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어려운 영어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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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amie72)등록 2020.12.02 16:11
수능시험을 앞두고 아이들은 일제히 원격 수업에 들어갔다. 오전 9시가 되기 전에 자가점검을 하고 E학습터에 출석 확인을 한다. 그리고 봐야 할 영상을 보고 과제를 해결한다.

아들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모르겠다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가 봤다. 수업의 내용은 동영상을 보고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잠깐 동영상을 보았다. 내용은 코로나 19 상황에서 개인 위생에 힘쓰자는 내용인 것 같다. 

The Epic Hand Washing Parody
 

위생 관련 동영상 패러디 송으로 위생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 김은숙

 
자료에 나온 동영상의 제목은 이것이다. 잘 모르지만 들어 보니 좋은 내용이다. 영어 문장도 그리 복잡하지 않은 것 같다. 나처럼 영어에 능숙하지 않아도 대충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쉬운 단어로 되어 있다. 

좋은 내용에 적절한 난도를 가진 노래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려운 내용을 가르칠 때 좋은 방법은 재미있게 하는 것이므로 진지하게 손 씻으라고 하는 것보다 이렇게 노래로 가르치는 것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어지는 활동이다. 내가 생각할 때에는 동영상에 나오는 문장을 주고 쉽게 빈 칸을 채울 수 있는 활동이 가장 적당할 것 같았다. 교실 상황이 아니니 주로 쓰기로 이루어지는 활동이 이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영상에 자막이 나오니까 이 자막을 보고 집에서 각자 할 수 있는 것이나 오늘 한 것을 쓰라고 하는 활동 같도 괜찮을 것 같다.

그런데 이어진 활동은 동영상에 나오는 노래의 원 가수와 노래 제목을 고르는 것이었다.
 

원곡의 가수를 맞혀라 동영상에 나오는 노래의 원곡 가수를 찾아야 한다. ⓒ 김은숙

 
 

노래의 제목을 맞혀라 가수 이름 겨우 아는데, 그것도 다 아는 것도 아닌데 노래 제목을 맞혀야 한다. ⓒ 김은숙

 
이게 영어를 익히는 언어 학습인지, 아니면 팝송에 대한 지식을 묻고자 함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런 과제를 준 이유가 뭘까. 이 활동의 학습 목표는 도대체 무엇일까. 영어 교육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도무지 그 깊은 뜻을 헤아릴 길이 없었다. 

사실 아이들을 맡겨 놓은 부모가 되다 보니 아이에게 혹시 해가 갈까 싶어서 학교에 연락하는 것이 주저된다. 혹시나 드센 부모로 찍힐까 하는 걱정도 있다. 그래서 가능하면 학교에 연락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혹시 이 과제를 풀기 위해서 미리 동영상을 보는 수업이 있었는지 확인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전화를 했다.


 

동영상 노래의 가사 '더보기'를 클릭하면 가사가 나온다. 그런데 원곡의 가사가 아니라 이 동영상에 나오는 가사이다. ⓒ 김은숙

 
담당 선생님과 통화가 되었는데 원어민 선생님이 올리신 자료라고 한다. 이 과제를 푸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 방법은 구글에 검색하는 것이다. 가사 일부만 치면 가수와 제목이 나올 것이라고 했단다. 그게 도대체 이 동영상 시청과 무슨 관계가 있나. 원곡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패러디한 노래가 나오는 동영상인데. 그러니 원곡의 가사를 어찌 알고 구글에 검색을 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말은 열정적인 학생은 다 그렇게 찾아서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하지 않는 아이는 '그것조차' 하지 않는 무열정의 학생이 되는 것이다.

교실에서 수업을 할 때는 시선 처리, 동선, 상호 작용에서 학습자의 이름을 빼지 않는 것 등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대면 수업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수업 자료나 과제에 더 신중해져야 한다. 수업에서 선택하는 영상자료나 시각자료는 이후에 이어지는 활동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영어 실력을 높이는 것에 일조를 해야 한다. 모든 수업이 항상 그럴 수는 없으니 가끔 쉬어 가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럴 때라도 알게 모르게 학습 효과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담당 과목 선생님께 두 가지를 질문했다. 이 수업의 학습 목표가 도대체 무엇인지와 원어민 강사가 자료를 올릴 때 담당 강사의 피드백이 있는지를 질문했다. 
먼저 학습 목표는 노래가 언어 수업에 활용되는 경우도 많고, 아이들이 팝송도 자주 듣는 상황에서 재미있게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며, 수업 목표는 만든 사람이 아니니 뭐라고 말하기가 어렵다고 하셨다. 

두번째로 이 동영상을 올리기 전에 미리 확인했는가에 대해서이다. 보통 자료를 올리기 전에 미리 자료를 보내준다고 한다. 물론 이 영상도 올리기 전에 영상을 보내 와서 확인은 했고, 수준도 조금 높아서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번주의 경우 재택근무를 하는 상황이어서 피드백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정리하면 유튜브에서 코로나 상황에 맞는 노래 찾고, 학습 목표를 뭐라고 설정하기도 어려운 활동을 과제라고 준다. 30분 안에 풀어야 하는데 학습자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구글이라는 방법이 있는데도 열정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이다.

나도 만약 한국어를 가르친다면 이런 방법을 써봐야겠다. 먼저 한국 가요 10개 중에서 조금씩 골라 편집한 노래를 들려 준다. 다 듣고 원 가수와 제목을 쓰라는 활동을 주고 제목을 못 찾겠으면 다음이나 네이버에서 찾아 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한국 노래를 이용한 재미있는 한국어 수업이라고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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