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당선인을 환영하기 위해 미국 전·현직 대통령들이 백악관에 모였다. 왼쪽부터 조지 HW 부시(41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44대 대통령), 조지 W 부시(43대 대통령), 빌 클린턴(42대 대통령), 지미 카터(39대 대통령).
AP=연합뉴스
그리고 그렇게 진영 논리를 벗어난 선택을 했을 때, 비로소 유권자는 주권자가 될 수 있다. 그것이 민주주의가 포퓰리즘과 구별되는 접점이고 경계선이다. 어떠한 포퓰리즘 사회에도 전체주의와 달리 유권자층은 존재한다. 제도적 의미의 참정권은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포퓰리즘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유권자들은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투표를 행사하지 못한다. 주권자로서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포기한 (또는 박탈당한) 유권자들은 진영 속의 거수기로 전락한다.
스윙 스테이트, 세이프 스테이트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은 주(state)별로 투표 성향이 획일화되지 않았다. 1980년과 1984년 선거에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후보는 각각 지미 카터,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를 상대로 일부 주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주를 석권하면서 완승을 거두었다.
그에 앞선 1976년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지미 카터 후보가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는데, 동부지역에서는 거의 포드 후보가, 서부지역에서는 예외 없이 카터 후보가 승리하면서 동서가 나뉘는 투표 양상을 보였다.
그보다 더 앞선 1968년과 1972년 선거에서는 닉슨 후보가 역시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얻으며 당선이 됐다. 하지만 1964년 선거에서는 반대로 민주당의 린든 존슨 후보가 남부 6개 주를 제외하고 전국을 석권하면서 압승을 거뒀다. 그 이전의 선거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렇게 후보자에 따라, 정책에 따라, 시대적 요구에 따라 선택을 달리 했던 미국 유권자들의 투표 양상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달라진다. 주로 동서 해안 도시 지역에서는 민주당에 몰표를, 내륙 농촌 지역에서는 공화당을 향한 몰표 현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적 변화가 커지기 시작한 것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대부분의 주에서 특정 정당을 향한 '묻지마 투표' 양상이 굳어지면서 '소수의 경합주'(스윙 스테이트, Swing States : 늘 같은 정당을 지지하지 않고 선거마다 승리 정당이 달라지는 주)들이 사실상 미국 대선을 결정하는 기형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전에도 경합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90년대 들어 더욱 이들의 중요성이 커진 것이다. 그 반대인 안전주(세이프 스테이트, Safe States)에서는 특정 정당이 말 그대로 안전하게 몰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심리적 참정권은 그만큼 제한된다.
물론 특정 지역의 몰표 현상이 미국만의 것은 아니다. 한국을 포함 대부분의 국가에서 존재한다. 하지만 국가마다 이유는 다르고, 미국의 경우 선거인단 승자독식 제도 때문에 세이프 스테이트의 많은 유권자들은 특히 참정권에 대한 박탈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저학력 백인 남성 계층
미국의 지역별 투표 편향이 굳어질 즈음, 또 하나 미국 선거의 특이점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바로 '저학력 백인 남성'이라는 계층이 선거의 중요한 변수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 ① 지역별 투표 편향과 ② 저학력 백인이라는 새로운 계층의 탄생. 2020년 대선에서 120년 이래 최고의 투표율을 보일 만큼 참여 열기가 뜨거웠고, 민주당 지지자들 역시 역대 최고의 결집을 보였음에도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가까스로 신승을 한 것은 바로 이러한 두 요인 때문이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13일 시점까지도 여전히 패배 시인을 거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