의 견해에 대하여는 아동의 연령과 성숙도에 따라 정당한 비중이 부여되어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이러한 권리가 인정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 높으신 분들의 입맛에 어긋나면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지 않는 곳이 바로 우리 곁에 있는 학교다.
 
나는 이 선거 과정에서의 명백한 인권침해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상태이다. 내가 기댈 곳이 국가인권위원회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참담하다. 학교에서 공동체적 해결을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쉽지 않았다. 나는 결국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외부 기관에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묻는다. 언제까지 우리는 학교에서 민주주의 없이 살아야 하는가? 언제까지 공약을 검열당해야 하는가? 연설문의 표현까지 검열당해야 하는가? SNS를 검열당하고 사찰당해야 하는가?
 
학교에 묻는다. 당신들은 정녕 부끄럽지 않은가? 학교의 '검열 민주주의'에 맞서 100일이 한참 넘도록 싸워오는 내가 여기에 있다. 학교의 민주주의는, 그리고 당신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선거 무효화 요구도, 책임자의 징계 요구도 할 수 있다. 지난 선거가 공정하지 않게 치러졌음이 너무나도 명백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하지 않은 이유는 아직 학교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학교를 사랑하는데 학교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지난 선거에서 전교생에게 '선거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른 애'로 알려져 있다. 부정선거를 만든 사람은 내가 아닌 학교다. 학교는 나에게 아직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학교에 다시 한번 묻습니다. 언제가 되어야 지난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사과하실 겁니까? 언제가 되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할 겁니까? 

 학교의 검열, 민주주의 파괴의 마지막 피해자는 제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학교를 꿈꿉니다. 앞으로는 검열 민주주의의 피해자가 없는 세상도 함께 꿈꾸어봅니다. 여러분의 연대를 부탁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필자는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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