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각 2019년 기준
황세원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지금까지도 있어왔다. 고용보험 가입 범위를 넓히려는 노력도 이뤄져왔다. 2004년부터는 일용직·시간제 노동자로 확대됐고 자영업자의 가입 자격도 완화돼 왔다. 지난 5월 20일에는 고용보험 적용 대상에 예술인을 포함하는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이 추진돼 온 특수고용 노동자 포함 방안은 '준비가 덜 됐다'는 이유로 누락됐지만, 정부는 이 중 산업재해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는 9개 직종(보험판매원·학습지 교사 등)에 대해 조만간 다시 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렇게 느리더라도 한 걸음씩 가다보면 언젠가는 '전국민 고용보험'이라는 이상에 닿게 될까? 그렇다고 보기 어려운 이유는, 방향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낡은 틀에 억지로 욱여넣는 개정안
첫째는, '일 하는 사람'에 대한 정부의 관점이 경직돼 있어서 현재의 실상과 일치하지 않는데도 이를 고수하고 있다는 문제다. 단적인 예가 이번 고용보험 개정안에서 예술인은 포함시키고 특수고용 노동자는 배제시킨 일이다.
소득이 줄어서 어려운 예술인이 있다면 그 사람은 생계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배달 노동이나 대리운전을 할 수도 있고 방과후교사, 가정방문 교사 등을 할 수도 있다. 이런 일들이 바로 특수고용노동이다. 이런 일들로 소득 부족분을 메우면서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해 오던 사람들이 "직장인들처럼 나도 힘들 때 정부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생각을 한다면, 이럴 때 필요로 하는 도움은 어떤 형태일까?
이번 개정안에서와 같이, 예술인이라는 증명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지난 24개월 중에서 9개월 이상의 소득에 대해서, 고용주 또는 계약 상대방과 반반씩 고용보험료를 납부하고, 이 소득이 자발적이지 않은 이유로 끊겼다는 것을 입증하면, 기존에 받던 금액의 60%를 3~9개월간 받을 수 있는 형태였을까? 과연 이 개정안에 따른 제도로 인해서 '정부가 나를 보호해 준다'는 안정성을 체감하는 예술인이 몇 명이나 될지 의문이다.
'개문발차'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런 데 있지 않다. 여전히 '일 하는 사람'을 한 직장에서 집합근무, 장기근속 중인 사람으로 보는 틀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다. 이 틀에 욱여넣을 수 있는 범위의 예술인에 대해서만 고용보호를 확대한 결과가 이번 개정안인 것이다. 이런 식이라면 특수고용 노동자를 포함해도 결과는 비슷할 것이다. 기존 틀에 어떻게든 끼워맞출 수 있는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추려낼 것이고, 그 틀을 조금만 벗어나도 적용받을 수 없도록 제도가 만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의 본질과 고용보호 체계의 의미
잠깐 생각해 보자. 일의 본질은 무엇일까? 소득을 벌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 지적 자원 등을 투입하는 것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일은 사회와의 연결, 인정, 성장 등의 의미도 갖지만 여기서는 일단 정부 관점에서 보자. 되도록 많은 국민들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는 각자 소득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시장경제가 돌아가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 부족함 없이 공급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경제활동에 참여해서 소득을 벌고 세금을 내는 사람이 많고, 생계 유지를 위해 정부 지원을 받는 사람이 적어야 정부 재정이 유지된다.
이렇게 보면 정부 입장에서는 대기업 공기업 직원이건 프리랜서나 플랫폼 노동자이건 다를 바가 없다.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간 뒤에야 일하겠다면서 경제활동 참여를 유예하는 사람이 많은 것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일 하고 있는' 사람이 많은 편이 낫다. 물론 한 직장에 장기근속하는 사람이 많은 사회가 가장 안정적이겠지만, 어차피 그렇게 될 수 없다면 사람들이 직업을 여러 차례 바꾸더라도, 짧게 짧게 여러 가지 일을 하더라도, 생계는, 자녀의 양육과 삶의 질은 큰 흔들림이 없이 유지되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고용보호 체계다. 즉, 고용보호 체계의 본질은 일 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소득이 끊겼을 때 회복할 수 없을 정도의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안전망을 쳐 주는 것이다. 여기서 '고용'이라는 표현에 집중할 필요가 있을까? 그 보호체계에 들어올 사람의 범위가 '고용'된 사람이냐 아니냐를 따진다면 샛길로 빠지는 셈이다.
애초에 왜 '고용'을 중심으로 보호 체계가 짜였을까? 그냥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가장 분명한 '일 하는' 형태가 공장에서의 임금노동이었기 때문이다. 한 장소에 사람들이 집합해서, 동시에 일을 시작하고 끝내며, 거의 비슷한 업무를 평생동안 지속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만들어진 체계다. 이미 우리는 그런 시대를 벗어나서 다른 형태의 사회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