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연봉보다 휴가 쟁취, 독일 노조 시위로부터 배울수 있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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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영(doltrio)등록 2021.05.17 09:59
높은 연봉보다 휴가 쟁취, 독일 노조 시위로부터 배울수 있는 것들

독일 회사는 한국인들에게 잘 알려져있듯이 소위 "워라벨(work and life balance, 일과 삶의 균형)"이 잘 맞춰져 있고, 직원의 복지가 정말 잘 되어있다. 오늘은 독일 회사 문화 중 하나로 독일회사의 노동 조합 즉 노조에 대해 알아보자.
 
독일은 노동 조합, 줄여 노조를 Gewerkschaft 라고 한다. 이들의 목적은 임금인상, 근무시간 단축, 그리고 근무 환경 개선이다. 독일 회사원들의 휴가수는 대부분 30개. 연차가 쌓이면 휴가가 늘어나는 한국 기업과는 달리 신입직원도, 20년된 경력 직원도 동등하게 30개의 휴가를 부여받는다.
 
대부분 독일 자동차 회사와 같은 대기업의 경우는 아이가 있는 경우 추가로 5일의 휴가를 받을수 있어 35개까지 늘어나기도 한다.
 
그리고 아프면 본인의 휴가를 사용하지 않고 3일까지 쉴수 있는데 3일 이상 쉬어야할 경우는 의사 진단서가 있으면 본인 휴가 사용 없이 몇 개월씩 쉴수 있다.
이렇게 한국인이 보기에, 독일은 충분히 근무 환경이 좋은것처럼 보이지만 독일인들도 더 나은 근무 환경을 위해 항상 투쟁하고 파업을 하고있다.
 
독일 파업은 한국 파업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실제로 무시무시하다. 독일은 거의 매년 버스 지하철 파업을 하는데 작년에는 버스가 하루종일 안 다닐정도로 대체 근무 인력 없이 파업한 적도 있었다.
 
독일 루프트한자 항공사는 한국인들게도 익숙할 정도로 파업이 잦은데, 미리 항공편을 예매한 사람들을 신경도 안 쓴채, 독일 항공사 파업은 그만큼 파장이 크다.
특히 2019년에는 독일 여러 공항에서 공항보원요원들이 단체 파업을 해 승객들이 장기간 공항 이용에 불편을 겪었던 적도 있었다.
 

독일 노동조합의 3가지 역할 ⓒ 독일 노조 협회

 
독일 회사에서는 상사가 직원을 해고할 경우 그 사유에 있어 노조의 허락을 거쳐야한다. 그만큼 독일 노동자들은 노조의 보호 아래 안심하고 일을 할수 있다.
또한 독일 회사에서 상사가 본인에게 부당한 업무를 강요한 경우 노조에게 알려 노조와 같이 업무 배정에 대해 토론을 할수도 있다.
 
독일 노조는 독일 노동자들에게 있어, 소위 지구를 지키는 히어로, "어벤져스"와 같은 든든한 후원조직인 셈이다.
 
이 독일 노조단체들은 주로 Tarifvertrag (고용계약서) 에 대해 Arbeitgeber(고용주)와 많은 협상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협상 자리에는 국가나 시단체가 개입할수 없도록 되어있다는 것이 참 놀랍다.
 

독일 노조의 시위 ⓒ 독일 노동조합 협회

 
오직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협상 자리로, 노조가 원하는 요구 조건을 고용주가 들어주지 않을 경우 기간을 정해놓고 파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독일 노조단체는 노조원들의 불합리하거나 불리한 근무환경에 맞서 방어하는 것이 가장 큰 업무이다.
 
독일 노조는 1848년과 1849년 사이에 처음 생겨났으며 지금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노조는 독일의 기관사 노조이다.
 
