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꽃 피네,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봄철에 떠난 북한산 등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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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상(tspark21)등록 2020.04.07 10:43
 

북한산 둘레길에 활짝 핀 벚꽃 서울에서 벚꽃 보러 간다면 대개 여의도 벚꽃 축제를 떠올린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때문에 축제는 취소되었다. 그런데 운이 좋게도 북한산 둘레길에서 만개한 벚꽃을 제대로 보았다. 2년 전 ‘부산의 삼락공원’에서 본 벚꽃의 대장관을 다시 본 듯싶다. ⓒ 박태상

 
실로 8개월 만에 산에 올랐다. 불금부터 주말을 한 달째 집콕하자니 너무 답답했다. 그제 토요일은 날씨가 너무 좋았다. 가을 날씨처럼 청명한 하늘에 구름도 많지가 않았다. 운동량도 부족하지만, 방안에서 컴퓨터에 앉아있거나, 거실에서 TV로 예능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영화채널에서 영화를 골라보는 것도 지겨웠다.
 
재미있게 시청하던 박서준, 김다미 주연의 바닥 인생이 분투 끝에 복수하고 성공하는, 웹툰의 드라마화 이야기 <이태원 클라쓰>도 16부로 끝나버렸다. 시청률 35%까지 치솟았던 <미스터트롯>도 임영웅, 영탁이라는 걸출한 신인을 배출하고 끝났다. 특히 시간 보내기 좋은 류현진이 에이스로 나오는 MLB 프로야구도 몇 달째 안 하고, 손흥민이 골잡이로 쏜살같이 달리는 장면도 볼 수 없으니 우울증에 걸릴듯하다.
 
토요일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백팩에 김밥 한줄, 작은 우유팩 한 개, 오이 씻은 것 한 개, 건빵 한 봉지, 삼다수 한 병, 오렌지 한 개를 비닐봉지에 싸서 넣고 하얀 장갑에 검은 마스크를 두 개나 쑤셔 넣고 햇볕에 3개월째 말리고 있던 아이더 등산화를 챙겨 신고 길을 나섰다. 얼마 전에 야구모자도 브랜드상품으로 하나 구매했다.

  

북한산 계곡의 개나리와 진달래 강우량이 적고 가물어서 그런지 계곡의 물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계곡 양옆의 개나리와 진달래가 색채적 조화를 이루어 봄의 운치를 더해주었다. ⓒ 박태상

 
더울 것으로 생각해 봄 등산복 점퍼를 입었다 다시 벗고, 약간 두터운 춘추용 등산티만을 꺼내입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밖은 바람이 불어 제법 쌀쌀했다. 어느 날부터 엘리베이터에 비치되어있는 손세척제가 눈에 띄어 기분이 상했지만, 1층 현관문을 벗어나서 햇살 비치는 길거리로 나서니 마음속에 얹혀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듯 상쾌했다.
 
씩씩한 발걸음으로 길 건너편 현대 아이파크 아파트 단지를 가로질러 한참을 내려갔다. 아파트 단지에는 벚꽃과 목련이 한창이다. 아이들은 아파트 단지내 그네 틀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몇 명의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도 생소하고 낯설다. 벚꽃은 만개했으나 목련은 아직 봉우리가 확 터지지 않아서 새악시 볼처럼 부끄럽게 몽그라져 있다. 아이들이 크게 소리치면 큰 목련꽃 봉우리가 뭉큼 떨어질 듯 느껴졌다.
 
 

북한산 청수장 코스의 등산 진입로 등산로의 초입부터 개나리가 만개하여 등산객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다. 예년과 다른 것은 하산하는 등산객들이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산에 오를 때 고바우에서 호흡이 거칠고 숨쉬기도 힘든데도 불구하고 대다수 사람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한국인들의 방역을 위한 위생개념은 철저하다. ⓒ 박태상

  
 
버스정류장에서 손님이 거의 없는 버스에 올라타서 북한산 쪽으로 향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무서운 전염병은 인간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 중 하나인 '소통'을 가로 막아섰다. 가족끼리 외식을 한 지도 석 달이 넘는다. 동창회 등 각종 모임도 취소되었다. 사실 만나자는 제자들의 카톡 문자도 사라진 지 오래되었다. 오프라인 대학강의도 5월 초까지 취소되었다.
 
