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 대표는 앞으로 다단식 동증류기를 이용하여 풍정사계 소주를 만들 예정이다.
막걸리학교
그는 젊은 날 포항제철에서 기술직으로 두어 해, 대전 신문사에서 사무직으로 다섯 해를 일하다가, 마흔 살 무렵에 사진 학원을 1년 동안 다닌 뒤에 1994년 청주시에 사진관을 열었다. 사진관이 붐을 이루고 있을 때여서, 동네 미장원과 사진관의 숫자가 비슷할 정도로 흔했다.
그 무렵 청주 시내에 사진관이 150개가 있었고, 겸업으로 사진을 찍어주던 업체가 100군데가 더 있었다. 그가 운영하던 샘스튜디오 주변에는 10개의 사진관이 있었다. 다리가 긴 삼각대 위에 무겁고 큰 중형 카메라를 얹어놓고 사진을 찍어야 폼도 났다. 해마다 새로운 장비를 두어 개씩을 갖춰야 경쟁에서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2000년에 들어서 포토샵이 보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사진을 인화하던 시간이 7일에서 3일로 짧아지더니, 30분 증명사진이 등장하고, 마침내 디지털 3분 완성시대가 되면서 사진값은 더 이상 오르지 않게 되었다. 사진관을 운영하기 어려워졌고 변신이 필요했다.
그는 경주 보문단지에서 사진 기자재 전시와 사진 기술 교육을 받으러갔다가, 비싼 경주교동법주 한 병을 사게 되었다. 알코올 도수가 17%로 독했지만, 술에서 백합 향이 돌고 맛이 좋았다. 그는 술이 약한 편이라, 그 술을 시렁에 올려두고 하루에 한 잔씩 생각날 때마다 야금야금 마시니 한 달이 걸렸다.
그는 경주 교동법주 같은 술을 빚고 싶어졌다. 사진관 컴퓨터로 검색하다가, 전주와 서울에 술 교육기관이 있는 줄을 알게 되었다. 서울은 너무 복잡할 것 같고, 2006년에 청주에서 전주 전통술박물관으로 술을 배우러 다녔다. 그곳에서 출강 온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을 만났고, 술의 인연이 깊어졌다.
그는 박록담 소장으로부터 술을 배우면서 홍삼 법주를 알게 되었고, 그 술을 반복해서 빚게 되었다. 그는 "백 가지 술을 만드는 것보다 한 가지 술을 잘 만들어 내 술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겼다.
2008년까지만 해도 그가 빚은 홍삼 법주가 무척 달아서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단맛을 줄이려고 쌀양을 줄이고 물양을 늘려도 보고, 누룩량을 조절해 보기도 했다. 2010년쯤 되자 스스로 만족할 만큼의 술맛이 나왔다. 그 술을 발전시켜 지금의 풍정사계 술에 이르게 되었다.
"내 누룩이 있어야 내 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