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봉산 등산로의 김수영 시비
권은비
시 구절을 되뇌며 산을 오르니 어느새 김수영의 '시비'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애초에 내가 상상했던 '무덤' 같은 형상은 없고 오로지 돌로 조각된, 아주 전형적인 시비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김수영 시비에는 한문으로 '김수영 시비'라고 쓰여 있었고, 그의 시 '풀'의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이 시비 밑에 김수영의 화장한 유해가 묻혀있을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시비의 바닥에는 촘촘하고 빼곡하게 회색빛 사고석이 심어져 있었다. 시비의 왼편에는 김수영의 얼굴이 부조로 조각돼 있었는데 누가 조각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시비 앞에는 국화꽃이 놓여 있었으나 그것 역시 언제, 누가 놓고 간 것 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시비 주변에 무심하고 무성한 풀들을 보니, 수많은 명작을 남긴 예술가도 '죽으면 그뿐이다' 싶다.
다른 세계
시인 김수영이 더 이상 나의 우상이 아니게 된 계기는 특별할 것이 없었다. 그냥 내가 변했다.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이라고, 김수영 스스로 자신의 폭력을 시로 썼던 '죄와 벌'처럼, 그의 작품 곳곳에서 '여보'와 '아내'와 '여편네' 사이의 간극이 눈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김수영은 천천히 나에게 다르게 다가왔다.
김수영이 나 따위의 사람의 우상이 아니게 된 것은 이 세계에 하등의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저 김수영을 우상으로 여기고 그의 문장 하나하나를 귀하게 아껴 읽고 곱씹었던 나는 이제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나만 알 뿐이다.
그러고 보면 피카소는 수많은 여성들을 휴지장처럼 갈아치운 사람이었고, 그 유명한 멕시코 민중미술의 거장 디에고 리베라는 프리다 칼로에게 진상 중의 진상이었다.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철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을 펴낸 칸트는 오로지 백인만이 '좋은 인종'이라는 말도 안 되는 말을 남긴 고약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나의 우상이, 더 이상 나에게 아무 존재가 아닌 것이 되었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서가를 정리한다. 나의 작은 서가에는 디에고 리베라의 화집은 없어도 프리다 칼로의 화집은 꽂혀 있다. 과거 나의 우상이었던 김수영의 시집과 책들은 아직까진 제자리에 있으나 고은의 시집과 책은 모조리 처분해 버렸다. 최근엔 어느 미술가와 만화가의 화집도 차곡차곡 쌓아 집 앞에 내다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