심지어 헬스장이나 골프 연습장으로 달려가서 하던 운동마저 끊었다. 그러니 북한산 등반은 대단히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래도 인터넷몰을 통해 봄신상 트레이닝복과 등산복, 그리고 레깅스를 몇 벌이나 구매했다. 길을 떠나 여행을 가려고 하는 마음은 내부에서부터 큰 울림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노적봉 대성문과 보국문 사이에서 북한산의 최고봉들인 노적봉, 인수봉, 용암봉 등이 보인다. 북한산은 부아악(負兒岳), 화산(華山), 화악, 삼각산 등으로도 불리었다. 삼국시대엔 부아악이라 불렀는데, 인수봉 뒤에 튀어나온 바위가 마치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과 같다 하여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 박태상


 
버스 종점에서 내려서 등산로 입구까지 15분여를 걸었다. 버스나 길거리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으나 등산로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등산로 입구 근처의 자가용 주차장에는 만차라서 대기하는 줄이 꽤 되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라는 위생개념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자연과 꽃의 유혹을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북한산은 부아악(負兒岳), 화산(華山), 화악, 삼각산 등으로도 불리었다. 삼국시대엔 부아악이라 불렀는데, 인수봉 뒤에 튀어나온 바위가 마치 어머니가 어린애를 업고 있는 형상과 같다 하여 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삼각산(三角山)은 인수봉, 백운대(836m),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우뚝 솟아 세 개의 뿔과 같이 생겨 붙여진 이름으로써 고려와 조선 시대에 일반화 된 이름이다.

임·병 양란의 외침을 겪은 후 북한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성을 쌓고 외침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숙종 37년(1711년) 토성을 석성(북한산성)으로 고쳐 지었다. 축성 당시 3개의 성문(대서문, 동북문, 북문)과 10개의 암문(보국문, 시구문 등), 장수의 지휘소인 3개의 장대(동장대, 남장대, 북장대), 행궁, 승병을 위한 11개 사찰, 99개소의 우물 등의 시설이 설치되었다. 영조 21년(1745년) 북한산성 축성 당시 팔도도청섭이었던 승려 성능이 산성 축성에 관한 기록을 편집하여 <북한지(北漢誌)>라는 역사지리서를 지었는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남아있다.
 
  

북한산의 진달래 능선 수유리 코스와 정릉 코스 사이에 진달래 능선이 있어 봄만 되면 진달래가 도처에 아름답게 피어 입춘을 등산객들에게 알려준다. 원래 ‘진달래 능선’이라고 하면 우이동에서 대동문까지 가는 능선에 진달래가 많이 피어 있어 생겨진 지명이다. ⓒ 박태상

 
등산 온 군중들은 혼자서 걷거나 가족 단위가 많았다. 예년처럼 직장 단위나 산악회 단위의 등산객은 많지가 않았다. 특히 모녀가 운동 삼아 나선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운동할 곳도, 운동하는 현명한 방법을 강구하기도 쉽지 않으니 뱃살 빼는 것이 급선무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비가 온 지가 상당히 되었고 가물어서 그런지,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는 세차게 들리지가 않았다. 하지만 계곡 양옆에는 만개한 노란빛의 개나리와 갓 피어난 연분홍빛의 진달래가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었다. 20 ~ 30대 여성들은 스마트폰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담느라 분주했다.
 

영취사의 ‘목련꽃’ 목련은 ‘신이(辛夷)’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꽃은 4월 중순부터 잎이 나기 전에 피며, 꽃잎은 6∼9개이며 긴 타원형이고 백색으로 향기가 있다. 사실 ‘봄의 보석’이라고 하는 목련화는 가곡으로 유명하다. 김동진 작사, 작곡의 가곡으로 “오오 내사랑 목련화야 그대 사랑 목련화야 희고 순결한 그대모습 봄에 온 가인과 같고”의 가사가 수려해서 대중들이 좋아한다. 또 다른 가곡으로는 박목월시, 김순애작곡의 <사월의 노래>가 있다.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의 가사도 매력적이고 낭만적이다. 대중가요로는 양희은의 <하얀 목련>(김희갑 작곡)이 인기가 많았다. ⓒ 박태상

  
 
푸른 소나무의 담백함과 개나리, 진달래의 화려한 색상이 파란 하늘과 그렇게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룰 줄은 전혀 몰랐다. 계곡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내리는 푸른 물(淸水)마저 시원하게 소리치며 흘러내렸다면 금상첨화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송창식이 불렀던 서정주 작시의 「푸르른 날」의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노랫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사실 서정주의 작품은 가을의 청명한 하늘을 노래한 시다.
 
