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댕볼 치킨' 덕분에 제 신념을 지켰습니다

[소소하고 확실한 실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도전'을 사려깊게 이해해준 치킨집 사장님

검토 완료

양지선(metaphysicalclub)등록 2021.01.08 10:05
코로나19로 전에 없던 순간을 매일 마주하고 있습니다. 나를 둘러싼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요즘,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거대한 기후 위기와 예측할 수 없는 전염병 앞에서, 그저 무력하게 손 놓고 있어야 할까요? 그럴 순 없죠! 우리가 살아갈 지구를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찾아나서려고 합니다. 시민기자가 되어 같이 참여해 주세요.[편집자말]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나도 시도조차 못한 일이 있으니 바로 '스댕볼'에 치킨 받기였다. ⓒ pixabay

 
"언니, 그런다고 아무것도 안 달라져."

말이 끝나는 순간, 그 애는 일회용 빨대를 2개 집어 들었다. 그러더니 자기 콜라 컵에 냅다 꽂았다. 나 하나쯤 빨대 안 써봐야 소용없다는 뜻이었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음료를 쪽쪽 빨아 마시던 그 애.

벌써 6년 전 일인데도, 가끔 얼굴이 떠오른다. 어딘가에서 채식주의자임을 밝힐 때나, 일회용품을 거절할 때 말이다. 제로웨이스트가 유행하는 시대가 왔지만, 나는 아직도 몸을 숨긴 채로 환경을 생각한다.
 
바디워시를 비누 바로 바꿨고, 열매 수세미로 설거지도 해봤지만 시도조차 못한 일이 있으니 바로 '스댕볼'(스테인리스볼)에 치킨 받기였다. 포장 용기를 가져가야 했는데 집 주변에 그만큼 가까운 치킨집이 없었다.

'스댕볼 치킨'은 해방이었다 

그래서일까. 낙성대에 있는 한 치킨집을 발견했을 때 '스댕볼'부터 떠올랐다. 저기 정도면 치킨 받아올 수 있겠다. 기쁨도 잠시, 망설임이 제법 길었다. 이 집 치킨 정말 맛있는데. 거절당하면 다시 못 올 수도 있는데.
 
말이라도 꺼내 보기로 했다. 지금 아니면 못할 것 같았다. 맘먹고 '스댕볼'을 꺼내든 날, 부엌 찬장 앞에서부터 들떴다. 드디어 소원을 이루겠구나. 마음과는 달리 가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식은땀이 났다. 스댕볼을 등 뒤로 숨겼다. 태연한 척 "프라이드 반, 양념 반 주세요"를 외쳤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동네 가겐데, 지나가면서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스댕볼 걔 지나간다'라고 생각하실까? 띠디디딕! 띠디디딕! 타이머가 울렸다. 아주머니가 치킨을 건져 올려 포장 상자로 가져갔다. "잠시만요! 여기에 담아주세요!"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스댕볼'을 건넸다. 아주머니는 멈칫하시더니, 곧 웃음을 터뜨렸다.

나중에 단골이 된 뒤 들은 이야기로는, 부부인 사장님 두 분에게 나는 재밌는 손님이었다고 한다.

"우리는 처음에 그 그릇, 우리 아저씨랑 얼마나 웃었는지 몰라. 너무 귀여운 거야. 우리 아저씨가 그랬잖아. 박스에 싸가야지. (아저씨는) 박스에 싸주는 걸 좋아하거든."

아줌마는 내 편을 드셨다고 했다.

"저 아가씨는 그렇게 가져가는 게 편한 거야. 박스도 쓰레기고 그런데."

당시 이 사실을 알 리가 없었던 그때의 나는, 졸지에 소원을 이루는 바람에 신이 났다. 집까지 뛰어갔다. 얼른 '스댕볼' 치킨을 입에 넣어보고 싶었다. 그날의 '스댕볼'은 어찌나 따끈하던지.
 
'스댕볼' 치킨은 먹을 때도, 버릴 때도 너무 편리했다. 쓰레기는 닭 뼈뿐이었고, 스댕볼만 설거지하면 부엌이 깔끔해졌다. 치킨이 남아도 스댕볼 위만 잘 덮으면 괜찮았다. 양념 묻은 치킨 박스를 쓰레기봉투에 억지로 구겨 넣는 걸 제일 싫어하던 내게 해방이 찾아왔다. 이 생활에 익숙해지니 다른 집 치킨은 귀찮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

오로지 장점뿐인데도 고민은 계속됐다. 한두 번은 괜찮을 수 있다. 계속 그렇게 받아 가면 싫어하실지도 모른다. 결국, 집 가는 길 빈손으로 치킨 가게에 들렀다. 꽤 오랜만에 방문했는데도 아주머니가 나를 알아보셨다. "오랜만이네. 오늘은 어디 갔다 오는 길이구나?" 내 손을 살피더니 하시는 말.

