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잔칫국수, 다음은 비빔국수

일상 이야기

검토 완료

김진수(bluesoo)등록 2020.11.16 17:47
일주일에 꼭 한번 찾는 국수집이 있다. 심플한 간판에 '20년 전통' 딱 하나의 수식어만 붙어 있는 이 맛 집은 탱탱한 면발에 구수한 국물, 그리고 기름에 한번 볶은 당근채가 곁들여진 김밥의 풍미가 일품이다. 나에겐 늘, 1주일 소확행 베스트 TOP3 중 하나다.

지난 토요일 점심 경, 어김없이 일 한 꼭지를 끝내고, 가게 구석 한 곳에 걸터앉아 국수 김밥을 해치우는 중(늘10분컷)이었는데, 주방에 못 보던 사람이 한 분 있었다. 코로나 난리통에도 장사가 잘 돼서 그런지 새 직원을 들여온 모양이다. 신참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분주히 가게일을 배우고 있었다.

'아주머니! 한눈 팔지 말고 내가 움직이는 손을 잘 보란 말야, 잘 배워야지, 안 그러면 내가 배달나갈 때 아줌마 혼자서 어떻게 국수를 말겠어?'

그 아주머니는 좀 전에 손님 카드를 긁으면서 계산대를 보느라 국수 레시피 시범을 못 봤을 뿐인데, 사장(국수장인)이 반복해서 그런 까탈스런 오더를 던졌다. 평소 퉁명한 말투로 손님을 대하는 사장의 태도가 좀 거슬렸지만 워낙 손맛이 좋아서 단골로 다녔는데, 오늘 따라 군대식으로 갈구듯 신입을 대하는 사장의 신경질적인 멘트가 몹시 내 비위를 거슬렸다. 레시피 전수는 영업 끝나고 찬찬히 알려주면 될 일인데 지 보다 나이도 많은 사람한테 왜 저렇게 군기를 잡는지 참…

'어이 사장! 당신도 한눈 팔지 말고 손님을 잘 보고 인사를 하란 말이야, 그런 에티튜드로 장사가 되겠어?'

싸가지 없는 사장 앞에 이 더러운 멘트랑 빈그릇을 던지며 확 나와 버릴까?라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참아줌마에게 복수(?)대신 빈그릇만 패스하고 가게를 휙 나와버렸다. 뭔가 찝찝한 기분에 다른 국수집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햇빛이 오랜만에 쨍쨍해서 기분전환 겸 광합성 겸 30분간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은 채 터덜터덜 뚝방길을 걸었다.


'아 잘 먹었다. 다음은 비빔국수를 먹어볼까? 역시 20년 전통 XXX국수집, 딱이야'

'…...응?!'

절로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좀 걸었더니 소화가 잘돼 편안해진 배까지 두드리면서.

불과 반시간 전에 그 가게를 끊으려고 다짐했는데, 그 새 또 깜빡 잊고 이렇게 비굴한 나의 식탐에 침샘이 동한다. 뭐 20년을 꿋꿋이 지킨 맛집의 자존심이 있는데, 그 정도 엄격하게 신입교육을 할 수도 있는 거지 뭐, 음… 그 탱탱한 면발에 매콤한 양념을 버무리면 또 어떤 맛이 날까?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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