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동안 디지털 성범죄 재판을 방청했습니다

성신여자대학교 자치언온 '온성신'에서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재판 보도하는 '우미'입니다

검토 완료

임안젤(aanzel879)등록 2020.09.28 07:59


4월 6일 오후 4시 30분. 수원지방법원 403호.

"모두 일어서주십시오."

법정 경위의 말과 함께 재판이 시작됐다. 판사는 피고인을 법정으로 불렀다. 법정 왼편, 밖과 연결된 문이 열렸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전 씨(닉네임 '와치맨')가 법정에 들어섰다. 한 남성이 연두색 수의를 입고 피고인석에 섰다. 재판 내용을 적으려던 손가락이 그대로 굳었다. 검은 머리카락, 170cm 정도 되는 키, 체격, 걸음걸이 무엇 하나 특별한 것이 없다. 예상보다도 훨씬 평범한 범죄자의 모습에 종잡을 수 없이 마음이 구겨졌다. 이 사회에 무던히 섞여 있을 공범자들이 보이는 듯했다. 흐릿한 숫자 '누적 26만 명'이 거칠고 또렷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났다. 

 마음이 무거운 건지 몸이 무거운 건지 구분할 수 없는 상태로 법정을 나왔다. 법원 밖 세상이 전과는 전혀 다르게 보였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평범해 보이지 않았고 지나가는 모든 남성이 전 씨로 보였다. 하교하는 여성 청소년들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남자가 평범한 여자를 죽이는 이 세계에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지 아득해졌다. 방에 들어와서는 토하듯 울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엇이든 토해내고 싶었다. 이 사회의 시민으로 살아가기 위해 붙들었던 마지막 신뢰가 소란스럽게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후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재판을 방청을 시작했다. 

 복잡한 마음으로 재판팀을 기획했다. 깨진 마음을 가진 사람의 발버둥, 무엇이라도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절박함⋯ 온통 질척거리고 무너지는 마음에 가까웠던 것 같다. '박사방'을 보면 세월호 사건이 떠올랐다. 이전 세대가 그저 작은 조각이라 생각하고 넘겨버린 파편들이 다음 세대의 약자들을 단번에 죽였던 세월호 사건. 재판을 방청하면서 들었던 생존자들의 나이 중에서는 10대가 가장 많았다. 이들은 왜 희생돼야 했나. 파편들은 수십 년 아니 수백 년 전부터 여기 있었는데 왜 우리는 이들을 구할 수 없었나. 왜 아무도 여성이 성적 대상이 되는 사회 분위기, 여성을 물화함으로써 권능감을 얻는 이들을 강력히 제지하지 않았나. 비슷한 질문이 내 안에 떠돌았고 결국 답은 간단했다. 아무도 그 파편을 치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파편을 보고도 넘겨버린 이전 세대의 안일함이 모여 결국 2020년, 여자들 중 그 누구도 공중화장실을 편하게 쓸 수 없는 오늘을 만들었다. 오늘 태어나는 여자아이들이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움직여야 했다. 날카로운 파편을 보고도 넘겨버리지 않는 어른으로 기억되고 싶어 재판팀을 만들었다.

 법정은 다른 세상 같다.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법률용어로 잔뜩 압축된 채 정신없이 오간다. 판사들은 공소사실과 증거에 기술된 적나라한 피해 사실을 접할 수 있겠으나, 피해 내용을 머리로 그리고 피해 규모를 상상할 수 있으려면 그에 앞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더욱 강력한 처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형기준과 법안 등 마땅히 제도가 마련돼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달라지는 속도에 판사들이 발을 맞출 수 있을지는 매우 회의적이다. 온라인에서 이루어진 범죄는 다소 '간접적'이고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가 보다 '작으며' 최초로 성 착취물을 제작해 올린 사람이 아닌 이상 그 범죄의 무게가 몹시 '가벼운' 것으로 판단하는 재판부가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 수준, 즉 가해 행위를 적절히 판단할 수 있을까. 양형기준과 법안은 마땅한 형량이 선고되는 데에 기여할 수는 있겠으나, 작량감경 등 재판에서 판사의 재량은 여전히 크고, 공판 절차는 증인 신문 과정, 증거조사 절차, 모두진술 등 곳곳이 2차 가해가 발생할 수 있는 틈새다. 법원은 수많은 사건이 오가는 것에 비해 아주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다. 이 조용한 세계에서 현실의 소란과 울음이 제대로 논의되기 위해서는 보다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재판을 방청하는 것과 탄원서 제출하는 것은 당신이 법원을 흔들 수 있는 최상의 방법 중 하나다. 개개인은 행동을 통해 온실에 균열을 내고 현실을 알릴 수 있다.

