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술잔을 부딪치며 대작하다.
막걸리학교
그런데 요상하다. 글은 아무리 써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쓸 때마다 막연하고, 아슬아슬하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오늘 저 강을 건널 수 있을까 두렵다. 평론하는 친구에게 한 번은 이렇게 푸념한 적이 있다.
"20년을 넘게 글을 써왔는데 익숙해지지 않아. 젠장 뭐 이런 게 있어. 이제쯤이면 편안하고 즐겁게 술술술 글이 써져야 되는 게 아냐?"
그날 우리의 결론은 이랬다. 글은 익숙해지는 순간 망하는 것이다. 글은 늘 새롭게 써야 한다. 글은 자기 복제를 하는 순간 사기이고 범죄다. 글의 운명이 그렇다면, 글 쓰는 일은 도전할 만하다.
글 쓰는 일은 내 머리 속에 종이비행기를 닮은 화두 하나를 날리고, 그 화두를 좇아가는 일이다. 책상 위에서만 화두를 좇지 않고, 길 위에서도 타국의 낯선 방에서도 좇는다. 배경이 달라지면 화두의 물결이 달라진다. 가장 탐하는 시간은 문득 깨어난 새벽 시간이다.
새벽 글은 새벽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긷는 물 같고, 저녁 글은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소나기 같다. 새벽 글은 내 안에서 생각 하나를 길어올리는 일이라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저녁 글은 오만 잡상이 소나기처럼 내 머리 속으로 들이쳐서 산만하고 어지럽다. 아침 글은 단순하지만 담백하여 그대로 쓸 만한데, 저녁 글은 그대로 썼다가는 탈이 난다.
손끝에서 나오는 글은 독백이나 속삭임과 같다면, 입에서 쏟아지는 말은 북소리처럼 요란하다.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된다고 믿는 주의다. 그런데 글 세계와 말 세계의 도덕률이 다르다. 글은 자기 복제를 하면 안 되지만, 말은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해야 한다. 말 할 때마다 말이 달라지면 안 된다.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그 주제는 상대방이 정한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으로. 그 순간 강연 주제는 지극히 제한된다. 같은 주제의 강의를 반복하다 보면 내 안에 녹음기를 틀어놓는 것 같다. 그 순간 강연자는 히트곡을 얻어 같은 리듬을 타고 같은 가사를 불러야 하는 가수를 닮게 된다.
막걸리학교의 첫 번째 강의이자, 수강생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강의는 '내 생의 첫술빚기'다. 전체 10강에서 세 번째에 배치되다가, 첫 번째로 격상되었다. 수강생들의 절반 이상이 술을 빚고 싶어서 오기 때문에, 그 욕구를 단번에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