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 10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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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영(cyyoun)등록 2020.04.22 15:32
금주 10계명
 
처음 술을 마신 것은 고1 때이다. 집에 불화가 있었고 감수성이 예민하던 나는 당시 25도 되는 소주를 처음으로 한 병을 마셨다. 안주는 새우깡이었다. 술을 마시고 모두 토했다. 그때의 속이 아팠던 기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 이후 한번씩 친구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마시곤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자주 술을 마신 것은 아니다.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은 대학교 올라가서다. 신입생이 되니 거의 매일 술을 마실 건수가 생겼다. 축제가 있었고 과 단합회가 있었고 동문회 카니발이 있었다. 특히 전공하는 과가 국문학과라서 그런 지 남자 동기생들은 거의 모두 술을 좋아했다. 수업을 마치고 근처 포장마차나 우리가 막걸리 동산이라 부르는 곳으로 가서 술을 마셨다. 그러다보니 거의 알코올중독 상태가 되었고 아침이면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결심을 하고 저녁이면 술을 마시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알코올 중독의 시작이었지만 그때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알코올 중독은 군대에 가서도 결혼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계속되었다. 그리고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 사업을 하면서도 그치지 않았다. 술이 없이는 내 인생을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술에 취한 인생이 무난할 수는 없었다. 경제적으로나 가정생활이나 건강에 있어서나 그 폐해가 극심했다. 술을 끊어야겠다고 숱하게 결심을 했지만 며칠을 견디지 못했다. 더구나 사업에 실패를 거듭하고, 이리 저리 직장을 옮겨 다니면서 하던 일마다 잘 되지 않으니 술에 의존하는 것이 더욱 심해졌다. 그러다 50살을 넘겼다.
 
그 당시 난 매일 소주 2~3병을 마셔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일 년 365일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술을 끊겠다고 결심한 즈음에는 한번 술을 마시면 2박 3일을 술을 마시기도 했다. 더 이상 술을 마셔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시지 말아야할 이유는 100가지도 넘었다. 술을 마시니 경제적으로 힘이 들었고, 아내와 극심한 불화가 생겼으며, 아이가 술 마시는 나의 전철을 밟고 있었고, 노모가 안타까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 이상 취한 채 남은 인생을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가 알코올 중독이라고 했지만 그때까지 난 알코올 중독을 인정하지 않았다. 의사는 알코올 중독에 걸린 많은 사람은 자신이 알코올중독에 걸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알코올 중독의 극복은 자신이 중독자라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그리고 약을 처방하여 주었다. 3개월 가량 약을 복용하고 난 후에 약을 끊었고 지금 술을 끊은 지 만 5년이 되었다. 중간에 어쩌다 한 번씩 술을 다시 마시게 되었고, 예전의 술 마시는 습관이 다시 생기는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습관이 되기 전에 중단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병원엘 찾아가 약을 처방 받았다. 약을 복용하고 난 뒤 난 다시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 그런 일이 단 한 번 있었다.
 
지금도 술로 인해 많은 사람이 고통 받고 있다. 술은 자신의 인생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것을 보면 과거의 내가 생각이 나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많은 사람이 술을 끊고 싶어 하지만, 실패한다. 결심하고 실패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 시점이 되면 술 끊는 자체를 포기하게 되고 되는 데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 사람을 위해 내가 술을 끊은 경험을 알리고 싶어 이 글을 쓰게 되었다.
 
내가 술을 끊은 과정은 이렇다. 이것을 금주 10계명이라 부르겠다.
 
금주 10계명
 
첫째, 알코올 중독임을 스스로 인정하고 병원에 찾아가서 의사와 상담을 하자.
알코올 중독은 병이다. 하지만 불치병은 아니다. 병이기 때문에 치료를 하면 된다. 치료의 시작은 자신이 알코올중독에 빠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둘째, 극복할 때까지 병원에 다니자.
알코올 중독에 빠진 많은 사람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밤에 잠을 이룰 수 없다. 잠이 오지 않으니 술을 찾게 되는 악순환에 빠진다.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하면 의사가 술을 끊는 약과 동시에 수면제 처방을 하여 준다. 그러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잠을 잘 수가 있다. 술을 마시지 않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술을 마시지 않아도 잠을 잘 수 있는 시점이 온다. 그때 수면제를 끊으면 된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때까지 병원에 계속 다녀야 한다. 알코올 중독은 병이기 때문에 병이 완치될 때까지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병원에 다닌다는 것은 내가 알코올 중독 치료를 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다. 나의 경우 3개월 정도 병원에 다녔다. 그러다보니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셋째, 자신의 굳은 결심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약이라도, 아무리 좋은 의사의 치료라도 자신의 의지보다 중요하지 않다. 병원에서의 치료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술을 끊겠다는 강한 의지이다. 강한 의지만으로도 부족하기 때문에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여야 한다. 그리고 끊을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중요하다.
 
