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가 마을 할슈타트.
막걸리학교
바트이슐 정거장에 내려 기차로 갈아타고 다시 할슈타트로 향했다. 기차는 버스보다 훨씬 더 낭만적이다. 기차의 창이 넓고, 지나다닐 수 있는 통로가 있고 또 일행들과 마주 앉을 수 있으니 그럴 것이다.
기차는 우리를 소박한 간이역에 내려주었다. 그곳은 호숫가였고, 선착장이 있었다. 할슈타트로 가려면 다시 배로 갈아타야 한다. 운송 수단이 달라질 때마다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 같았다. 떠나왔던 곳을 아주 잊어버리라는 주문 같기도 했다.
배는 물살도 일지 않은 호수 위를 썰매처럼 밀려갔다. 호수 위로 건너 산 그림자가 데칼코마니처럼 대칭을 이루고 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세상, 어떤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세상으로 간다. 때로 동행자들에게 여정을 맡기고 무작정 따라나서는 길은 그래서 더 신비롭다.
배가 할슈타트 마을의 선착장에 가닿았다. 집들이 물가에서부터 비탈진 산 위까지 타고 올라있다. 사진을 찍으면 그대로 그림엽서가 되는 곳이다. 마을은 길지도 깊지도 않았다. 수평으로 뻗은 호수와 수직으로 솟은 산, 그리고 그 사이에 사람들이 깃들어 살며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어떤 부족함도 없을 것 같은 편안하고 아름다운 동네다.
마을 안쪽에 소금광산으로 오르는 모노레일이 있었다. 7천 년 전부터 소금을 캤던 광산인데, 인간이 파고 들어간 터널의 길이가 65㎞나 되고, 지금도 채굴이 되고 있고 관광객도 받고 있다고 한다.
소금은 작은 금이다. 소금(salt)을 임금으로 주었던 시절이 있어서 월급, 샐러리(salary)라는 말도 생겨났다고 하니 그렇게 해석할 만하다. 소금 광산의 할슈타트와 소금의 성 잘츠부르크가 소금 때문에 영화로웠던 시절이 있었으리라 짐작되었다.
할슈타트 마을 골목길을 걷다가, 잘츠부르크 정류장에서 만난 한국 여성 둘을 다시 만났다. 이번에는 좀 긴 대화를 나눴다. 둘은 여행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사이였다. 한 여성은 대기업에서 5년 근무하다가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사표를 내고, 새로운 삶을 구상하기 위해 한 달 일정으로 유럽을 여행중이라고 했다.
할슈타트에 대한 인상을 물었더니, 그녀가 말한다. "이 마을에 너의 마음을 다 줘야 해! 그리움이 어디에 사냐고 묻는다면, 이 마을에 산다고 말해줘!" 그런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할슈타트에서 잘츠부르크로 돌아왔다. 찾아갔던 길을 되짚어왔지만, 오던 길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억도 없다. 할슈타트의 풍경이 가득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왜 여성들이 그곳을 동경하는지, 그곳에서 드라마와 영화를 찍는지 이해가 되었다. 내게는 붙들 수 없는 향기 같고, 만질 수 없는 풍경 같고, 소유할 수 없는 판타지 같았다. 화려한 풍경이 나를 안타깝게 만들 뿐 위로되지 않았다.
수도원 지하에서 파는 맥주라니
다시 돌아온 잘츠부르크가 이제는 평범해보였다. 밤이 되었고, 마음도 훨씬 더 차분해졌다. 여행지의 밤은 술 한 잔을 곁들여야 한다. 이때 술을 마다고 숙소로 들어가는 사람은 내일의 여행을 꿈꾸는 사람일 테고, 술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람은 오늘의 여행을 즐기려는 사람일 것이다. 오늘을 즐기려면, 체력이 좋아야 하고 술도 좀 마실 줄 알아야 한다.
여행자로서 그 마을의 주점에 들고 싶은 또 다른 이유는, 그 마을의 소란과 흥겨움을 공유하고 싶어서다. 그런데 잘츠부르크에는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넓다는 맥주펍이 있고, 그 펍에서 직접에 맥주를 만들어 파는데, 그곳이 수도원 지하라고 했다.
수도원과 맥주의 조화라니! 벨기에 수도원 맥주가 한국에도 들어와 팔리고 있기는 하지만, 종교와 술은 서로 양극단에 있는 존재인데, 어떻게 연대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내게는 그림 같은 할슈타트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내가 소유할 수 있는 술이 있어 매력적인 관광지였다.
잘츠부르크 시내를 가로지르는 강물을 따라 걷다가 비탈진 언덕에 이르러 길을 잃고 물어물어 찾아간 곳에 관공서 같기도 한 3층 건물이 있었다. 건물 벽에 아우구스티노 브로이(Augustina Bräu) 상호가 있었다. 뒷문 쪽일까? 입구는 좁았다. 앞선 사람을 따라 물살에 떠밀리듯이 우리는 계단을 타고 지하로 빨려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