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1일 낙동강 창녕함안보에서 열린 '낙동강 수질개선을 위한 민관 현장 간담회'에 참석한 김은경 환경부 장관(왼쪽)과 김혜애 대통령비서실 기후환경비서관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윤성효
김혜애 비서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환경단체 책임자 출신이다. 그 단체는 생태근본주의에 가까운 운동이념을 지니고 있다고 알고 있다. 개발과 성장을 앞세우는 한국 사회에서 소중한 역할을 하는 단체다. 나는 평소 김 비서관을 알지 못했지만, 그런 경력을 가진 사람이 청와대에서 4대강 재자연화 정책을 총괄한다는 소식에 기대가 컸다.
2018년 가을 언제였나. 김 비서관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긴히 할 얘기가 있다고 했다. 만나 보니 4대강 재자연화 조사평가단 위원장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회피할 생각은 없었다. 지난 10년 간 내가 한 말과 행동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한 가지 조건을 말했다.
"4대강 사업 반대와 4대강 재자연화가 논리구조상 등치가 아니다. 심도 있는 분석과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4대강 사업을 경제성 결여 문제로 접근했듯이, 보 해체 정책 역시 경제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국민들께서 수긍할 거다. 수질 악화와 생태계 훼손 문제만을 갖고 일반 국민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 그것이 현실이다. 조사평가단 내에 경제성 검토를 수행할 연구팀을 만들게 해달라."
나의 이 언급이 있기 전까지 환경부도, 청와대도 조사평가단이 보 해체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경제성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 제안을 김 비서관은 수용했고, 그에 따라 조사평가단 내에 사회경제 분석 팀이 꾸려졌다.
김 비서관으로부터 2019년 초 평가단 조사결과를 확정, 권고하면, 이를 받아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여름 중 결정하고, 2019년 연말까지 집행한다는 로드맵을 전해 들었다. 빠듯한 일정이었다. 생태, 치수, 수질, 공학, 경제, 사회, 현장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활동가로 구성된 40여 명의 위원들은 밤낮으로 일했다. 환경부 공무원들과도 호흡을 맞췄다. 전문가 – 시민사회 – 공무원 간 의견 조율이 늘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가야 할 길이 분명했기에 지난한 난상토론 끝에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연구가 진행되는 동안 김혜애 비서관이 분석 내용에 개입하거나 결론을 유도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평가단에서 수용할 리 만무했다. 기자회견 형식의 조사결과 발표 당일에도 그로부터 격려의 말이 있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애초의 로드맵이 실종돼버렸다. 환경부는 비판 기사에 대한 언론대응에도 힘들어 했다. 청와대로부터는 반응이 없었다. 국가물관리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총선을 1년 앞두고 당청이 나서 4대강 관련 정책 추진을 자제하려 한다는 출처 미상의 소식만 들릴 따름이었다. 조사평가단 발표 이전과 이후 김혜애 비서관의 태도는 많이 달랐다. 그의 차분한 말씨와 마음씨 좋아 보이는 웃음이 더 이상 나에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나는 미련 없이 위원장 자리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고, 이를 환경부에 통보했다.
그 이후 김 비서관과 제대로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애초의 로드맵은 어떻게 된 거냐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냐고 묻고 싶었으나,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대표적인 시민운동가로서 지난 10년 간 4대강에 벌어진 일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으면서 김 비서관이 어떤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에게서 우리 하천과 국토를 향한 간절함과 정책실현 의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가장 아쉽다.
김수현 전 청와대 사회수석/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