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라인 설치된 서울중앙지검조국 법무부 장관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이 실시된 2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현관에 조 장관 부인 정경심 교수 소환을 대비해 포토라인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앞에 소개한 교도통신 히사시 기자의 '경험칙'에 따르면 "알려졌다"는 표현 뒤에 숨은 기사는 '일반적으로 믿을 수 없는' 오보인 경우가 많다. 위에 소개한 두 경우 모두 단순한 사실관계에 대해 당사자가 극구 부인하는 것이니 누구 말을 믿게 되겠는가.
그리고 검찰발 "알려졌다"는 기사는 신뢰의 문제에 더하여 검찰이 먼지떨이식이든, 망신주기든, 어떤 의도를 가지고 '피의사실'을 언론에 유출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고백'하는 꼴이다. '알려졌다'는 말은 누군가가 '알려준' 것인데, 검찰발 기사의 경우 그 '알려준' 주체는 검찰이다. 그러니 '알려졌다'는 검찰 기사는 바로 검찰의 피의사실 흘리기와 그것을 그냥 옮겨 적는, 검언 공동범죄의 행태를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18세기 프랑스의 작가이자 사상가인 볼테르는 "진정 깨어있는 회의론자로 굳건히 서라, 그리고 분명하고도 흔들릴 수 없는 증거가 없다면 결코 누구의 말도 믿지 말라"고 했다. 볼테르가 지금의 한국 기자들에게 던지는 고언처럼 들린다.
검찰이 피의사실을 흘리고, 언론이 아무 검증 없이 받아적는 이런 행태는 큰 사건이 터지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폐해다. 검찰은 언론을 이용하여 사건을 자신들의 프레임으로 끌고 가려 하고, 언론은 '단독'의 유혹에 빠져 그걸 대서특필하면서 '의혹'이 '팩트'로 둔갑한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정확한 팩트 확인, 검증의 과정, 진실 추구의 정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인 '의문'의 제기는 자취를 감춘다.
검찰이 던져주는 '피의 사실'이라는 먹이를 아무런 의심도 없이, 검증도 하지 않은 채, 그것이 팩트인 것처럼 받아 옮기는 것은 결코 언론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한 배달부의 일일 뿐, '기자의 길'이 아니다.
검찰 주장에 질문도, 의문도 제기 않는 언론
왜 이렇게 되었을까. 9년여 전, 나는 '기자인가, 검사인가'라는 제목의 칼럼(<한겨레> 2010년 1월 25일 자)에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즘 언론의 보도와 기자의 행태를 보면 이게 정말 언론인가, 기자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검찰 권력과는 거의 일심동체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검찰이 먹이로 던져주는 '피의사실'을 '기정사실화'해버린다. 검찰이 던져주는 '피의사실'이라는 먹이에 대해 기본적인 의문조차 제기하지 않는다. 검찰의 논리와 검찰이 짜놓은 틀에서 사건을 본다. '무죄추정의 원칙'이나 피의자의 기본권리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다. 법조 취재의 본거지도 검찰청에 있고, 법조 기사의 주된 공급원도 검찰이다. 그렇게 함께 뒹굴다 보니 너무나 닮아가서, 기자인지, 검사인지, 구분이 안 된다. 행태도, 논리도 너무 닮았다 (...)
9년여 전 그때나 지금이나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요즘은 '속보'와 '단독'이라는 문패를 단 선정 보도가 더 심해졌으니, 사정은 더 악화되었다. 종말적 징후다.
그 고통,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