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경찰과 조지 플로이드

이주민센터친구 수요법률살롱 시즌2

검토 완료

이주민센터친구(friendnetwork79)등록 2020.07.13 15:23
인터넷을 통해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고인은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쳤지만 숨이 잦아들 때까지 제압되어 엎드려 있었다. 고인의 숨통을 짓누르던 그 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합리화하는 그의 세상도 고인의 고통스러운 비명을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라고 크게 다를까. 나 역시 처음에는 그 뉴스를 무감각하게 읽어내려 갔다. 일부러 감각을 깨우지 않았다면 활자 너머의 분노와 서러움을 느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굳이 불편한 감정을 노력까지 해서 느끼려는 것은 누군가의 비애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웃어넘기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더 이상 공감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우리는 놀라울 정도로 잔인해질 수 있다. 폭력은 남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나의 불편함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감하기를 포기하면 우리는 마치 꽃을 꺾고 돌맹이를 발로 차듯 사람을 꺾고 발로 차기 쉽다. 공감을 포기하면 우리는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치던 고인의 숨통을 조이는 그 자가 될 수 있다. 숨을 쉴 수 없다고 외치는 아동을 가두는 부모가 될 수도 있다. 제발 숨을 쉬고 싶다고 외치는 난민과 이주민을 향해 날선 말들을 쏟아내는 군중이 될 수도 있다. 아니, 그렇게 되기 너무나도 쉽다.

타인의 고통에 거리를 두면 내 안의 어둡고 무거운 진실을 마주할 수 없다는 점도 타인의 고통을 느끼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이다. 나는 화면과 활자를 통해 매일같이 죽음을 접하고 있지만, 나에게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죽음에 대해서 둔해진다. 타인의 죽음에 무뎌지면 나의 죽음까지는 생각이 닿지도 않는다. 삶은 죽음을 향해 성큼 성큼 나아가므로, 나는 살아있는 모든 순간 죽음에 점점 가까워지는데도 마주하길 피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타인의 아픔을 느끼는 것을 게을리하면 나 자신을 제대로 보는 일도 어려워진다. 문제는 왜곡된 나 자신을 보는 것이 진실된 나의 문제를 마주하는 것보다 마음이 훨씬 편하다는 것이다.
그가 살았던 세상도 그런 것 같다. 고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에서 배제하면 안전할 것이라는 얕은 믿음 아래에 진실을 묻어 놓은 점이 그렇다. 특정 인종이 폭력적이고 거칠기 때문에 경찰이 고인을 진압한 것이 아니다. 그가 살던 세상이 치안의 문제를 덮어두기 위해 폭력적이고 거친 인종을 만든 것이다. 심지어는 고인이 사망한 이후에도 폭력적인 시위대, 우리를 해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혐의가 계속 작동 중이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도 그런 것 같다. 경찰도 접근할 수 없을 정도로 범죄의 소굴이라는 그 동네만 피하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처럼 포장된 세상이라는 점이 그렇다. 위법한 행위를 서슴없이 벌이는 소수자를 발명했다는 점도 그렇다. 영화 '청년경찰'은 대림동과 중국동포에 대한 혐의를 이용하고, 증폭시키고, 선동한다. 영화 초반에 치밀하게 장치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들에게 범죄 배경과 범죄 행위자를 납득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사회에서 대림동과 중국동포에 대한 혐의가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경찰'과 같은 이야기들이 쌓이다 보면 대림동과 중국동포에 대한 혐의는 더욱 짙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경찰이 대림동에 정말 나타나 누군가의 숨통을 조이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이 영화가 오락영화여서 더 두렵다. 위에 적은 것처럼 타인의 고통을 웃어넘기고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폭력을 행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약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혐오를 증폭시키고 선동하는 것에 대한 경계를 멈추면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날지도 모른다.

다행히 얼마 전 법원은 혐오표현에 대한 문제의식을 표현했고, 영화 제작사도 이에 응답해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대림동에 거주하는 중국동포와 지역주민들은 2017년 영화 제작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 법원은 원고들의 청구를 기각하였으나, 항소심 법원은 올해 3월 16일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에 대하여 화해권고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영화사는 4월 1일 원고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하며 재발방지를 약속하였다.

우리도 이 세상에서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배척당하지 않느냐고 반론할지 모르겠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그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 그러면 세상이 좀 바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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