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29일 부산(사진: 이인우 작가)
하지만 공연만으로 수십 명이 먹고 사는 게 쉽지 않았다. 많은 단원들이 생활고에 찌들려 노래 현장을 떠나갔다. 사실, 이런 처지는 정윤경도 다를 바 없었다. 민중가요에 몸을 던진 이래, 그의 삶은 늘 곤궁했다. 우유 배달, 대리운전, 전화노래방 편곡작업이나 강습 등 이런저런 일들을 쉰 적이 없다. 아니 쉴 수가 없었다.
정윤경이 음악감독으로 합류한 2004년, 꽃다지의 사정, 아니 민중가요의 현실이 이랬다. 정윤경은 민중가요의 종가집에 몸을 맡겼지만 고택조차 없는 종가집에 몸을 들인 셈이다. 어렵지만 의연하게 정윤경은 음악감독으로 2011년 꽃다지 4집 앨범 '노래의 꿈'을 만들었다. 이 음반을 두고 평론가 이경준은 이렇게 말했다
"꽃다지는 그 메시지를 고려하지 않고도 '음악적'으로 호감도가 넘실거리는 '웰메이드 앨범'을 주조해내는 데 성공했다. 비록 누군가는 한 귀로 흘릴 것이고 누군가는 외면하거나 누군가는 존재조차 모른다 해도, 이들의 목소리가 건재하다는 것은 우리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이경준의 말처럼 정윤경과 꽃다지는 존재 자체로 작은 위안, 아니 큰 위안을 준다. 정윤경은 그의 노래가 필요하면 어디든 달려갔다. 철거민 6명이 사망한 2009년의 용산참사현장, 쌍용차의 구조조정 반대투쟁, 2016년 촛불광장 등등. 가서 <바위처럼>으로 흥을 돋구고 <민들레처럼>으로 결연한 마음을 모았다. 꽃다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김호철 헌정음반 공동제작단'의 프로듀서가 되어
2018년 6월 정윤경은 '김호철 헌정음반 공동제작단'의 프로듀서를 맡았다. 김호철은 88년 홀연히 나타나 노동자들을 위한 노래를 만들었다. 노동운동의 애국가인 '파업가'를 시작으로 '단결투쟁가' '진짜 노동자2'같은 명곡들을 지었다. 그가 이제까지 만들어낸 곡이 무려 406곡, 모두 노동운동의 예리한 칼날이었다.
그런데 2018년, 그의 아내인 황현이 희귀암 진단을 받았다. 저작권도 인세도 없는 김호철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였다. 이 소식을 듣고 정윤경은 동지들과 움직였다. 후원주점을 열었고 마침 '파업가'가 세상에 나온 30주년을 기념하여 '김호철 헌정음반 공동제작단'을 만들었다. 1000명의 후원자가 모였고 정윤경은 기꺼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그는 두 달에 걸쳐 406곡을 듣고 또 듣고 여기서 21곡을 추려냈다. 정윤경은 "호철이 형의 음악을 밤새 듣고 있으니, 형의 분노, 절망, 한숨 같은 게 그대로 전해지는 듯해서 고문과도 같았어요"라고 그 경험을 말한다.
정윤경은 사실 김호철 노래에 짙게 배어있는 '군가풍·뽕짝풍'이 마뜩치 않았다. 김호철은 노동자의 언어와 정서로 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창했다. 그의 말대로 "흩어지면 죽는다, 흔들려도 우린 죽는다"처럼 투쟁현장에서 힘을 솟구치게 하는 가사와 멜로디가 또 있겠는가. 바리케이트 이쪽과 저쪽 사이에는 서정이 자리 잡을 공간이 없다는 그였다.
그런 '호철이 형'의 마음을 살리면서 사람들이 못봤던 김호철의 아름다운 서정을 발굴하고 다듬어 정윤경은 2018년 12월 음반을 냈다. 헌정음반을 내고 들은 칭찬이 그 어떤 칭찬보다 많았단다.
꽃다지 창립 30주년을 준비한다
2020년 현재 꽃다지 상근단원은 정윤경과 메인보컬 정혜윤, 기획담당 민정연, 이렇게 세 명이다. 갖고 있는 재산이라고 해봐야 구로동 연습실의 보증금과 악기류가 전부다. 연습실은 사무공간을 겸하는데 지하여서 계단을 내려서야 하고 층고가 낮고 가파라 몸을 숙여야 한다. 연습실 내부는 합주를 맞춰 볼 수 있는 공간, 정혜윤과 정윤경의 개인 연습실, 그리고 기획을 맡고 있는 민정연의 책상이 전부(!) 합쳐서 20평이 되려나? 습기가 심해 없는 살림에 마련한 제습기와 공기청정기가 쉼 없이 돌아간다.
정윤경과 꽃다지는 올해 코로나로 현장 공연을 전혀 못했다. 그동안 대학로 극장을 비롯, 다양한 공간에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정기공연을 해왔다. 작년 11월 7일과 8일 이틀에 걸쳐 홍대 상상마당에서 열렸던 "데모가 희망이다" 공연은 즐거웠다. 정윤경이 "이제 그만합시다"를 외칠 정도로 앵콜이 넘쳐났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정윤경은 쏟아부었다. 마지막 곡은 '당부'였다. 정혜윤의 맑은 목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정윤경의 어깨가 잔물결처럼 일렁이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깊게 감은 눈으로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주하니 순간 '숭고한' 기운이 무대를 감쌌다. 관객들 사이에선 눈물이 이어달리기를 했다. 이 날 공연이 끝나고 정윤경은 몸무게가 몇 kg 빠졌다. 그런데 정작 수지타산은 별로다. 그래도 지금은 그때가 그립다.
2022년 3월이면 꽃다지 30주년이다. 정윤경은 지금 생계를 유지하던 모든 강습과 아르바이트를 끊었다. 30주년 앨범과 공연 준비에 몰입하기 위해서다. 꽃다지 30주년은 꽃다지만이 아니라 민중가요 운동을 집대성하는 의미도 있고 자신의 노래 인생을 결산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