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세상에서 함께 가는 우리...

이산하 에세이 [생은 아물지 않는다], 그리고 이수경 소설집 [자연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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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경(jiakim3532)등록 2020.10.27 11:31
이산하 시인의 [생은 아물지 않는다.]

7,8년쯤 되었을까. 기억도 가물하다. 아주 잠깐 페이스북 계정이 있었다. 그때 몇 안 되던 친구 중 지금 나의 페벗은 딱 두 분. 그 한 분이 이산하 시인이다. 선생님은 나를 모르시겠지만. 선생님의 에세이 [생은 아물지 않는다]를 읽었다. 책 읽는 동안 얼마나 자주 가슴이 뜨거워지고 울컥하던지. 무겁고 아팠기 때문이리라. 그 111편의 단상마다 댓글난이 있다면 일일이 답하며 나누고픈 얘기들 마음속에 되뇌며 그렇게 오랜 시간 읽고 또 읽었다. 

'한국현대사 앞에서 우리는 모두 상주'라는 시인의 외침이 너무도 아릿하게 스며오는 제주4.3 장편서사시 [한라산]. 이 슬픈 [한라산]은 시인이 꿈꾸던 세상과 실존적 고뇌 속에서 태어난 시다. [한라산]에 오를 때보다는 조금 가볍게 만난 문학소년 '철북이'. 헤어질 땐 아주 큰 울림을 주고 떠났다. [양철북]은 시인의 자전적 성장소설로서 주인공 양철북과 법운스님이 여행하며 주고받는 대화가 압권이다. 그들이 여행 중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는 또 얼마나 멋진 덤이던가. 

'양철북'이라는 이름엔 '세상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자들의 의식을 두드리는 영혼의 북소리'를 갈망했던 시인의 삶에 대한 방향성이 투영되어 있었다. 

시간은 흘러 신간 에세이를 통해 시인을 다시 만났다. 약자를 향한 시선은 여전히 거둬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그들을 대변하고 있는 듯했다. 어느 생이든 늘 먼저 베인다는 시인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책을 읽고 난 후 나에겐 미션이 생겼다. 시인의 단상에 나의 진심을 담아 댓글을 달자. 나 역시도 시인의 고뇌에 공감하며 차오르는 단상이 가슴 한 가득이므로. 나만의 소심한 방식일지언정 옳다고 믿는 삶의 모습으로 나 또한 뚜벅뚜벅 걸어가고 싶으므로. 

아직도 뚜렷이 기억한다. [양철북]에서 시인이 던진 화두 하나, '줄탁동시(啐啄同時)'.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서는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뜻이다. 시인이 그랬다. 북을 계속 치며 살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무거워 다시 알속으로 들어가고 싶어진다고. 내 고단한 생을 살아내는 데 급급한 나. 시인의 절망이 켜켜이 쌓인 이 시간 너머에서 나를 때린다. 정신이 번쩍 든 나는 파울 첼란의 [유골 항아리에서 나온 모래] 속 '이끼와 쓰라린 치모로 만든 북'을 찾는 중이다. 지금 나는 시인을 위해 북을 울려주고 싶은 것인가.

그리고 또 한 권의 책...

이산하 시인의 아물지 않는 생의 한 모퉁이에서 벗이 된 이수경 작가님의 [자연사박물관]을 읽었다. 7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이다. 작가님은 재미는 없노라 겸손해 하셨지만 재미로만 읽기에는 소설 속에 담긴 고단한 삶들이 너무 아팠다. 

공장에서 일하다 다치고도 보상은커녕 해고를 당하자 목숨을 끊은 한 외국인 노동자. 그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애도에 그치지 않고 노조를 결성해 불합리한 회사에 대항하는 공장 노동자 남편. 그로 인해 생계의 불안을 고스란히 떠안은 비정규직 상담직원 아내. 이들의 희망 없는 팍팍한 삶의 모습들이 아주 담담하게 그려진다. 너무 정직해서 슬픔이 배가된다고나 할까.  

이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그들의 불안이 내게도 전염되었나보다. 내 안에서도 깊은 분노가 인다. 눈부신 경제 성장에 힘입어 화려함을 뽐내는 자본주의는 이처럼 음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눈물 겨운 희생을 전제로 한다. 소설 속 화자가 던지는 "공장은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에 순간 울컥하게 되는 이유다.   

한국 사회도 자본주의의 산물인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물론 '페티시즘'이라 불리는 물신론(物神论)이 교육과 의료 등 공공분야에까지 만연해 있다. 신자유주의 물결이 일던 자본주의의 메카 미국에서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소환하며 자본주의를 비판했던 자크 데리다가 떠오르는 건 당연하리라.

최근 택배기사들의 잇따른 죽음을 보면서 택배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 과로사 문제 등 제도적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택배회사들의 안일한 대응으로 열심히 산 죄밖에 없는 이들에게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다함께 잘 사는 사회는, 그래서 더불어 행복한 삶은 정말 이상적 꿈에 불과한 것일까? 중국 작가 라오서는 소설 [낙타상자]에서 그랬다. "비는 부자에게도 내리고 가난한 사람에게도 내린다. 의로운 사람에게도 내리고 의롭지 않은 사람에게도 내린다. 그러나 사실 비는 공평하지 않다. 왜냐하면 공평하지 못한 세상에 내리므로." 

[자연사박물관] 소설집의 또 하나의 단편 [고흐의 빛] 의 '재이'에게도 우중충한 집이 아닌 빛나는 아침을 맞을 수 있는 그런 보금자리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우리가 '잠자는 토끼도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에 눈감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 누구 하나 귀하지 않은 삶은 없으니까. 

어느 날, 재이가 햇볕 드는 따뜻한 집으로 이사하면 고양이 한 마리 선물하고 싶다. 지금처럼 물이 역류하고 추운 집에선 재이가 좋아하는 고양이를 키울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조금 늦더라도 말이다.

문득 이렇듯 많이 아프지만 우리가 외면해서는 안 되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도록 좋은 글을 써주신 작가님들께 이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다. 갈수록 살아가기 힘든 세상에서 우리가 한마음으로 연대할 수 있다면 그분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으리라. 
덧붙이는 글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우리네 삶, 우리 모두가 한마음으로 연대할 수 있다면 천천히 가더라도 이 세상이 조금씩은 나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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