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고기 건강요리대회가 동북아시품협동조합 후원아래 1회대회가 열렸다. 압착콩기름과 콩단백고기가 김현동과 동북아시품협동조합이 가장 공을 들이는 사업이다.
김현동제공
어달해변에서 한시간 가까이 바닷바람을 맞으며 새해를 구상하니 볼이 얼얼하다. 어깨를 움츠리며 그는 발길을 돌렸다. 우정마을에서는 겨울이면 영하 40도가 보통이었다. 의연이와 산하는 그 추위를 견뎌내고 눈길을 헤치며 20km 떨어져 있는 우수리스크로 등하교를 했다.
지난 해 가을 결혼한 첫째 딸은 신혼 재미가 쏠쏠하겠지만 아내와 산하는 지금 영하 40도 추위에 웅크리고 있을 텐데 걱정이 된다.
2020년 3월이면 김현동이 2010년에 받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10년 입국금지조치가 끝난다. 그는 이제 연해주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으리라. 그래서 퀘퀘하고 군내 가득한 홀아비 신세를 떨쳐내리라.
동북 3성과 연해주, 남북한을 아우르는 동북아 코리안의 연대와 우정도 좋고, 콩단백으로 지구를 살리는 장대한 꿈도 좋지만 2020년에는 김현동 가족의 이산이 끝났으면 좋겠다.
2019년 11월16일 의연이의 결혼이후 김현동의 감동적인 인사말 |
지난 11월 16일 토요일 저녁 큰 딸 의연이의 결혼식을 치루었다. 내 아이들 이름은 "의연한 산하"로 할 것이라는 소위 386세대 운동권 부모의 치기 어린 의욕 하에 첫딸로 태어나고 자라난 큰 딸 의연이는 한중 통번역사 프리랜서 일을 하고 있다. 사위는 함께 중국어 공부를 하면서 만났고 역시 그 분야의 일을 하고 있다.
의연이는 88년 부천에서 노동조합 시작할 무렵 태어났고, 중국 연변에서 소학교를 다녔고, 이후 러시아 연해주 우수리스크에서 쉬꼴라(고등학교)를 다녔다. 대학부터는 알아서 공부했고 서 신랑도 만났다. 현지의 삶을 함께하며 고군분투했던 첫 딸의 결혼이어서 우리 가족에겐 더욱 의미가 깊었다.
러시아에서 둘째 딸 산하와 애들 엄마가 넘어와서 우리 가족은 4년 만에 합체가 되는 날이기도 했다. 특히 둘째는 언니의 결혼식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하는 듯 뛰었다. 딸이 둘 인게 참 다행이고 둘의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연해주 때 삶을 지켜 보아 주신 '연해주 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추진위원회 ' 위원장으로 우리 가족과 인연을 맺어 주시고, 지금도 동북아 시민사회 현장에서 청년으로 뛰고 계신 동아시아펑화회의 이부영 위원장님이 감사하게도 주례를 맡아 주셨다. 신랑신부가 한 경험과 공부로 이후 한반도와 대륙의 인연을 만들어 가는데 역할을 할 것을 요청하는 귀한 격려 말씀을 해 주셨다 .
항상 큰딸의 전 성장 과정을 지켜보며 고무 격려하며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준 아이들의 할머니. 큰 아빠 , 고모. 이모 이모부 가족 등 친지 여러분들.
의연이 엄마 아빠의 전사를 통 털어 알고 엄마 아빠 결혼과 의연이 탄생의 과정을 남김없이 지켜 보았던 중고등 동창들, 1981년 대학 입학과 함께 시대를 함께 저항했던 성대 동문과 휴머니스트 선후배들, 강제징집생활을 함께 하며 인연을 맺었던 윤병기 형.
의연이가 유치원 시절 '철의 노동자'를 따라 부르던 때를 기억하는, 부천에서 작은 공장 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 부천지역금속노조를 만들고 함께 했던 김일섭 위원장님등 당시 조합원 동지들
소학교 1년때 부터 의연이의 평생 직업인 중국어를 터주고, 아낌없는 동포의 사랑을 보내 주었던 연변의 동포들. 조선족사기 피해자 협회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의 북한식량난을 지원하며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윤정삼, 배동걸, 유미령, 고 유연산 작가의 형수님, 허명철 교수를 대신해 참석한 훌쩍 커버린 대학원생 설화. 그리고 홍매선생과 이이들. 그리고 병석에 계시지만 축하를 보내 주신 이영숙 회장님과 훈춘의 오회장님 강봉화.
