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충징시 거리.
김기동
한국인이 중국인을 만났을 때, 몇 번 만난 사이도 아닌데 심지어 처음 만난 사이인데도, 중국인이 한국인을 '친구'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한국인은 중국인이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면 중국인이 예의가 없다고 생각하고, 중국인이 동년배면 몇 번 만나지도 않았는데 친구라고 부른다며 자신을 100% 신뢰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 중국에서 '친구'라는 호칭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친구'라는 의미와 전혀 다르다.
한국 사전에서 친구는 "가깝게 오래 사귄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나이가 같은 사람만 서로 친구라고 한다. 자신보다 나이가 1살이라도 많으면 형·누나, 자신보다 나이가 1살이라도 적으면 남동생·여동생이라고 부른다. 또 서로 친구라고 호칭하는 경우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 사이에만 가능하다. 그래서 나이가 같더라도 오랫동안 깊게 사귀지 않았으면 친구라고 호칭하지 않는다.
반면에 중국 사전에서 친구는 "나이, 성별, 지역, 종족, 사회 직위에 관계없이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라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친구이기 때문에 중국인이 친구를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도 여러 가지다. 먼저 새로 알게 된 사람은 '새 친구(新朋友)'라고 부른다. 보통 자신의 나이를 기준으로 위, 아래 10년 차이까지는 그냥 친구라고 부른다. 자신의 나이보다 10년 이상 아래면 '어린 친구(年輕朋友)'라 하고 10년 이상 위면 '늙은 친구(年長朋友)'라고 한다.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서 통역하는 사람이 이런 용어의 개념 차이를 모르고, 중국어 '친구(펑여우)'를 한국어 '친구'로 통역하면, 한국인이 오해할 소지가 크다.
왜 이런 용어의 차이가 생겼을까?
삼강오륜과 삼강오상
한국인에게 유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구절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삼강오륜'이라고 대답한다. '삼강'은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부부의 관계를 정의하고, '오륜'은 이에 덧붙여 노소(나이가 많고 적음)와 친구(나이가 같음)의 관계를 정의한다.
중국인은 '삼강오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사전에는 '삼강오륜'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신 중국인은 '삼강오상(三綱五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삼강'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삼강'과 의미가 같고, '오상'은 '인의예지신'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중국에서는 나이에 따라 '노소'와 '친구'의 차이를 구분하는 '삼강오륜'이라는 용어가 없다. 그래서 중국인은 나이 차이를 엄격히 구분하여 형, 누나, 친구, 남동생, 여동생으로 호칭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그럼 유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한국인은 '삼강오륜'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중국인은 '삼강오상'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이유는 뭘까.
중국에서는 공자 유학 이후로 발전한 유학 사상을 '신유학'이라고 부른다. 기원전 136년 한나라 시대 동중서라는 사람이 공자의 유학에 공자의 유학 사상에는 없는 '천인감응'이라는 자신의 이론을 덧붙인다. 이 사상이 공자의 유학 사상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신유학이라 칭한다. 그 후부터 새로 만들어지는 유학 이론은 모두 신유학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중국 신유학에는 공자가 말하지 않은 내용도 들어있고 심지어는 공자의 유학 사상과 완전히 반대되는 내용도 있다.
한국에는 신라 시대 유학이 처음 전래했지만, 유학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건 조선 시대다. 조선 시대(14세기) 한국에 전래한 유학은 남송 시대 주희가 만든 신유학 성리학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성리학을 유학이라고 생각하는데, 중국에서는 성리학을 원래 유학에서 발전·개량·변형된 신유학 사상으로 여긴다. 그러니까 한국 사람이 유학이라고 생각하는 성리학은 중국에서는 신유학으로 남송 시대 잠깐 100년 동안 유행한 유학 이론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중국 유학을 받아들이면서 주희의 성리학 내용만을 유학이라고 생각하고, 성리학 이전의 유학 사상과 성리학 이후에 중국에서 새로 만들어진 유학 사상에 대해서는 연구하거나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