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 토기잔, 투박하고 단아한 커피잔처럼 보인다.
막걸리학교
백제 의자왕도 행주의 굴욕을 맛보았다. 660년 가을 8월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항복한 뒤에 항복 의식으로 행주가 행해졌다. 신라왕 김춘추, 무장 김유신, 왕자 법민, 당나라 소정방과 유인원이 자리를 차지하고, 의자왕은 태자 효와 왕자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단상의 승자들에게 술을 바쳤다.
이 모습을 보고 백제 신하들이 오열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이 모습을 회상하며 훗날 조선시대 문인인 남효온(1454~1492)이 '부여 회고'라는 시를 남겼다.
육백년 백제 왕업 가을 달이 찬 듯하니 / 六百年來秋月盈
당나라 군사의 북과 피리 소리 밤에 울려퍼지네 / 唐兵鼓角夜來鳴
백마강 어귀에서 푸른 옷 입고 술 따랐으니 / 靑衣行酒馬江口
백관들의 통곡 소리 차마 들을 수 있으랴 / 忍廳百官哭泣聲
반월성 언저리가 모두 전쟁터 되었어도 / 半月城邊皆戰場
군왕은 술상에서 술잔만 돌렸다네 / 君王據案浪傳觴
짧은 인생 멋 모르고 만년 계획 세웠으니 / 百年便作萬年計
문밖에 소정방이 올 줄 어찌 알았으랴 / 門外安知蘇定方
추강 남효온은 생육신의 한 사람이며, '육신전'을 지어 사육신의 존재를 알린 사람이다. 그는 김종직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김굉필, 정여창과 함께 공부했다. 18살에 현덕왕후 능의 복위을 상소했으나 상달되지 못하여 크게 실망하였다.
20살에 생원시를 합격하였으나 더 이상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고, 22살에 신영희, 홍유손 등과 죽림거사(竹林居士)를 맺어 동대문 밖 죽림에 모여 소요건(逍遙巾)을 쓰고 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지냈다.
그는 전국을 유람하며, 요사이로 치면 여행작가라 불러도 좋을 만큼 많은 여행기를 남겼다. 그는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 능 복위를 상소한 것과 김종직의 문인이라는 것 때문에 사후 12년이 지난 갑자사회(1504년) 때에 양화진에서 부관참시까지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