그리고 의연이의 대학전공을 러시아어로 선택할 기회를 주었던 연해주 우수리스크 쉬꼴라(중고등) 시절. 우리 가족은 고려인 농촌 마을 만들기를 하면서 우정마을에서 보금자리를 틀었고 지금도 우리 가족과 일상을 함께 하는 러시아 연해주동북아평화기금의 고똘랴, 니끼다, 강마리나....
의연이가 앞으로 함께하며 기여하길 기대하는 순콩사회적협동조합과 동북아식품협동조합, 바리의꿈. 동해협동사회경제 네트워크 등 사회적경제로 동북아 공동체 미래를 꿈꾸는 사회적경제의 친구들..
이런 의연과 다양한 인연을 맺어온 분들의 진정 어린 축하 속에 결혼식은 치루어졌다. 감사하고 또 감사할 일이다.
나와 처와 산하는 뒷풀이에서 '의연한 산하' 노래로 감사를 대신했고, 동북아 각지에서 살아 오면서 맺은 인연들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드렸다. 다시 한번 축하 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리는 바이다. |
프로필
학력
• 1981 성대 사회학과 입학 휴머니스트 가입
• 1983 3월 30일 강제 연행 후 4월 2일 입대 . 28사단 보안대에서 녹화 공작
• 1985년 7월 전역
부천지역 노동운동
• 1985 8월 부천 노동 현장 입사
• 1986 4월 집시 및 폭력으로 구속 (사업장 근로기준법 투쟁)
• 1986 9월 출소
• 1987 7월 부천지역금속노동조합 결성 (초대 사무국장)
• 1996년 40일 동안 중국 해남 여행 북경 광주 내몽고 연변 백두산
중국 동북3성
• 1996년 1월 - 1999년 1월 중국 연변으로 가족 이주 ,
10월부터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대외협력국장.
중국조선족사기피해자, 북한식량난민 지원 사업
중국 조선족기초자료집 작성
• 1999년 1월 중국조선족상조회 결성 도중 추방
( 공식적으로는 불법 월경자 대량 장기적 지원, 국경법 40조 41조
• 1999년 7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내 재외동포 사업본부와 재외동포센터 신설 ( 사무국장)
• 2002년 조선족 사기피해자 4000명 특별 입국
• 이후 경기도교육청 협력하며 중국민족 교육 지원사업 등
러시아 연해주
• 1999년 5월 연해주 고려인 이주실태조사
• 2001년 연해주동북아평화기금 설립 ( 이후 이사, 이사장등)
연해주 고려인 동포 러시아 국적회복, 긴급구호, 한글교육센터 등 활동.
• 2004년 4월 연해주 가족이주 - 2010년
우정마을 고향마을 등 연해주 6개 고려인 농업 정착 마을 만들기
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 ( 현재 고려인 문화센터)
• 2005년 - 2010 바리의꿈 설립, 프림콩 농장 인수
고려인 정착사업으로 콩 농사 및 가공 사업 시작, 청국장, 메주, 된장, 간장 ...
• 2010년 러시아 입국 거부.
• 2010-현재 가족이 남아 한글학교 로지나서당, 바리바리생협, 콩기름 생산공장 등 운영하여 기금활동 지속.
강원도 동해
• 2010년 11월 동해 정착, 바리의꿈 동해 이전
• 2013년 바리의 꿈 협동조합 ( 두유, 두부)
• 2012년 동북아포럼 (환동해 코리아 시민단체) 결성 참여 ( 2회 대표),
2019년까지 매년 동북아한민족유소년축구대회 개최 ( 연변, 연해주, 일본 코이안 초등생.)
• 2016년 연해주 콩 압착콩기름 인력양성 및 시험생산
• 2015년 동해사회적기업협의회 창립 (대표)
• 2018년 3월 동북아NonGMO압착가공사회적협동조합 발기( 발기대표)
10월 순콩사회적협동조합 결성(이사)
• 2018년 10월 동북아식품협동조합 결성 (이사 및 경영대표 /콩기름 콩단백 생산공장 생산공장)
• 2019년 연해주와 동해에 각 콩 1000톤 압착 가공 시스템 구축
못다 한 이야기
1. 연해주동북아 평화기금과 발맞추기 위해서 2005년 국내에 '바리의 꿈'이 세워집니다. '바리의 꿈'은 국내에서 연해주생산물을 한국시장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고 이후 사회적기업으로 다시 동해시에서 '동북아식품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산파역할을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http://www.baridream.co.kr/shop/main/index.php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2. 김현동 선생은 활동과 개인사를 늘 페이스북에 잔잔하게 기록합니다. 그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https://www.facebook.com/kimhyundong62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