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월 24일 자 <경향신문>
경향신문
2007년 말 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나에 대한 퇴진 압박의 큰 파도들이 쓰나미처럼 몰려오기 시작했다. 늘 그러하듯 죽음의 북소리는 언론에서 먼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일보>는 그해 12월 24일 자 기사에서 이렇게 전했다.
방송계에서는 KBS 정연주 사장의 거취가 가장 주목된다. 정 사장의 임기는 2009년 11월까지다. 그러나 한나라당 관계자는 "지금까지 대통령이 바뀌었을 때 KBS 사장이 바뀌지 않은 적이 없다"고 표현할 정도로 교체설에 비중을 둔다.
해가 바뀌자 이곳저곳에서 나의 퇴진 얘기가 본격적으로 거론되었다. 그때 유독 한 인사의 발언이 눈에 띄었다. 언론학자 출신이자 한나라당 추천 몫으로 방송위원회 위원이 된 김우룡 위원이 1월 23일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 내용이었다.
"KBS 정연주 사장이 사퇴하지 않으면 변화를 가늠할 수 없는, 판을 뒤엎는 초강수가 나올 수도 있다."
김우룡 방송위원의 예언대로 과연 '판을 뒤엎는 초강수'는 이후 본격적으로 나왔다. 검찰, 감사원, 국세청, 방송통신위원회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되어 잇따라 초강수를 두었다.
이에 앞서 조중동, 한나라당, KBS의 수구노조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나의 퇴진에 기름을 부어 넣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기도 전부터 그랬다. 2008년 2월 13일, KBS 11대 노조(새 노조 탄생하기 전의 구 노조. 당시 위원장 박승규)는 노보에서 내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실었다.
"소모적인 논쟁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더 이상 KBS가 무너지는 상황을 방관할 수는 없습니다. 무능을 고백하십시오. 미련과 아집을 버리십시오. 그동안 몸담았던 조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십시오."
2월 14일, 조중동이 기다렸다는 듯이 기사로 응답했다. 그들에게는 참 좋은 먹잇감이었다. <중앙일보>는 '낙제점 정연주 사장 사퇴하라', <동아일보>는 'KBS 노조, 정연주 사장 퇴진 공개 요구'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다뤘다. <조선일보>는 그 다음 날 'KBS 노조까지 사퇴 요구, 코너에 몰린 정 사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2월 20일, 조중동의 맞장구에 힘을 얻은 듯 KBS 노조는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체제로 전환하고 "이제 KBS의 미래를 위해 정 사장은 사퇴하는 것이 옳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불과 닷새 앞두고 KBS 노조가 총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MB 정권과 수구노조의 노선이 비슷함을 보여준 셈이다.
조중동-KBS 수구노조-한나라당의 합주곡
이명박 대통령 취임 이후 한나라당과 정부 쪽에서 나의 퇴진 요구와 압박을 본격화했다. 3월 11일,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나를 포함하여 참여정부 때 임명된 인사들의 퇴진을 요구했다.
"지난 10년간 국정을 파탄시킨 세력들이 야당과 정부 조직, 권력 기관, 방송사, 문화계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의 요직에 남아 새 정부 출범의 발목을 잡고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 하루 빨리 사퇴하는 것이 옳다."
같은 날, <동아일보> 배인준 논설주간은 '노무현 식객들의 농성'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나를 비난했다.
그(정연주)는 언필칭 '국민의 방송'이라는 KBS를 좌파권력의 나팔수로 전락시켰다... '정연주식 버티기'가 국민 사이에 통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식객들은 한 정권이 끝나면 곧장 자리를 털고 사라질 줄 알아야 식객 자격이나마 있다.
3월 12일,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거들었다.
"산하 기관장들 중 분명한 철학과 이념을 가진 사람들이 성향이 다른 새 정권에서도 계속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다. 참여정부에서 임명된 문화 관련 기관장들은 이제 그만 물러가라."
같은 날, KBS 노조는 '정연주가 죽어야 KBS가 산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3월 13일, <조선일보>는 '밥자리에 매달리는 좌파 문화 기관장들의 얼굴'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문화체육관광부에는 11개 소속기관과 34개 산하기관이 있다. 노무현 정권은 이 자리를 정권과 좌파적 이념을 공유한 사람들로 메웠다... 이념이 다른 정권이 들어서면 선선히 자리에서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한다."
다음 날,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다시 나섰다.
"노무현 정권에서 그 정권의 이념과 철학에 맞춰 임명된 사람들은 정권 교체가 됐으므로 (새 정부가) 자신의 이념과 맞는 사람과 같이 일 할 수 있도록 사의를 표하고 재신임을 묻는 게 옳은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 지지율 하락은 정연주와 KBS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