넷째, 술 마시는 시간에 할 다른 것을 찾는 것이 좋다.
술을 마시는 시간이 저녁이라면 그 시간에 대체할 무언가를 만들어야 한다. 나의 경우는 카페에서 글을 썼다. 글쓰기는 어릴 때부터 좋아했다. 하지만 술을 마신다고 글을 쓸 시간이 없었다. 보통 저녁 6시 정도부터 술을 마셨는데, 술 끊기로 결심하고는 카페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글을 썼다. 술을 끊고자 결심했다면 술 때문에 하지 못했던 자신이 평소 하고 싶었던 것을 하면 좋다. 알코올 중독자는 습관적으로 술을 마시는 시간이 있다. 그 시간에 술을 대신할 무엇이 있어야 한다. 독서도 좋고 악기도 좋고 기타 다른 취미활동도 좋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으로 대체하자. 그리고 술집을 대신할 장소를 찾아야 한다. 독서를 한다면 도서관이나 서점을 가야하고, 운동을 하려면 체육관이나 헬스장, 운동장을 찾으면 된다. 나의 경우 그때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여 책까지 내게 되었다. 5년이 지난 지금 8권의 책을 출간했다.
 
다섯째, 술을 마시자는 권유를 거절하자.
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해질 때쯤이면 술 생각이 난다. 자신이 술친구에게 전화를 하거나, 술친구가 술을 마시자는 전화를 해온다. 예전 나는 자다가도 술 마시자는 전화가 오면 벌떡 일어나 술을 마시러 나가곤 했다. 하지만 술을 끊기로 결심하고 난 이후, 술 마시자는 전화가 오면 거절했다. 쉽지는 않지만 꼭 해야 한다. 몇 번 거절을 하다보면 술 마시자는 전화가 오지 않는다.
 
여섯째, 술자리에는 가지 마라.
술을 끊고자 하는 사람이 술자리에 가면 십중팔구 술을 마시게 된다.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면 참기가 어렵다. 또한 술자리는 자연스레 술을 마시는 분위기를 만든다. 술을 끊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술자리에 가는 것은 계곡 위에서 외줄타기하는 것과 같다. 또한,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는데 자신이 술을 안 마시고 있는 것은 그 술 분위기를 깨는 것이다. 다른 술 마시는 사람에게도 좋지 않다. 술을 끊고자 결심했다면 아예 술자리에는 참석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업상 어쩔 수 없이 술자리에 가는 경우가 생긴다면, 처음부터 자신은 술을 끊었다고 선포하라. 그러면 더 이상 술을 권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술을 권한다면 차라리 그 사업은 포기하는 것이 더 낫다. 알코올 중독 극복보다 더 가치 있는 사업은 없다고 생각하라.
 
일곱째,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술친구들을 잃게 될까봐 우려하지 마라.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단절될 관계라면 단절되는 것이 차라리 낫다. 과거 술을 마실 때에는 주변에 술에 취한 사람으로 가득했다. 유유상종이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매개로 만난 사람들이었고, 술을 마시지 않으니 그들을 만나게 되지 않았다.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 관계 단절은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다보니 그런 사람들이 빠진 자리에 다른 사람들로 채워졌다. 취한 사람이 아니라 맨 정신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제서야 이제껏 나는 취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여덟째, 술을 마시지 않는 시간을 체크하라.
금주를 시작하고 난 뒤 시간을 체크했다. 금주 하루가 지나면 24시간, 2일이 지나면 48시간 하는 식으로. 그러다 100시간이 지났고 그 뒤에는 일자를 체크했다. 금주 5일, 금주 7일, 금주 10일, 금주 15일. 금주 100일. 그 다음엔 금주 3개월, 4개월. 그 다음엔 금주 1년, 금주 2년. 그렇게 해서 금주 만 5년이 되었다.
 
아홉째, 중간에 한번쯤 술을 입에 대었다고 해도 포기하지 마라.
알코올 중독은 병이다. 병은 재발할 수 있다. 재발한 병을 방치하면 더 심각한 결과를 맞게 된다. 중간에 결심이 헝클어져도 포기하지 말고 다시 병원을 찾아가서 새로 시작하라. 나도 중간에 결심이 깨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예전처럼 중독 상황으로 되돌아가진 않았다. 병원을 찾아가 다시 상담을 받고 약을 먹으면서 다시 시도를 하여 완전한 금주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열 번째, 끊임없이 마인드 컨트롤을 하라. 술을 끊게 하는 것은 결국은 마음의 문제다. 자신은 술을 끊은 사람이라는 마인드를 가지고 어떤 경우라도 술을 단 한 방울도 입에 넣지 않겠다고 끊임없이 생각하라. 술을 끊은 시점이라도 한번씩 술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고비를 잘 넘겨야 한다.
 
금주는 인생의 변곡점이 된다. 술을 마실 때의 나와 끊었을 때의 나를 비교하면 너무나 달라져있다.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졌으며, 가족이 좋아한다. 지금 난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행복하다. 술 때문에 힘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당장 병원부터 찾아가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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