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 함께 하는 길거리 전시회(주)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사고에 대응하며 유가족모임 <다시는>의 유가족들이 '시민과 함께하는 길거리 전시회'에 참여하고 있다
유가족모임<다시는>제공
세상이 변하며, 노동의 모습도 변했다. 방송미디어, 택배 분류, 플랫폼 기반 노동 등 기존의 산업구조와 공간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소위 '비전형(非典型) 노동'이 바로 그것이다. 생활 속 '편리함'을 위해 '참신한' 상품들을 내놓는 '혁신적인' 시장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오늘 주문한 물건이 내일 아침 문 앞에 놓여 있고, 출근길 지하철 스크린도어는 문제없이 작동하며 점심식사는 배달앱 주문으로 곧장 테이블까지 올라오는 세상. 지루한 퇴근길을 채워주는 모바일게임, 퇴근 후 TV에서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일까지.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 낳은 새로운 일상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거치며 '비전형 노동'의 쓸모를 극대화했다.
하지만 '비전형 노동'이 이뤄지는 현장엔 익숙한 노동 착취의 그림자가 짙다. '새벽 배송'의 유행으로 택배 노동 현장은 24시간 일해야 하는 시스템으로 변했다. 지하철 운행을 단 몇 분 멈추지 못해,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지하철이 달리는 철길 위에서 작업해야 한다. 편리한 점심식사가 우리에게 오기까지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가 시간을 맞추기 위해 신호위반을 감수하고 스쿠터를 몬다. 주당 52시간이라는 규제를 비웃듯 주당 100시간이 넘게 일하면서도 '노동자'로 취급받지 않는 IT, 방송업계 종사자들이 지금도 밤을 새우고 잠을 줄여가며 게임과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주당 100시간! 과장이 아니다. 드라마 제작 현장에서 정규직 관리자들은 주당 52시간을 준수하기 위해 A팀, B팀을 나눠서 촬영계획을 짠다. 꼼수가 있다. 일용직으로 계약한 스태프가 양팀 모두를 지원하라고 지시를 받으면, 그는 도합 104시간을 일하게 되지만 누구도 이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 택배 분류 노동 역시, '집품'이라는 공식 업무만이 작업 내용으로 셈해지지만, 사실상 '입/출고', '링크' 등 상식적으로 배달에 필요한 모든 작업이 포함된다.
일과를 마친 후 스마트폰 만보기에는 하루 5만 보가 찍히고야 만다. 월 40만 원에 하루 14시간을 일하는 패션스타일리스트들의 다른 이름은 '청담동 노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한류'는 바로 이들이 떠받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제는 보다 많은 청년들이 이러한 '비전형 노동' 시장으로 유입된다는 데 있다.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되는 이 청년들에게 기업은 2년 후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갖추지 못한 환경에서 2년간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의 정규직 전환 약속이 허울뿐인 이유다. 노동자들은 제도에 호소해 개선을 바랄 수도 없다. '비전형 노동'이 그야말로 '비전형'인 것은 기존 제도가 이 노동 형태를 다루지 못하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은 이 새로운 형태의 노동을 노동이라 해석하지 못하고, 따라서 '비전형 노동자'는 법적 노동자가 되지 못한다. 4대보험, 주당 52시간, 안전한 일터를 위한 규칙으로부터 '비전형 노동'은 항상 예외이다.
새벽배송, 주 2회 방영... 이게 '목숨'보다 중요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