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섬
픽사베이
영해권을 가진 키프로스, 그리고 자본을 들고 달려든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서유럽 기업들이 공동으로 지난해부터 자원 개발에 착수하자 이번에는 터키가 본격적으로 나섰다. '북키프로스도 연안 자원에 권리가 있다'는 명분을 들고서다. 지난달 11일 터키는 해군 함정을 대동한 지질 조사선 '오르츠 레이스'를 키프로스 섬 서쪽 바다에 보내 천연가스 탐사를 시작했다.
자원을 둘러싼 싸움
문제는 이 지역이 키프로스뿐 아니라 그리스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이기도 하다는 점. 그리스는 자국의 배타적 경제수역 내에서 터키가 해저 탐사작업에 돌입하자 즉각 반발하면서 키프로스, 프랑스, 이탈리아와 합동군사훈련을 시작했다.
지난 12일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전투기 18대, 어뢰, 미사일 등을 포함, 신규 무기를 프랑스로부터 대거 사들이고 군대를 증원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그리스로서는 20년만의 최대 규모 무기 구매다. 미초타키스 총리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력을 보강할 때가 왔다"면서 터키의 영내 진입을 강력하게 비난, 국방비 증액의 타당성을 그리스 국민들에게 설명했다.
그리스는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국으로 전락하면서 에게 해 대부분의 섬 지역을 자국의 영토로 병합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리스의 군사력이 터키에 비해 열세인 것은 분명하다. 프랑스는 이 지역의 힘의 불균형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스와 큰 건의 무기 계약을 성사시킨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0일 코르시카 섬에서 기자들과 만나 그리스와 분쟁을 빚는 터키를 더 이상 동지중해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우리 유럽인'들은 오늘날 용납할 수 없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정부에 명확한 태도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우리 유럽인' 발언은 실수가 아니라면 터키를 향해 명확히 선을 긋는 발언이었다.
러시아와 함께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있는 나라 터키는 국민의 절대 다수가 이슬람교도이고 동방문화권의 큰 세력 중 하나지만, 동시에 유럽평의회(Council of Europe) 회원국이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회원국이기도 하다. 오래전부터 유럽연합(EU) 후보국이며, 2005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가입 협상중이다. 터키의 유럽 지향적 성향은 건국의 아버지 무스타파 케말 이후부터 계속 되어 왔다.
터키의 친 유럽 성향이 주춤하기 시작한 것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권력을 장악하기 시작하면서다. 총리와 대통령을 이어가며 장기간에 걸쳐 권력을 집중시킨 에르도안 대통령은 유럽연합 기존 회원국들의 눈에는 언론을 탄압하고 강제 구금을 일삼으며, 시민권을 제한하는 등 유럽연합의 가치에 부흥하지 않는 지도자로 비친다. 그리고 프랑스가 그러한 목소리의 중심에 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우리 유럽인' 발언은 프랑스-터키 관계를 앞으로 상당 기간 냉각시킬 가능성을 높였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즉각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오만하고 ... 자신이 얼마나 나약하고 절망에 빠졌는지 보여주는 신호"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두 나라의 정면충돌은 키프로스 앞바다에서 시작된 자원을 둘러싼 국지적 갈등이 더욱 큰 범위로 확대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는 분석들이 제기됐다. 한국 언론에서도 한동안 그런 분석들이 보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