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와인, 유기농와인을 추구하는 수도산 와이너리의 백승현 대표
막걸리학교
수도산 와인의 이름은 크라테(Krate)다. 크라테(Crater)의 이탈리아식 표기인데 화산 분화구를 뜻한다. 그가 사는 증산면(甑山面)은 마을 시루봉에서 따온 이름이고, 그는 시루가 분화구처럼 생겨서 크라테라 이름지었다. 그는 크라테를 소개하면서 스스로를 "자연의 링 위에서 한국 와인 챔피언"이 되겠다고 했다. '자연의 링'이라는 말이 궁금했다.
그는 복서였다.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복싱을 했고, 주니어라이트급으로 프로 복서에 데뷔했다. 그는 세계챔피언이 된 오광수, 동양챔피언인 김상호와 같은 체육관에 소속되어 활동하다가 3전 2승1패의 기록으로 링에서 내려왔다. 군대 가서 몸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이 권투 선수로서의 수명을 단축시켰다.
이십대 후반에는 목욕탕 때밀이도 하고, 일수 받는 일도 하고, 경비 회사에서 경호 일도 했다. 체육관에서 알던 사람들의 소개로 일을 하다보니 힘을 쓰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싶어 고향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다. 고향에 내려가면 욕심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스물아홉살에 결혼하고, 서른살에 고향으로 증산면 금곡마을로 돌아왔다. 그게 20년 전 일이다.
그는 정통 와인을 만들고 싶었다. 수입산 품종이 아니라 국내 자생하는 품종으로 레드 와인을 만들기로 하고, 2001년에 파주 감악산에서 산머루 묘목 500주를 구해와 수도산에 심었다. 와인을 독학하면서 2003년부터 산머루 와인을 빚기 시작했다. 그 뒤로 경북 농민사관학교를 다니고, 농촌진흥청의 와인심화과정, 경북대 특산주제조과정을 다니며 공부를 했다.
그는 내추럴 와인을 추구하고 있다.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고 와인을 담그려고 한다. 부엽토, 소똥, 와인찌꺼기를 섞어 2년 이상 땅을 숙성시키면 지렁이가 생기고 땅이 거름져진다. 화학 비료를 사용하면 머루나무 한 그루에 10kg의 머루가 달리는데, 그렇지 않으면 3~5kg이 달린다. 그래도 그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려 한다. 그가 경영하는 땅은 5천평인데, 그 안에 대략 5천주가 자라고 있고, 그 나무에서 해마다 5천병의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이탈리아의 아마로네 와인 공법을 추구하고 있다. 아마로네는 '맛이 쓰다'라는 뜻이라 드라이 와인을 닮았지만, 일반 드라이 와인과는 또 다르다. 아마로네 와인은 달콤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 포도를 건조해서 농축시켜 만들다가 우연히 완전 발효가 되어 담백하고 쓴맛이 도는 와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머루의 당도를 높이기 위해서 가을에 서리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확한다. 그러면 수분기가 증발하여 머루가 얼마간 농축된다. 아마로네는 수확하여 말리지만, 그는 나무에서 농축되기를 기다리는 셈이다. 그가 내게 건넨 머루와인 2015년산은 22브릭스가 나와서 알코올 11.5%가 되었고, 오크통에 숙성시켰더니 알코올이 더 순해져 있었다.
당도가 높으면 보당(와인의 도수를 높이기 위해 알코올 발효 중 포도즙에 설탕을 첨가하는 기법)을 하지 않아도 원하는 알코올 도수가 나온다. 수확철에 날씨가 좋지 않아서 원하는 당도가 나오지 않는 경우에는 그도 불가피하게 보당을 한다. 그가 만들어서 지하 숙성고에 숙성시키고 있는 와인의 60%는 보당하지 않은 제품들이다.
그는 다양한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 머루 외에도 양조용 포도 1500주 정도를 재배하고 있다. 김천시가 스페인의 비야로블레도시와 자매 결연을 맺고 양조용 와인 묘목을 들여와 시험 재배를 하고 있는데, 그 나무의 일부가 그의 밭에서도 자라고 있다.
그를 따라 비탈진 그의 포도밭을 가보았다. 그물막을 치지 않으면 포도의 단맛이 돌 무렵에는 산짐승과 산새들이 달려들어 열매가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그물막을 넘어 포도밭으로 들어서니 화들짝 놀라 달아나는 산짐승이 있었다. 어린 노루 한 마리인데, 들어오기는 했지만 나가는 길을 몰라 돌담 밑에서 몇 번을 미끄러지더니 용케 찢어진 그물막을 비집고 달아난다.
수도산을 지키는 포도밭 사나이
그의 밭에는 스페인 와인의 대표 품종으로 타닌의 질감이 좋다는 템프라니요(Tempranillo)가 있고, 산도가 좋다는 가르나차(Garnacha)가 있고, 카탈루냐 지방이 고향이라는 모나스트렐(Monastrell), 그리고 화이트 아이렌, 마카베오 들이 자라고 있었다.
그는 새 품종의 경우는 5년 동안은 키우면서 토양과 기후 적응도를 봐야 본격으로 재배할 수 있다고 했다. 템프라니요만 하더라도 껍질이 뚜껍고 알이 가득 차게 매달리는데 수확기에는 열매가 터지는 현상이 발생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