한국의 노조 파업 기사를 보면, 장기간 고용주와, 때로는 정부와 협상하기도 하고, 너무 도가 지나친 요구사항을 건의하기도 해서 많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뿌리기도 하는데, 독일은 한국에 비하면 합리적인 요구를 제안하는 편이다. 독일 노조의 요구 사항의 대부분은 다음과 같다.
 
한국처럼 과격한 장기간 파업은 거의 없는 독일의 산별 노조
독일 파업 현장에 가면 한국처럼 단식투쟁, 삭발, 고공 농성과 같은 극단적인 항거나, 경찰과의 대치를 거의 볼수 없다. 소위 싱겁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한국의 거친 투쟁과는 사뭇 다르다. 독일 파업 현장에 가면 연설을 듣거나 거리행진 정도일 뿐이다. 이는 독일의 산별 노조의 강력한 힘을 이유로 들수 있겠다.
한국의 기업별 노조와 달리 독일에는 산업별로 여러 노조 단체가 있는데, 비정규직, 실업자, 은퇴자, 학생까지 조합원으로 활동한다. 대표적으로 큰 8개의 노조 단체를 예로 들어보면 아래와 같다.

-IG Metall (IGM) → 금속 노조
-Vereinte Dienstleistungsgewerkschaft (ver.di)→ 독일 통합서비스 노조
-IG Bergbau, Chemie, Energie (IG BCE) → 독일 화학, 에너지 노조
-IG Bauen-Agrar-Umwelt (IG BAU) → 독일 건설,농업 환경산업 노조
-Gewerkschaft Nahrung-Genuss-Gaststätten (NGG) → 독일 식당,레스토랑 노조
-Eisenbahn- und Verkehrsgewerkschaft (EVG) → 독일 철도, 교통 노조
-Gewerkschaft Erziehung und Wissenschaft (GEW) → 독일 교육, 과학 노조
-Gewerkschaft der Polizei (GdP) → 독일 경찰 노조

 

독일의 대표적인 노조 8개 ⓒ 독일 노조 협회

 
독일 대부분의 직업이 이 노조 단체들에 속해 있다고 보면 된다. 특히 가장 첫번째인 IG Metall (IGM)은 독일 노조 중 가장 강력하다는 금속 노조이다. IG Metall은 최대 조합원 227만명을 자랑하며 금속, 전자, 전기, 철강, 자동차, 섬유, 의류 등 독일의 주력 수출 제조업이 금속 노조의 영역이며 15만 5000개의 지역지부를 가진 강한 조직이다.
또한 독일 통합서비스 노조인 베르디는 조합원 210만명으로 10여개의 연수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독일은 산별노조라는 시스템에서 파업이 이루어지고 파업에 대한 불이익, 구속이나 해고가 없다. 그리고 파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업 인수합병을 포함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 의견을 제안할수 있는 제도가 있다.
직종을 뛰어넘어 하나의 노조를 꾸려 전국적으로 노동자를 대표하는 독일의 노조 대비, 한국의 기업노조는 인력이나 예산면에서 차이를 보일수 밖에 없다. 민주노총이나 한국 노총도 각각 80만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산별 노조는 사실상 기업노조보다 국민의 공감을 얻기가 쉽다. 한국인들에게 노조는 소속된 기업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고 과격하고 무리한 요구로 귀족노조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데, 산별노조는 개별 기업의 이해 관계를 넘어 산업 전체의 노동자를 대변하여 사회 전체의 공감대를 얻기가 쉽다. 독일은 이 산별 노조의 힘으로 독일사회에 노동자 친화적인 분위기를 도입하였다.
 
돈보다는 여가에 가치를 두는 독일 노조
독일 노동자들은 점점 돈보다 여가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 2018년 독일 남부 바덴뷔르템부르크 금속 노조 90만명은 주 35시간 대신 주 28시간만 일할수 있는 선택권을 쟁취했다. 독일 금속노조는 1984년 장기 파업을 통해 주 35시간 노동제 도입에 합의한바 있는데 34년만에 28시간 근무제를 도입시켰다.

