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급등 사유 없음>, 허무한 아수라의 그림자

"오리발을 내미는 것 같지만 주가급등의 명확한 사유는 애초부터 없었다."

검토 완료

김화숙(dream40)등록 2021.01.28 09:26
"이 책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지레 겁먹는 독자가 있지 않을까?"

"관련 사채들을 독자들에게 이해시키려 하지 말자."


<주가 급등 사유 없음>(장지웅, 이상 미디어, 2020)의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한 말이다. 독자를 이해시키려 하지 말자고 그가 결심하게 한 계기가 있었단다. 증권사 직원을 대상으로 강의한 어느 강사의 말 때문이었다. 'CB 발행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 4시간 넘는 강의를 들은 후 증권사 직원들의 반응이 다 같더란다.

"너무 어렵다. 포기하자."


증권사 직원들도 포기하려는 주제를 일반 독자가 어떻게 읽을까? 그러나 겁먹지 말자. 저자가 충분히 고민하고 단순화하여 쓴 책이기 때문이다. <주가 급등 사유 없음>의 부제를 눈여겨보자. '세력의 주가 급등 패턴을 찾는 공시 매뉴얼'. 역시 낯선 용어들이 눈을 어지럽힌다. 그러나 저자는 분명히 방향을 제시한다. 세력이 주가를 움직이는 길목마다 공시가 보내는 뚜렷한 신호가 있다고. 어려운 용어를 다 알려 하지 말고 넘어가라고.
 
독자들께서는 관련 용어를 100% 이해하거나 달달 외우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지 않았으면 한다. 세력의 움직임에 대한 패턴이나 법칙을 눈여겨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가 급등 사유 없음> 10쪽

​  

<주가 급등 사유 없음> 세력의 주가 급등 패턴을 찾는 공시 매뉴얼. ⓒ 김화숙

     

책은 6개 장으로 구성된다. 1장 "차트만 보고 급등주를 찾을 수 있을까?"와 2장 "99%가 아는 전략으로 상위 1%의 수익을 내겠다고?"는 책 전체의 서론과 같다. 주가 부양 의지는 전자공시에 드러난다는 저자의 관점대로 차트와 시황을 개괄적으로 보여 준다. 3장-5장은 본론이자 실전이다. "주가가 움직이기 전 공시에 나타나는 신호", "공시 해석, 이보다 명쾌할 수 없다", "하락장에서 급등주가 등장하는 이유" 등 본격 공시와 세력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 6장 "세력을 인터뷰하다"는 세력이 된 사람들의 생생한 육성과 '아수라' 혈투를 담고 있다.


책의 최고 장점은 간결하고 쉬운 문장이다. 전문 용어인데 쉽게 읽히는 역설이다. 한 꼭지는 평균 4-6쪽, 지면 배치도 눈에 쉽게 들어온다. 3장 실전 편이 28개 꼭지로 가장 많다. 소제목이 본문 내용을 압축해 보여준다. "외울 필요 없는 CB, BW, EW, 유상증자", "지분 인수 목적, 경영 참여입니까?", "시가총액 2천억 원이 기준이다" "돈 없이 나서는 m&a, 정관변경과 신규 감사 선임 후가 중요하다", "외국인 수급은 착시일 뿐이다"......


각 장마다 있는 한 줄 정리와 다트 포인트, 도표와 문서 예시가 독자의 이해를 도와준다. 어렵다며 지레 겁먹을 독자를 염려한 저자의 배려가 돋보이는 대목인다. "너무 어렵다. 포기하자."라던 증권사 직원들을 기억하는가? 이 책의 독자들은 아마 전혀 다른 고백을 할 것이다. "어라? 재미있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바쁜 독자는 한 줄 정리와 다트 포인트만 읽어도 책의 흐름과 기본 개념을 따라갈 것이다. 깔끔한 정리의 예를 보면 이렇다.
한줄 정리
전환사채(CB): 발행 회사의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채.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회사의 신주를 인수할 권리를 지닌 사채
교환사채(EB): 발행 회사의 주식뿐만 아니라 회사가 보유한 다른 회사의 주식으로도 교환할 수 있는 사채
메자닌 사채: CB, BW, EB처럼 주식과 채권의 중간 성격(메자닌)을 지닌 채권
유상증자: 유상으로 주식을 추가 발행하여 자본금을 늘리는 것
'외울 필요 없는 CB, BW, EB, 유상증자' 55-61쪽
 
DART 포인트!
1. 최대주주 변경 공시에서 꼭 확인할 것은 지분 인수 목적이다.
2. 세력이 M&A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은 두 가지다.
* 시가총액을 늘린다: 사업적 요소와 자산 평가를 토대로 기업 사이즈를 확장하는 중기적 접근
* 주가만 띄운다: 단발적인 이슈나 이벤트로 시장의 심리를 활용한 순간적 주가 부양
'지분 인수 목적, 경영 참여입니까?' 72쪽
 ​

저자 장지웅은 15년간 다수의 상장사와 자산운용사, 창업투자회사, 벤처캐피털 등 기업의 인수합병(M&A)을 주도하는 현장에 있었다. 기업가치 평가, 기업 상황에 맞는 메자닌 채권 발행, 최종 계약 성사까지 M&A 전 과정에 기업 CEO가 믿고 맡기는 전문가였다. 그 세계를 떠난 후 현재는 이상 투자그룹의 임원, 이상 투자자문사의 사외이사, 주식교육 전문 채널 이상 스쿨의 대표강사, 미디어 커머스 기업 이상미디 랩의 대표를 맡고 있다.


