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망자 집단 매장 준비되는 뉴욕 하트섬미국 뉴욕 시 브롱크스 인근 해역에 있는 하트 섬에서 7일(현지시간) 굴착기가 구덩이를 파면서 흙더미를 덤프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뉴욕 시는 이곳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들의 임시 매장지로 사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연합뉴스/EPA
이틀 전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오늘 오후 12:20 우리 오빠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동안 기도해 줘서 고맙고 좋은 데 가시라고 계속 기도 부탁드립니다.
숨이 턱 막혔다. 잠시 멍해졌다. 정신을 차리고 한 자 한 자 다시 읽어도 같은 내용이다. 돌아가셨단다. 정오 뉴스를 보며 한숨 쉬던 그 시각에. 사과 하나 씻어 한 입 가득 베어 물던 그 시간에 말이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건강하던 분이.
가까이에서 벌어진 비극
그는 내가 사는 동네의 시의원이었다. 궁금한 게 있어 전화하면 늘 시원한 대답을 주셨다. 항상 바쁘고 활기찼다. 길가에 있는 그의 사무실엔 사람이 북적였고 전화벨은 쉴 새 없이 울렸다. 어버이날이나 추수감사절 같은 날엔 동네잔치를 해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동네 노인들은 음식과 음악을 제공받았고 집에 갈 땐 두 손 가득 선물을 들고 갔다. 어느 날 내 음악 취향이 60~70대 그들 취향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아침 일찍 가 음식을 서빙하고 의자를 정리하는 일은 좀 귀찮지만 보람찬 봉사였다. 모두 그의 덕이었다.
그가 병원에 있다는 소식은 일주일 전 지역 신문에서 알았다. 사모님께 조심스레 안부 문자를 보냈다.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몇 시간 후 걸려온 전화기 너머엔 평상시 밝았던 하이톤과는 다른 목소리가 있었다.
"나는 괜찮아요. 병원에 있는 사람이 고생이지."
그녀도 집에서 자가 격리 중이었다. 남편을 입원시키고 검사를 받았는데 양성이 나왔단다. 남편은 병원에서, 자신은 아무도 없는 빈집에서 코로나와 싸우는 중이었다.
일주일 전 회의에 갔는데 한 사람이 기침을 많이 하더란다. 이제야 마스크를 좀 찾아 쓰지, 당시엔 아무도 쓰지 않던 때였다. 찜찜했지만 회의를 마치고 평상시처럼 일정을 마무리했다. 그러다 기침하던 그 사람이 코로나로 병원에 입원한 걸 알고 자신도 병원에 갔다. 몸 상태가 의심스러웠을 때였다. 병원에선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며 돌려보냈다. 아내는 며칠 사이 상태가 부쩍 나빠진 남편을 차에 태우고 다시 병원으로 갔다. 걸어서 검진을 받으러 왔던 때와는 현저히 다른 상태가 되어 바로 입원을 한 것이다.
"지금 산소호흡기 쓰고 누워 있어요."
조심스레 상태를 묻는 내게 그녀가 힘없이 대답한다. 갑자기 늘어난 환자로 산소호흡기가 부족하단 얘기를 듣던 때였다. 뉴욕주에 필요한 건 3만 개인데, 4천 개만 보내겠다는 정부에게 뉴욕 주지사가 "직접 2만 6천 명의 죽을 사람을 정하라"고 했던 그 산소호흡기다. 그런 귀한 기구를 사용하고 있다는 얘기에 난 다행이다 싶었다. 기계의 도움을 받아 얼른 회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내가 잘 몰랐다. 산소호흡기는 자가 호흡이 힘든 이의 호흡을 도와주는 기구였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곧 털고 나오시겠다 생각했다. 너무 무지했다.
60대 중반이면 아직 한참인 나이 아닌가.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에 나이보다 더 젊어 보였다. 다른 주에서 의사로 일하는 아들이 매일 전화로 챙긴다니 병원에서 더 신경 써주겠다 믿었다. 언제나 활력 넘쳤던 그의 모습을 생각하면 병원에 누워있는 일상은 하루도 못 견딜 것 같았다. 그래서 자리를 박차고 곧 뚜벅뚜벅 걸어 나오시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내 예상은 다 빗나갔다. 어떻게, 저렇게 건강하던 분이 쉽게 가실 수 있지? 책상 위에 어지럽게 펼쳐진 서류처럼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은 분인데, 어떻게 허무하게 이럴 수 있지? 나도 며칠간 우울증에 빠졌다.
뉴욕의 수많은 죽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