이는 맞벌이 부부에 있어 자녀 혹은 부모를 돌볼수 있는 유연한 근무환경이 될것이며 이러한 환경이 독일 전역으로 확산되나갈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독일 금속 노조 위원장 외르크 호프만은 노동의 유연성은 너무 오랜 시간동안 고용주만의 특권이었다며 지금부터 노동자들은 그들 자신과 건강, 가족을 위해 더 적은 시간을 일할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바 있다. 현재 독일은 28시간 노동제와 35시간 노동제를 혼합시켜 노동자들이 탄력적으로 선택할 권리를 갖게 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독일은 워라밸 지수에 있어 OECD 통계치에 근거8.3점으로 30개국 중 8위를 차지하였고 반면 한국은 4.7점으로 27위를 차지한바 있다.
 

축제 현장같은 독일의 노조 시위 현장 ⓒ 최주영

 
불합리한 요구는 없고 오히려 임금을 낮추기도.
독일 노조는 위기가 발생할때 집단 행동 대신 고통을 분담하는 방식을 택한다. 독일은 비상경영체제인 회복협약 (Sanierungtarif)을 2000년대 중반 이후 도입하였는데 이는 2~5년 동안 무급 근로를 늘리거나 임금을 줄이는 것이다. 폭스바겐, 티센크루프, 오펠 등의 기업이 도입하고 있으며 근로시간 및 임금을 삭감할수 있음과 동시에 해고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 예로 2013년 철강공급과잉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독일 철강업체 티센크루프는 노사 회복 협약을 통해 2020년까지 주당 3시간씩 근로시간을 줄였으며 임금도 8퍼센트 줄이기로 했다. 이를 통해 구조조정 대상 2000명 중 무려 1500명이 회사에 남아있을수 있었다.
 

독일 축제 현장같은 독일 회사노조 시위 현장 ⓒ 최주영

 
특권 없는 독일의 대기업 노조
한국의 경우 비정규직이 먼저 해고되고 협력업체가 희생을 당하는 동안 대기업 노조는 상급 노조의 지시를 받아 투쟁을 이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반면, 독일은 비상경영체제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상급노조가 협상을 맡아 처리하고 비정규직, 협력업체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비상경영 전환 속도가 빠르다.
그래서 독일은 상급노조가 단체 협상을 하면 업계 전반에 걸쳐 동등하게 적용되므로 대기업 노조는 특권을 갖지 않는다.
 
이렇게 독일은 사회적으로 계약직이든, 정규직이든 모든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이다.
이것은 단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은 아닐것이다. 한국과는 달리 독일은 노동의 가치가 존중되고 돈보다 여가와 건강이 우선시 되는 사회이다.

실제로 독일 살면 한국 사회 시트템이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게 있어 불편한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일요일에 상점이 문을 닫고,평일 저녁에도 일찍 문을 닫는것. 24시간 편의점이 없는것. 크리스마스, 부활절 시즌에 장기간 상점이 문을 닫는것. 여름 휴가시즌이면 상점들이 법적으로 보장된 긴 휴가를 떠나는 것 등 소비자 입장에서 불편한것은 정말 많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봐야할것은 바로 우리가 소비자이자 노동자이기도 한 점이다.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일요일에 일을 해야하고, 평일 밤늦게 일을 해야하고, 또 공휴일이나 휴가 시즌에 일을해야한다면 그 노동의 주인공이 내가 될수도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일을 해야하는 사회적 구조라면, 그 여파가 돌고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도착하는 쳇바퀴가 될수 있다.

24시간 콜센터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상당하고, 많은 직원들이 우울증과 정신병에 걸린다는 기사를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렇게 누군가에게 편의를 제공해주는 사람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고 그 사람이 나 혹은 우리 가족이 될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면 한국 사회 전반적으로 노동자가 존중받는 사회로 발전해나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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