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0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학입시 정시 확대를 공식화했다.
국회사진취재단
헌법 개정보다 어려운 대학 개혁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회 연설에서 대학에 들어가는 방법과 비율에 대해서 언급을 했다. 아마도 맞다 틀리다, 된다 안된다, 난리가 날 것이다. 87년 9차 개정헌법 이후로 우리는 아직 헌법을 고친 적이 없다. 모르긴 몰라도, 대학 개혁이 헌법 개정보다는 어려울 것 같다.
농담이 아니다. 유럽도 그랬다. 프랑스를 시작으로 대학 국유화를 하고, 무상 등록금으로 전환하는 일이 유럽 전역에서 벌어진 것은 전세계를 뒤흔든 68혁명의 결과다. 철학자 데카르트를 상징으로 쓰는 소르본느 대학은 대학 총장이 추첨표를 잘 못 뽑아서 파리 4대학이 되었다. 소르본느 대학은 굉장히 보수적이고 완강한 대학이지만, 68혁명의 여파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대통령을 탄핵하고 정권을 바꾼 촛불집회지만 그 정도 힘 가지고는 대학 개혁은 택도 없는 것 같다. 조국 사태도 거대한 흐름이었지만, 기껏해야 수능 보는 정시 숫자 5퍼센트 미만의 변화 이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보면, 한국 자본주의에 대학이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대학에 한국 자본주의가 적응하는 것 같다.
이 정도야 우리도 안다. 그렇지만 해법이 쉽지 않다. 대학 입시 문제를 얘기하면 대학 서열 문제 해결이 먼저라고 하고, 대학 문제를 얘기하려면 기업의 채용 풍토를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전형적인 장님 코끼리 만지기를 우리는 계속하고 있다. 대학과 관련하여 많은 것을 동시에 바꾸지 않으면, 결국에는 입시 제도만 이리 손 보고 저리 손 보다가 10년 넘게 후딱 지나가게 된다.
고졸로도 걱정없이 살아갈 수 있어야
대학과 관련해서 한국 대학이 가장 이상하게 된 것은 다른 나라의 두 배 이상 높아진 대학 진학률이다. 출산율 저하로 조금 있으면 이제 모든 고등학생이 다 대학에 들어가고도 정원이 남는다는 것 아니냐? 유럽처럼 등록금이 연간 몇 십만 원 하는 수준도 아닌 상황에서 모두가 대학에 가는 게 당연한 시스템은 이제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대학 교육이 필요한 사람은 대학에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상황에서 경제 생활을 하는 것, 그게 유럽 근대가 만든 시스템이다. 우린 그걸 못 만들었다. 모두가 대학에 가려다 보니까 대학의 서열 구조를 깨기가 어렵고, 이 이상한 상황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강화되는 게 한국 자본주의의 인적 재생산 구조의 핵심이 되었다. 변화를 주어야 한다.
제일 먼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조치는 지금의 공무원 7급, 9급 공채를 고졸 중심으로 채용 구조를 재편하는 것 아닐까 싶다. 고등교육은 꼭 필요한 지식을 위한 일종의 과잉 교육이다. 사실 한국 경제의 기초 인프라를 만든 주력은 은행을 만든 상고 출신들, 한전 등 공업 분야로 진출한 공고 출신들이다.
대졸들이 너무 늘어나다 보니 이들이 하는 직업을 밀고 들어오면서 인적 불균형이 생겨났다. 중소기업에 위기가 오고, 제조업에도 위기가 오고, 출산율도 극단적으로 하락했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국민경제의 목표는 '고졸 중산층 재생산'이 아닐까 싶다.
고졸들도 스스로의 힘으로 결혼하고 집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회, 1인당 국민소득 6~7만 달러 넘어가는 나라들은 이 정도는 다 만들어낸 나라들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상태가 나아져야 그 사회의 상태가 나아진다는 '맥스민(max-min)', 존 롤스의 정의론이 움직이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