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Presidential Press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3개월 후면 6년 임기의 중반을 넘어선다. 사실 그에게 6년 임기의 중반이라는 시점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에게는 3년이 아닌 15년이 남았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권한대행을 제외하면 푸틴 대통령이 처음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2000년 5월 7일이다. 당시 그의 나이 48세. 두 번의 4년 임기를 마친 후 헌법의 '3연임 금지' 조항을 피해 2008년 총리직으로 잠시 물러났지만 4년의 '막강 총리' 역임 후 그는 다시 대통령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4년 만에 크렘린궁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린 것은 2년 더 늘어난 6년의 임기였다. 그가 총리로 재직하던 2008년, 그의 측근이자 당시 현직이었던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법을 고쳐 차기부터 임기를 6년으로 연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해 러시아는 개헌을 통해 지금까지 푸틴 대통령의 임기는 모두 백지로 하고 다시 연임에 도전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 조항을 승인했다. 결국 6년 연임 임기를 마치는 2024년 푸틴 대통령은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게 됐고, 재임까지 마치고 퇴임하면 그의 나이 84세가 된다. 거의 반평생을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셈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낮지 않다. 지난 2018년 선거에서 얻은 푸틴 대통령의 득표율은 76.69%. 2위를 차지한 파벨 그루디닌 후보와의 격차가 무려 64.92% 포인트로 웬만한 당선자의 득표율 수치보다 높다. 앞선 2012년 선거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이처럼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푸틴 대통령을 위협할 정도의 강한 야권 지도자는 쉽게 나오기 어려워 보인다.
선출직 국가원수로는 드물게 푸틴 대통령이 이토록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그 둘 사이에는 연관성도 있지만 상호모순도 있다. 조만간 이 두 가지 요인에서 기인하는 사회현상들의 충돌로 러시아 국민들은 중대한 선택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푸틴의 장기집권 이유 ① - 역사와 성향
러시아는 1991년 소비에트 체제가 붕괴되면서 전혀 경험하지 않은 서구 민주주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였다. 반면 동구권의 갑작스러운 붕괴에 서구 사회는 승리감에 도취했지만 이들을 포용하는데 너무나 서툴렀다. 준비가 전혀 안 된 것은 서구도 마찬가지였던 것. 결국 유럽의 한 식구가 될 줄 알았던 러시아는 그들과의 괴리감을 실감하면서 러시아의 자존심과 영광을 찾을 새로운 길을 구하기 시작했다.
과거 차르(Tsar)가 지배하던 전제군주국 러시아는 역사상 서유럽의 어떤 왕정에 비해도 유난히 강력한 일인 지배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어 등장한 소비에트 역시 하나의 정당이 국가를 온전히 접수하는 전체주의로, 사실상 전제주의와 이 맥락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서구 민주주의를 천천히 흡수할 시간적 여유 없이 서구 사회에 대한 배신감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 20세기를 마감한 러시아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위한 새로운 국가 지도자를 원했다. 그 지도자는 차르와 같은 강한 힘을 가진 지도자여야 했고 그때 국민들 앞에 나타난 것이 블라디미르 푸틴이었다.
당시에 러시아 국민들이 원하는 지도자상은 2002년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극장 인질극을 처리하는 정부의 대응 조치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에서도 드러난다. 2002년 10월 23일 체첸독립주의자 42명이 모스크바의 오페라 극장에 난입해 관객 850명을 억류하면서 인질극을 벌였다.
이에 대해 러시아 당국은 즉각 철저한 강경 진압작전을 벌였다. 그 결과 인질범들을 모두 사살했지만 그보다 세 배나 많은 133명의 인질도 현장에서 함께 사망했다. 이 끔찍한 결과에 대해 국제사회의 예상과 달리 당시 러시아 국민의 83%는 푸틴 행정부의 조치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대로 권력과 부유층의 비리와 부패를 바라보는 러시아 국민들의 반응은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독일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정부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 : 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매년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와 함께 순위를 발표하는데 올해 발표한 2020년 자료를 보면 러시아는 전체 대상국 180대국 가운데 129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일간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016년 1월 28일 러시아인들의 부패에 대한 인식이 서구 사회와 다르다는 내용의 보도를 한 적이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그 보도는 러시아의 한 언론인 기고문을 소개한 것으로, 전적으로 미국인 관점의 판단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그 보도에 따르면 '부패'라는 단어 자체가 원래 러시아어에 없는 외래어로, 부패에 대한 서구의 사고방식을 러시아인들은 이해하지 못하며 서구의 '부패'에 해당하는 것은 그들에게 오히려 우정과 친밀함에 해당한다고 한다. 또한 권력이 생기면 돈이 따라붙는 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러시아인들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의 안보와 안정을 위해 개인의 희생은 감내해야 하는 것, 권력 주체의 통치행위에 따라다니는 '부패'에 대해 너그러운 것, 이것이 러시아에서 아무리 선거를 치러도 정권이 바뀌지 않을 수 있는 첫번째 요인이다.
푸틴의 장기집권 이유 ② - 의문의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