치킨 배달을 시켰으면 절대 몰랐을 일
 

주인아주머니, 아저씨와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소중하다. ⓒ pixabay

 
"여기 앉아." 아저씨가 따뜻한 자리를 내어주셨다. 나는 백팩을 맨 채로 앉았다. TV에 웬 개구리가 나오고 있다. "저 프로그램 이름 뭐예요?" 아저씨가 눈을 찡그리더니 프로그램명을 읽어준다. "파, 타, 파타고니아. 우리는 다큐 좋아해. 이런 거 잘 봐."

여태까지 나온 다큐멘터리는 다 봤다고 말하셨다. 목소리에서 취향을 일관되게 지켜온 사람의 자부심이 묻어났다. 지난번에는 야구였는데, 이번에는 동물 다큐멘터리다. 방문할 때마다 아저씨, 아주머니의 TV 채널 취향을 알게 된다. 아주머니는 지난번 다큐멘터리가 재밌었다며 얘기를 꺼낸다.
 
"쩌번에는 치타 사만다 이야기를 봤는데. 내가 사만다한테 너무 감정 이입해서 운 거야. 너무 불쌍하더라고. 정글에서 혼자 새끼를 3마리 키우는데."

아주머니 아들딸도 세 명이다.

"처음에 애기 낳았을 때는 다 죽어버린 거야. 새끼를 숨겨놓고 사냥을 나갔어야 하는데, 처음 낳은 거라 그걸 모르고. 그래서 하이에나들이 새끼를 다 잡아먹었는데."

동시에 닭튀김 상태를 살피는 아주머니. 집게를 내려놓고 몸을 돌린다.

"하이에나들은 너무 나빠. 걔네는 자기가 사냥 안 하고 그렇게 남의 새끼 훔쳐먹고. 뭐 그런 애들이 다 있어?"
 
사만다가 새끼를 뺏긴 이야기는 슬펐지만, 이야기를 듣는 내내 웃었다. 이유는 사만다 대신 열심히 화를 낸 아주머니가 너무 귀여웠기 때문이다. "사자도 하이에나를 싫어한대."

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사자 옆집 이웃처럼 얘기하시네요." "아니, 다큐멘터리 봤으니까." 옆에서 아저씨가 말을 거든다. 아저씨는 충청도 사람이다. "하이에나가, 턱이 단단해서, 한번 물면 놔-주지를 않는대. 그래서, 사-자도, 하이에나가 무리 지어 있으면, 사-냥을 못 한다 그러더라고."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그렇잖아. 괜히 쫓아내려고 했다가 물리는 것보단, 그냥 먹이 내주는 게 낫-잖아. 상처라도 나면 어떡해. 드-러워서 피하는 거지."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보며 웃는다. 아주머니가 말을 보탠다.

"사자 무리 근처에는 꼭 하이에나 무리가 있대. 자기들이 사냥은 안 하고 그렇게 남이 먹다 남은 고기를 먹는 거야. 어휴. 난 너무 싫어. 사람이 그런다고 생각해봐."

"다음에는 저번처럼 빈 그릇 갖고 와"
 
평소 식당에 TV가 있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손님들을 위한 용도라고 생각했다. 이 치킨집 TV는 가게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 16인치보다 더 작은, 옛날식 브라운관 TV다. 2평 남짓한 가게에서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저 작은 TV에 의지해 세상 얘기를 듣고 있다.

그렇게 꼭꼭 소화한 이야기를 내가 다시 전해 듣는다. 두 분 말을 듣고 나니, 다음 번에 다른 가게를 들르면 사장님들이 어떤 채널을 보는지 살피게 될 것 같았다. 가게에 들어오는 순간 아주머니가 내 손을 살폈던 것처럼.
 
배달비를 추가해야 하는 곳은 있어도, 배달 안 되는 곳은 없을 정도로 편리한 세상인데 나는 어플보다 직접 방문해서 음식 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면 이렇게 스댕볼에 치킨을 받을 수도 있고. 주인아주머니, 아저씨와 소소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돈 뒤에 사람이 있음을 몸과 마음에 새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양념 먹을 때는 저번처럼 빈 그릇 갖고 와."

카드를 지갑에 넣다 고개를 들었다. 아주머니는 양손으로 열심히 '스댕볼'을 표현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문장이 입안을 맴돌았지만, 말이 안 나왔다.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아주머니는 양손을 내려놓았다. 별다른 내색 없이 아주머니에게 인사만 했다.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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