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요시로 전 도쿄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 회장.
연합뉴스=교도통신
5개월 앞으로 다가온 도쿄올림픽에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먼저 2014년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발족한 이래 7년간 위원장 직을 수행하고 있던 모리 요시로 전 총리의 사임이다.
그는 2003년 총리직 사임 후 자신이 추천한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총리직에 앉으면서 막후 실력자로 활동하다가 2009년 민주당 집권과 더불어 현실정치에서 사실상 은퇴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 스포츠계의 보스로 군림해 왔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1년간 일본럭비협회의 회장직을 맡았고, 2014년 도쿄 올림픽 개최가 결정되자마자 만장일치로 조직위원장으로 추대됐다. 물론 일정 및 건강상 문제 등으로 두 가지 직책을 동시에 수행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럭비협회 회장직은 사임했지만, 여전히 럭비협회의 실질적인 권력자로 활동해 왔다.
이렇듯 스스로 은퇴를 선언하지 않은 한, 죽을 때까지 일본 아마추어 스포츠계의 보스로 군림할 것 같았던 그가 지난 2월 3일 일본 올림픽 임시 평의원회의에서 무심코 내던진 "여성이 많이 들어가 있는 이사회는 시간이 걸린다"라는 발언이 사회각계각층에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올림픽 실무를 관장하는 도쿄의 고이케 유리코 도지사는 즉시 유감이라는 뜻을 나타냈고, 도쿄도청에는 모리 위원장의 사과와 사임을 요구하는 전화, 그리고 자원봉사를 그만 두겠다는 탈퇴신청이 잇따랐다. 2월 9일 기준으로 자원봉사자 사퇴는 500여 명에 달하며, 성화 봉송 릴레이 주자 두 명도 사퇴할 뜻을 나타냈다.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에 대해 도쿄도의 한 공무원은 기자의 전화취재에 "저는 도시계획과 소속인데 우리 쪽으로도 전화가 엄청나게 걸려왔다"면서 "실무를 담당하는 스포츠분과 쪽은 며칠 동안 하루 종일 클레임 전화가 걸려와 아주 혼쭐이 났다고 들었다"라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모리 전 총리는 사임할 뜻을 내비쳤고, <아사히신문>이 13, 14일 양일간 실시한 긴급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2%가 '모리의 사임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그만 둘 이유가 없다는 의견은 21%에 불과했다.
중요한 점은 그의 문제 발언이 어제오늘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총리 재직 시절부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망언제조기'로 유명했다.
유명했던 망언
그가 남긴 대표적 설화 스캔들을 꼽자면 "일본은 덴노(천황)를 중심으로 한 신의 나라"가 빠질 수 없다. 총리대신 직을 수행하고 있던 2000년 5월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도중 갑자기 이 발언을 해 일부 참석자들조차 깜짝 놀란 해프닝으로 유명하다. 왜냐하면 일본헌법에 정교분리 원칙과 덴노의 현실정치 불개입이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현직 총리가 깨버린 셈이니 엄청난 스캔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비판 여론을 비웃기라도 하듯 바로 다음 달 "(선거에서 누굴 찍을지 아직 고민 중인 사람들은) 관심 없다 치고 투표 당일 집에서 잠자면, 뭐 그것도 괜찮지"라는 선거무관심을 재촉하는 발언을 해 파문을 불러 일으켰다.
그의 설화 스캔들은 총리직 퇴임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2003년 6월 가고시마 현 가고시마 시에서 열린 한 공개토론회 자리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 여성에게 세금을 쓴다는 건 이상하다"라는 여성멸시 발언을 했고,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 취임 후인 2014년 2월 소치 동계올림픽 당시 피겨스케이트 시합에 출전한 아사다 마오 선수가 경연 도중 넘어지자 "저 애는 항상 중요할 때 넘어진단 말야"라고 말했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때에도 "기미가요를 소리 내어 부르지 않는 선수는 일본대표로서 자격이 없다"라는 지론을 펴기도 했다.
워낙 설화문제가 많다 보니 "이번 여성차별 발언으로 (모리가) 사임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낸 사람들 중에는 "모리 전 총리의 그런 발언 한두 번 들어보나? 원래 그런 사람인데 뭘 새삼스럽게"라는 역설적인 이유를 드는 이도 꽤 많았다.
모리 대신 극우인사?
문제는 모리 전 총리의 사임이 결정된 이후이다. 불명예 퇴진을 하는 모리가 후임자를 추천한 것도 이상했지만, 추천자가 하필이면 극우주의자 가와부치 사부로 전 일본축구협회 회장이었던 것이다. 가와부치는 고령의 나이(만 84세)에도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데 그가 이전에 트위터에 올린 극우 발언들이 재조명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