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고객센터 기고문

검토 완료

장현경(mari2252)등록 2020.12.09 10:34
" 함께하는 건강 보험 상담사 000입니다 "
 
10년 동안 매일 같이 하루에 백번도 넘게 하는 인사말이다.
인사말처럼 전화주신 고객님들과 함께 공감 하고 싶은데 쉴틈 없이 밀려오는 전화를 받다보면 감정없는 기계가 된 기분이다.
 
"네 ~ 알겠습니다. 제가 바로 확인해드리겠습니다 "
 
대화에 집중하다보니 멘트 없이 바로 상담을 진행해버렸다
'앗! 공감표현 네~ 알겠습니다 안했네 어쩌지'
'적극성 표현 제가 바로 확인해드리겠습니다를 놓쳐버렸다 망했다 ㅠㅠ'
품질 평가 감점 되는 것이 더 두려워 그때부터는 고객말도 잘 안들리고 상담에 집중할 수가 없다.
 
"벨울림은 1초 !! 명심 또 명심"
 
바로 바로 전화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어김없이 관리자의 메시지를 받았다
"00씨 벨울림 2초입니다. 1초로 관리하세요"
벨울림 1초를 받기 위해서는 손가락을 전화기에 두고 대기 하고 있어야 한다.
등도 아프고 어깨도 허리도 너무 아프다
몇일전 병원에 갔더니 의사선생님이 도대체 직업이 뭐냐고 묻는다
하루종일 어떤 자세로 있길래 거북목 보다 더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진통제를 먹으면서 동료들에게 농담삼아 "마~ 이게 바로 진통제 투혼이다"웃으며 말했지만 스트레칭 할 시간도 없는 직장생활은 가혹하기만 하다.
 
"저 신입은 몇 개월 짜리일까? "
 
오늘 또 새로운 신입이 옆자리에 앉는다.
저번에 왔던 신입은 요 며칠 보이지 않더니 퇴직한건가? 역시 3개월 못 버틸 것 같더라니....
앞자리 동료는 어제 갑자기 조퇴하더니 오늘은 결근을 한 모양이다.
6개월째 같은팀인데도 말한번 섞어본적이 없다. 무슨일이 생긴걸까 궁금한데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하긴 난 닭장속에서 알만 잘 낳으면 되니깐......
 
 
" 고객님 저 최저임금 받는데요 ㅠㅠ "
 
피부양자 상실 조건에 대해서 마치 논문 쓸것처럼 묻고 또 묻는다.
임대소득 재산구매 자동차구매시 보험료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
보험료 할인 받는 방법은 없는지 ....
마지막으로 건강검진까지 알뜰하게도 상담하신다.
상담 끝에 하시는 말씀이 "아가씨 월급 많이 받아야겠다 ~ 이런거 다 알려면 공부 엄청 하죠? 진짜 대단하네요 " 감탄하신다.
'네~ 고객님 공부량이 백과사전 3권 분량이고요 심할때는 한달에 6번도 더 시험을 치기도 한답니다. 그런데 고객님 저 최저임금 받아요 ㅠㅠ'
 
 
"차후 설문조사 시 5점 매우 만족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낯부끄럽고 오글거리지만 저 인사를 안하면 내일 아침 따로 관리자 면담을 해야하니 나는 기계다 나는 감정이 없다 되내이며 인사를 한다.
대부분 고객님들은 네~ 로 종료하지만 간혹 "싫은데요" " 아니 그런걸 왜 강요하죠?"항의하는 분들도 계신다. 정말 귓가가 훅 뜨거워지며 없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다. 상냥하고 정확하게 상담만 하면 되지 왜 회사는 우리에게 만족도를 구걸하게 하는걸까?
 
 
스마일~ 스마일~ 웃으며 상담하라고 붙혀준 거울을 보며 현재 나의 모습을 비춰본다.
좀 더 나은 직장에서 일하지 못하는 나..
좀 더 치열하게 경쟁하지 못했던 나..
나의 불행은 당연한걸까?
그래도 오늘은 욕하는 고객은 없었으니 감사하며 퇴근하자!
오늘도 나는 당연하지 않은 현실을 당연하게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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