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에 깨어있는 시민의 반항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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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jiakim3532)등록 2020.12.02 18:10
요즘 뉴스 지면을 장악하고 있는 핫한 인물인 윤석열 총장이 법원의 직무배제 중단 결정에 따라 업무에 복귀했다. 언론은 벌써부터 법원이 마치 윤총장의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처럼 대대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사실은 법원 결정문에서 밝혔듯이 단지 직무배제조치 효력을 멈춘 것이지 직무조치 자체를 최소할지 여부는 본안 소송에서 결정될 것인데도 말이다. 이는 결국 언론이 기사를 접할 국민들에게 추장관의 조치가 잘못되었다고 판단할 소지를 제공한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모든 인식은 해석"이라 했다. 이 말은 그의 '관점주의'를 대변한다. 예전에 언어학도로서 관련 서적들을 읽으면서 이 세계는 모든 것이 '해석학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은 결국 그 모든 대상을 욕망에 맞게 해석하는 과정이었다.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은 '사실 보도'다. 하지만 니체의 관점주의적 사유대로라면 '사실 보도'는 틀린 말이다. '사실'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이 보도되는 순간 그 '사실'에는 이미 기자의 관점이 투영된다. 더 이상 순수한 사실은 아니라는 의미다. 기자의 관점에서 해석된 기사를 읽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그들 자신의 삶에 기반한 '전이해(혹은 무의식)'를 통해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형성한다. 이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가 왜곡될 여지가 얼마나 큰지를 반증한다. 기자의 역할이 그만큼 중차대하다는 말이다. 

검찰개혁이 이미 화두로 던져졌고 온 나라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가장 이상적인 건 우리 언론과 시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 검찰개혁을 주도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법치와 정의가 살아있는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다수의 언론이 제 기능을 할 수 없다면 우리 시민의 힘으로라도 그 길은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어쩌면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합리적인 사회, 즉 정의사회 구현은 영원히 닿을 수 있는 이상향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 앞에서 모두가 느끼는 절망감은 바로 이를 인식한 데서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절망 가운데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저 슬퍼하고 포기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합리의 반대말은 불합리, 즉 부조리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의 부조리를 깨닫는 인간이야말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제도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저항하면서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바로 도그마에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절대적 긍정이나 절대적 부정이 가능한 건 없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신념조차도 자칫 잘못하면 전체주의라는 오류에 빠질 가능성은 늘 존재한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깨어있어야 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주장이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는 아닌지 말이다. 

나 혼자가 아닌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이 세계를 향해서는 관용으로 따뜻하게 끌어안을 수 있는 자만이 진정한 의미의 반항을 할 수 있다. 사회구조적 모순을 깨닫고 분연히 일어난 집단적 연대는 부조리에 대한 개인의 실존적 반항에서 발전된 형태이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는 이 단순한 명제가 실현되는 합리적인 법치사회에서 살고 싶다. 법의 수호자 검찰이 그동안 누려왔던 권력의 부조리를 인식한 국민들이 진정한 자유를 위해 실천적 행위로서의 반항을 해야 한다면 지금이 바로 그때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친검찰 언론의 여론전에 맞서 우리의 숙원사업인 검찰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 시민 모두가 현명하게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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