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주대마다 콩종자 하나를 심는다콩밭에는 650여개 지주대가 세워져있다.
민병래
오늘도 밀짚모자에 고무신을 신고 정규화는 진주남강변 콩밭에 선다. 그는 말한다. 콩은 우리가 즐겨 먹는 음식이지만 코로나같은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에 면역력을 키워주는, 우리가 인류에게 기여할 수 있는 식품이라고, 그래서 콩만큼은 규모의 논리나 "수입하면 된다"는 접근을 버리자고...
지금 진주의 콩밭을 중심으로 세계적인 연구소를 만들어보자는 제안이 오가고 있다. 홍콩 사틴, 파키스탄 파이살라바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 터키 앙카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웨스트케이프에서 정규화의 자원이 공동재배되고 있다. 이 순간을 위해서 그는 35년을, 365일을 매일 같이 산하를 헤매고 진주 들판에서 햇빛과 씨름했는지도 모른다.
2020년 정규화는 손녀딸을 봤다. 그 꼬물대는 손녀를 데리고 콩밭에 가서 그는 손녀딸의 이름을 정소이라고 지었다. 콩이 영어로 '소이빈(soybean)'이다. 거기서 소이를 따서 정소이, 정소이라고...
<못다 한 이야기>
'두만강'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①<<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두만강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한청문감 漢淸文鑑》 만주지명고(滿洲地名考)에서 언급하고는 있으나 명확하지 않다. 두만강은 또, 고려강(高麗江)·도문강(圖們江)·토문강(土們江)·통문강(統們江)·도문강(徒門江)으로 표기된 바도 있다. 만주지명고에 의하면 두만강이 새가 많이 모여드는 골짜기라는 뜻의 도문색금(圖們色禽)에서 색금을 뗀 도문이라는 여진어(女眞語) 자구(字句)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② <<신정일의 새로쓰는 택리지>>에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경원도호부」편에는 "두만강은 부의 동쪽 25리에 있다. 근원이 백두산에서 나와 동량ㆍ북사지ㆍ아목하ㆍ수주ㆍ동건ㆍ다온ㆍ속장 등의 지방을 경유하여 횟가[회질가(會叱家)] 남쪽으로 흘러 경흥부의 사차마도(沙次麻島)에 이르러 갈라져 5리쯤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여진 말로는 만을 두만(豆滿)이라 하는데, 여러 갈래의 물이 여기로 합류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사전에 북독의 신을 여기서 제사 지낸다. 중사(中祀)에 실려 있다"라고 했는데, 두만강은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길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글에서 두만강(豆滿江)을 콩이 가득한, 혹은 콩을 실은 배가 가득한 강으로 해석한 것은 학술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고 작가 본인의 상상입니다.
2. 정규화교수가 확보한 야생콩의 가치를 조금 더 부연하면
정규화가 이제까지 했던 야생콩 작업수집과 계통분류작업은 규모만이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는 철저하게 격리된 전라남도 일대의 섬들을 중심으로 수집하였기에 독자성이 뚜렸한 씨들을 모았다.
그리고 모은 씨가 발아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정확한 위치를 표시햇다. 수집팀에게는 사비를 털어서 마련한 군용 GPS장치를 줬다. 그래서 장소마다 가령 경북 포항 아모르모텔 2km전방 18-1이라고 위치를 표시하고 동시에 36-00-25.40N, 129-28-09-7E 같이 좌표를 찍어 사방 1M 내외까지 정확히 짚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수집한 종자가 발아가 안되어 씨를 받지 못하면 이 좌표를 따라 언제든지 다시 가서 채집하고 복원할 수 있다
정규화의 또 다른 자랑은 그의 종자가 한반도 남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야생콩에 대한 다른 나라의 법적 제재가 이루어지기 이전부터 그는 수집을 시작했다. 마치 문익점이 목화씨를 붓뚜껑에 담아서 가져온 것처럼 그는 중국을 비롯 일본 러시아 등 아시아 일원에서 채집을 해 모은 것이다.
덧붙이면
중국은 '인류유전자원관리법'으로 북한도 '작물유전자원관리법' 등으로 토종 종자가 다른 나라로 넘어가는 것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고 특히 야생콩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2017년에 '유전자원관리법'이 만들어졌다.
3. 콩의 원산지에 대한 기록과 중국인들이 콩을 소중히 한 기록을 보면
① 중국의 사기에도 "기원전 7세기에 제(齊)나라 환공이 고죽국 지역을 정벌하고 이곳에서 융숙(戎菽)이라는 콩을 가져와 중국에 퍼트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죽국은 동이족의 나라 즉 우리의 조상나라이다. 중국의 대표적인 문헌 사기에서도 콩은 우리 민족에서 기원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② 은나라 시기 갑골문자를 분석해보면 처음으로 콩 두(豆)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BC 200년에 이르러 콩을 대두(大豆)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중국인들이 콩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겼는지는 몇몇 글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콩의 대두 두(豆)자는 풍년 풍(豊)자를 받치고 있다. 풍년을 가늠하는 잣대가 콩 농사였다는 의미다. 한편 머리 두(頭), 몸 체(體)에도 콩 두(豆)자가 핵심 부수다. 중국인들이 콩을 얼마나 소중한 곡식으로 여기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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