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2 20:46최종 업데이트 20.06.02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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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노동자가 되어 원고료를 받고 산 지는 30년, 말 노동자가 되어 강연료를 받고 산 지는 20년이 되었다. 글이 쌓여 책을 낸 뒤에라야 강연 요청이 들어왔기에 10년의 차이가 난다. 책 제목이 곧 강연 제목이 되었다.

지금은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살아간다. 역사, 여행, 문학, 레포츠, 음식 등 여러 주제를 다뤄오다가 세월이 흘러 술이라는 주제 하나로 정리되었다. 엄밀하게 말하면 술이라는 큰 저수지가 만들어지고, 다시 술 문화, 술 제조법, 양조장 창업, 술 기행 따위의 다양한 주제로 갈래를 치고 있다. 내가 어디까지 어디로 흘러갈지 나도 알 수 없다.

그 술의 길을 밀고 나가는 두 바퀴는 글과 말이다. 글은 매주 한 편을 쓰려고 한다. 일기나 다름없다. 그 주간에 내 마음에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생동감 있고 현장성 있는 것'을 기록하려 한다. 그 기록을 남기지 않으면 생은 아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을 것 같다.
 
함께 술잔을 부딪치며 대작하다.막걸리학교
 
그런데 요상하다. 글은 아무리 써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쓸 때마다 막연하고, 아슬아슬하다. 한 편의 글을 쓸 때마다 오늘 저 강을 건널 수 있을까 두렵다. 평론하는 친구에게 한 번은 이렇게 푸념한 적이 있다.

"20년을 넘게 글을 써왔는데 익숙해지지 않아. 젠장 뭐 이런 게 있어. 이제쯤이면 편안하고 즐겁게 술술술 글이 써져야 되는 게 아냐?"


그날 우리의 결론은 이랬다. 글은 익숙해지는 순간 망하는 것이다. 글은 늘 새롭게 써야 한다. 글은 자기 복제를 하는 순간 사기이고 범죄다. 글의 운명이 그렇다면, 글 쓰는 일은 도전할 만하다.

글 쓰는 일은 내 머리 속에 종이비행기를 닮은 화두 하나를 날리고, 그 화두를 좇아가는 일이다. 책상 위에서만 화두를 좇지 않고, 길 위에서도 타국의 낯선 방에서도 좇는다. 배경이 달라지면 화두의 물결이 달라진다. 가장 탐하는 시간은 문득 깨어난 새벽 시간이다.

새벽 글은 새벽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긷는 물 같고, 저녁 글은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소나기 같다. 새벽 글은 내 안에서 생각 하나를 길어올리는 일이라 신중하고 조심스럽고, 저녁 글은 오만 잡상이 소나기처럼 내 머리 속으로 들이쳐서 산만하고 어지럽다. 아침 글은 단순하지만 담백하여 그대로 쓸 만한데, 저녁 글은 그대로 썼다가는 탈이 난다.

손끝에서 나오는 글은 독백이나 속삭임과 같다면, 입에서 쏟아지는 말은 북소리처럼 요란하다.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말하듯이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된다고 믿는 주의다. 그런데 글 세계와 말 세계의 도덕률이 다르다. 글은 자기 복제를 하면 안 되지만, 말은 끊임없이 자기 복제를 해야 한다. 말 할 때마다 말이 달라지면 안 된다.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그 주제는 상대방이 정한다, 내가 가장 잘 하는 것으로. 그 순간 강연 주제는 지극히 제한된다. 같은 주제의 강의를 반복하다 보면 내 안에 녹음기를 틀어놓는 것 같다. 그 순간 강연자는 히트곡을 얻어 같은 리듬을 타고 같은 가사를 불러야 하는 가수를 닮게 된다.

막걸리학교의 첫 번째 강의이자, 수강생들이 가장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강의는 '내 생의 첫술빚기'다. 전체 10강에서 세 번째에 배치되다가, 첫 번째로 격상되었다. 수강생들의 절반 이상이 술을 빚고 싶어서 오기 때문에, 그 욕구를 단번에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다.
 
술빚기 실습을 하는 모습, 약재를 넣어서 술을 빚고 있다.막걸리학교
 
강의는 소독과 청결, 원료 배합 비율, 발효 원리, 발효 온도 관리를 이야기하고, 술빚기 실습으로 들어간다. 술 빚는 원리를 이해하고 배운 대로 하면, 큰 과녁 앞에서 활을 쏘는 것처럼 쉽다. 그러나 같은 한강이라도 같은 물이 한 번도 흘러간 적이 없다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한다. 똑같은 재료로 똑같이 술을 빚어도 똑같은 술이 나오지 않는다.

술 빚기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술빚는 원리는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천 년 후나 동일하다. 급변하는 정보 기술과 달리 술을 배워두면 언젠가는 쓰임새가 있는 이유기도 하다.

그래서 술빚기의 기초 강의의 순서와 내용은 큰 틀에서 달라질 게 없다. 그런데도 나는 말을 하면서 어떻게 새로워질 것인가? 같은 내용을 어떻게 새롭게 전달할 것인가? 고민한다. 새롭지 않으면 아무런 생명력이 깃들지 않는 것 같아서,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으려 한다.

그러다 보면 해야 할 이야기가 빠지고, 강연이 어려워지고 만다. 강의안을 함께 짠 팀원들은 "원래 하기로 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새로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강연이 어려워집니다"라고 말하고, 나는 그 말에 순순히 동의한다. 말이 지닌 한계, 반복 노동의 지루함에서 빠져나오려다, 또 함정에 빠지고 만다.
 
요사이는 혼자 술 마실 수 있는 바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막걸리학교
 
글쓰기는 고독한 작업이고, 말하기는 요란한 작업이다. 혼자 있을 때는 글의 힘이 세지고, 광장에서는 말의 힘이 세진다. 그래서 정치가는 화려해 보이고 작가는 고독해 보인다. 하지만 글을 통해서는 자기 스스로를 위로받을 수 있다면, 말을 통해서는 자기보다는 상대방을 위로해야 한다.

글쓰기는 홀로 마시는 독작(獨酌)이라면, 말하기는 누군가와 나누는 대작(對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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