산 아래서 노란 개나리와 하얀 벚꽃을 보고 출발했는데, 산중턱 진달래 능선에서 선홍빛의 진달래를 바라보니 김소월이 떠올랐다. 「산유화」를 읊으면 가슴이 쌔(?)하게 되고 눈물이 맺히게 된다. 아마 「초혼」이 동시에 환기되는 까닭이다. 「산유화」는 1924년 10월 『영대』 3호에 발표된 시다. 「진달래꽃」과 더불어 김소월을 국민시인 또는 민요시인이라고 닉네임을 붙여준 대표 작품이다.
 
 

대성문 뒤쪽에서 바라본 ‘피안의 모습’ 북한산성의 동남쪽 성문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란의 외침을 겪은 후 북한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해 성을 쌓고 외침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숙종 37년(1711년) 토성을 석성(북한산성)으로 고쳐 지었다. 당시 완성한 성곽의 길이는 7,630보, 즉 21리 60보이었다. 최근인 2017년부터 2018년 2년 동안 대성문을 다시 지었다. ⓒ 박태상

   
 
「산유화」 자체가 대체로 인간 삶의 '소멸과 생성'의 법리를 말하면서 근원적 고독을 노래했다고 평론가들은 비평한다. 벚꽃이나 개나리는 길 바로 옆에서 피기 때문에 사진에 담기 쉽지만, 진달래꽃은 산 중턱의 등산로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는 '저만치'에서 핀다. 따라서 줌을 땡겨야만 원하는 화면을 잡을 수 있다. 진달래꽃은 사랑하는 연인에 비유되기도 한다. 사랑할수록 다가서면 뒤로 멀리 물러서 뒷걸음쳐 버리는 속성을 지니는 '밀당의 고수'인 꽃이기 때문이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 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김소월, <산유화> 일부)
 

대성문 앞에서의 필자 대성문은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성문으로 1711년(숙종 37년)에 지어졌다. 형제봉 능선을 타고 서울의 북쪽 평창동과 정릉동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문이다. 대성문을 지나 보국문 ? 대동문 ? 동장대 ? 용암문을 통과하면 만경대와 백운대 사이에 있는 ‘위문’에 이르게 된다. 위문에서 백운대를 지나 원효봉 가는 길에 ‘북문’이 있다. ⓒ 박태상

 

전세계에 팬데믹(pandemic)을 유발시킨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소통기회를 잃어버리고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는 서민층이 바로 산유화, 진달래꽃으로 느껴진다. 공공의 돌봄으로부터 '저만치' 서있기 때문이다. 북한산을 오르내리면서 접한 진달래꽃이 바로 '자기 자신 존재 그 자체'요, '저만치' 서 있는 어려운 사람들로 생각되었다. 인간의 목숨은 여리디 여린 반면, 무작정 살아가야만 하는, 생명의 인연의 끈은 질기고도 모질기 때문이다.
 
김소월의 <산유화>를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인 '대성문'이 저만치에 희미하게 보였다. 정상에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는 군중들의 소리도 가깝게 다가온다. 진달래꽃의 선연홍빛이 아련한 이별의 상징이 아닌, 정열의 붉은 빛으로 여겨지게끔 코로나 바이러스의 치료제가 빨리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모처럼 운동하고 내려오는 하산의 발길이 가뿐했다.
 
 

북한산 등산객의 모습 직장 단위의 등산객으로 보이는데, 40여 명이 단체로 등반을 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정부지침인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여 앞사람과 1m 간격을 두고 마스크를 쓰고 침묵 속에 트레킹을 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북한산은 경관이 수려하고 교통이 편리(우이 ? 신설 경전철 개통)하여 수도권 등산객들의 안식처로 사랑받고 있으며 일 년에 약 천만 명이 등반을 하고 있는 명산이다. ⓒ 박태상

 
예년 봄과 다른 풍경은 등산객들의 85%가 마스크를 쓰고 있고, 사회적 거리인 1m 이상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슬픈 사실이었다. 숨이 가빠서 마스크를 입 근처로 내리고 있다가도 반대편에서 하산하는 등산객을 만나면 급하게 마스크를 코까지 올리는 진풍경이 연속되었다. 진정 신은 인간을 시험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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