그는 자신이 경험하고 아는 것을 쉽게 쓰고자 했다. 일반 독자와 일반 투자자들에게 투자와 관련한 전문지식을 쉽게 공유할 수 있는 책. 인터넷 검색으로 얻는 얕은 지식 말고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경험과 노하우를 담은 책. 세력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전자공시 독해 테크닉을 담은 책. 책을 통해 단 한 명의 투자자라도 뻔한 손실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저자의 마음을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 

<주가급등 사유 없음>, 도표와 깔끔한 정리가 독자의 이해를 도와준다. ⓒ 김화숙

 

책을 읽다 보면 저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대목을 여럿 만날 수 있다. 경제 경영 주식도 어려운데 세력은 뭐며 사유 없음은 뭐란 말인가. 그러나 생각보다 쉽고 재미있어 놀랄지도 모른다. 주식 시장을 둘러싼 환경과 구조를 볼 수 있게 눈을 넓혀주는 고마운 책이 될 것이다. 저자가 가장 마음을 들인 부분 몇 개만 정리하겠다.


'세력'은 포괄적인 의미다. 소위 세력주라고 할 때 작전 세력과 같은 어두운 이미지만 뜻하진 않는다. 자금력과 정보력으로 시장에서 패턴을 형성하고 그 패턴에 참여하며, 주식 시장의 다양한 메커니즘을 형성하고 기여하는 참여자들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보편적인 마인드 역시 세력이 될 수 있다. 외국인 투자자, 기관 투자자, 연기금, 개인 투자자, M&A 주체, 특수 관계인 등 누구나가 세력이 될 수 있다. (11쪽)


실전인 3장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나오는 저자의 한마디 충고도 듣고 넘어가면 좋겠다.
"만일 여기까지 읽었음에도 세력주를 잘 잡아서 한방에 큰돈을 벌어보겠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끝까지 투자의 하수로 남게 될 것이다. 그런 분은 평생 주식을 해서는 안 된다. 선택지는 두 가지. 당하던지, 피하면서 이용하던지! " (51쪽)


"주가 급등 사유 없음"이 저자 관점의 압축판같다.

특정 종목 시세가 갑자기 크게 변하면 한국거래소는 해당 기업에게 '현저한 시황변동에 대한 조회공시 요구'를 한다. 급등이든 급락이든 과도하게 요동치고 있는 이유를 밝히라는 것이다. 투심 과열로 갑작스레 상한가를 치는 종목도 그렇지만, 세력이 개입한 상황에서 기업은 밝히고 싶지 않게 된다. 이때 '조회공시 요구(현저한 시황변동)에 대한 답변(중요 정보 없음)'을 제출하면서 대부분의 기업이 형식적으로 대응한다. 책은 문서를 예시로 보여 준다.
 
조회공시 요구(현저한 시황변동)에 대한 답변(중요 정보 없음)
1. 제목: 현저한 시황변동 관련 조회공시 요구에 대한 답변
2. 답변 내용
당사는 한국거래소의 현저한 시황변동 관련 조회공시 요구(2020년 3월 10일)와 관련하여 코스닥시장 공기 규정 제6조 제1항 각호에 해당하는 사항의 유무 또는 검토 중 여부 및 이로 인한 주가 및 거래량에 대한 영향을 신중히 검토한 바, 기 공시한 사항 및 다음의 사항 이외에 최근의 현저한 시황변동과 관련하여 별도로 공시할 중요한 정보가 없습니다.
'아무도 모른다, "주가 급등 사유 없음"' 207쪽
 

<아수라> ⓒ 김화숙

 

독자는 끝에 가서 허탈해질 수도 있겠다. 6장에서 왜 영화 <아수라>가 나오겠는가. <주가 급등 사유 없음>이야말로 '절박하고 비루한 인간들의 삶이 모여 끝내 아수라장으로 변하는 스토리'를 닮았으니까. 세력의 세계도 아수라라고 저자는 말한다. 운 좋게 작업이 진행되고 큰돈을 벌었다 해도 이후의 삶에는 허무한 아수라의 그림자가 있다. 세력에 가담한 이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수라의 한복판으로 말려 들어간다.(293쪽)


"주가 급등 사유 없음", 애초부터 사유는 없었다. 허탈하지만 저자가 언급한 영화 <아수라>를 보는 것도 좋겠다. 영화가 책을 잘 해석해 줄 것이다. 영화 <블랙 머니>도 함께 보길 추천한다. 책의 작전 세력과 금융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아수라>와는 다른 관점에서 조망할 수 있게 도와 줄 것이다.
 
이처럼 어느 종목의 주가가 급등하면 외부에서 바라볼 때 대체 무슨 이유로 주가가 급등하는지 이유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세력 입장에선 계획대로 일을 진행한 결과 시장이 목표주가를 만들어 주었으니 '주가 급등 사유 없음'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오리발을 내미는 것 같지만 주가급등의 명확한 사유는 애초부터 없었다.
<주가 급등 사유 없음> 209쪽
 

영화 <블랙머니>, <주가 급등 사유 없음>을 보는 또 다른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 김화숙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한 기사입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