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형무소 수감 당시 이육사일제는 이처럼 독립운동가의 정면 측면사진을 만들어 검속과 사찰에 활용했다.
최인담 제공
인담을 실은 성북구청행 버스는 저녁 어둠을 안은 탓인지 발걸음이 더뎠다. 맞은 편 차들도 어둠을 안고 꾸물댔다. 그는 더욱 생각에 빠져 들어갔다.
'목놓아 부르고 싶었던 조국해방'을 '천고의 뒤'로 미뤄야 하는 슬픔에 육사는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을까?
불꽃같은 항일의지와 웅혼한 시세계를 간직하고도 죽음 앞으로 끌려가야 할 때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눈앞에 그려졌던 걸까?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하는 아픔에 그렇게 피가 뚝뚝 떨어지는 문장을 길어올린 걸까?'
"이번 정거장은 성북구청입니다"라는 안내방송에 인담은 흠칫 놀랐다. 요즘 육사의 삶과 시를 곱씹다가 정거장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서둘러 내린 인담은 7층 문화관광과로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불과 6개월 남짓이었지만 벌써 정이 많이 들었다. 인담은 자리에 앉아 잔무 처리는 미뤄두고 다시 육사 시집을 꺼내 들었다. 늦은 시간이어서 사무실엔 정적뿐, 어둠 한가운데서 탁상 등을 올리고 '광야' 한 구절을 나직하게 입에 올려본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인담의 낭송이 조용한 사무실을 조심스레 가로질러 창문에 '똑'하고 부딪힌다. 인담은 한번 숨을 가다듬고 다음 구절을 읊조려본다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창밖에는 겨울 어둠을 헤치고 성북동 별빛과 종암동 달빛이 가만가만 다가와 인담의 어깨를 맑게 비춰주고 다사롭게 어루만진다. 인담의 낭송은 그치지 않고 밤늦도록 이어진다.
<못다 한 이야기>
1. '문화공간 이육사'의 개관기념 특별전 '식민지에서 길을 잃다, 문학으로 길을 찾다'의 개관은 17일에 진행될 예정이고 대표시는 '절정'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식민지민중의 아픔을 잘 대변한 시라는 판단에서입니다.
2. 1945년 12월 17일은 해방후 '자유'에 이육사 선생의 유고시가 발표된 날입니다. 이 날을 기려 개관일을 잡았습니다.
3. 최인담 학예사는 수유리 근현대사기념관에서도 좋은 분들을 통해 많은 배움을 얻었지만 이곳 성북에서도 그에게 큰 도움을 준 분들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끝없는 열정이 인상적인 성북선잠박물관 오민주 학예사, 성북구청의 1호 학예사이며 따뜻한 이성을 가진 김지은 학예사, 굳은 일 마다 않고 살뜰히 챙겨주시는 전서령 학예사, 그리고 소중한 경험과 자산을 아낌없이 나눠준 국립한국문학관 최혜화 학예사, 또 인담의 전문성을 존중해주는 구청 문화기획팀 동료들..."입니다.
4. 민족문제연구소는 최인담 학예사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선배와 연구원들이 독립운동하는 느낌으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하는 과정이나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세우는 과정은 그에게 큰 가르침으로 남아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학예사 최인담 프로필>
2016.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2016. 3. 근현대사기념관 재직
2019. 3. <선생님, 3.1운동이 뭐예요?> <선생님, 대한민국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공저
2019. 5. 성북구청 문화체육과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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