 어느덧 재판을 방청한 지 5개월이 지났다.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아서 나름대로 치열하게 공부했던 시간이었다. 공판을 제대로 보기 위해 형사소송 절차를 공부했고, 성폭력을 보다 정치하게 설명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자료를 살펴봤다. 각종 연구원에서 낸 발간자료, 형법각론 등 법적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책, 여성단체에서 만든 자료집, DSO의 디지털성폭력대응매뉴얼 등 자료를 닥치는 대로 읽었다. 보도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이유였다. 직접 방청한 공판 수보다 현저히 적은 보도를 할 수밖에 없어 아쉬웠고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공부한 덕에 조금은 안심하고 보도했다. 앞으로 더더더 의미 있는 정보값들을 왜곡 없이 알리고 싶다.

 수개월 간 이어지는 재판을 일일이 방청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들이는 힘에 비해 변화하는 속도는 더없이 느리다. 서울중앙지방법원까지 가는 데 1시간 40분, 인천지방법원 가는 데 2시간, 춘천지방법원은 3시간,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원은 도착하기까지 7시간이 걸린다. 조금씩 변화를 마주하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 변화를 활동의 동력으로 삼기엔 우리 사회가 던지는 메시지가 너무 암울하고 일관적이다. 한창 활발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어느 일주일에는 대통령이 성폭력 범죄자 모친상에 조화를 보냈고, 어떤 이는 돌연 자살했고, 어떤 이의 미국 송환이 불허됐다. 큰 벽을 마주한 듯 답답했다. 이원호 공판을 방청하러 군사법원에 갔을 때는 군부대를 나서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여기(음? 군대?)있지?' 체력은 점점 약해지고 기대감도 옅어져서 그만둘 법도 한데 공판 일정이 뜨면 또 방청이 가고 싶다. 이상하다.

 나의 원동력은 두 가지다. 하나는 궁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다. 공판 일정이 뜨면 이번 공판에서 어떤 법리 다툼이 전개될지, 또 똑같은 전략일지 궁금하다. 기사로 보는 것과 직접 가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직접 가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재판부의 표정, 재판부가 피고인을 대하는 태도, 생각보다 훨씬 별거 없는 피고인, 피고인이 방청석을 의식하는 모습, 중년 남성들로 점철된 법원, 생각보다 심심하고 빠르게 전개되는 재판 등이다.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다. 단 한 명의 감시자도 없을 때의 법정, 나는 그 법정을 신뢰하지 못한다.

 또 다른 원동력은 이 사건에 주목하는 개인들이다. 한국 사회에는 큰 기대가 없지만 함께하는 개인들에게 기대가 크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재판에서 마주치는 방청인들, 인스타그램에 기꺼이 'n번방' 사건을 공유하는 사람들, 강간 문화를 규탄하고자 연대 단체를 만드는 여성들이 그 개인들이다. 공판을 방청하러 가면 기자보다 방청인들이 더 많다. 이번 재판에서도 그들을 볼 수 있겠거니 기대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만나러 법원을 찾는 날도 있었다.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리고 있지만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되고 또 의지가 됐다.

 꽤 긴 시간 재판을 보러 다녔지만 마음이 무뎌지지 않는다. 갈 때마다 범죄행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소사실은 듣고 싶지 않고, 피고인의 목소리도 싫다. 법원을 나오면 신체 일부를 눈 앞에서 도난당한 것처럼 허탈하고 마음이 휑하다. 그렇지만 다음에도 갈 것 같다. 온성신에서 재판 보도가 끝나도 성폭력 재판을 보러 다니고 싶다.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법원을 찾는 여자들에 의해 혹시 법원이 조금은 바뀌어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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